[당객열전] '언더독'의 반란을 꿈꾸는 노병찬

정완주 기자 2023. 5. 12. 21:5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영업사원부터 시작한 도금 사업 접고
故 김경률이 주목했던 재능 뒤늦게 발휘
프로당구 선수 노병찬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무명의 노병찬(41) 선수는 프레드릭 쿠드롱(웰컴저축은행) 선수를 꺾으면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인천 당구장 사장'인 노병찬이 쿠드롱을 침몰시켰다는 식의 보도가 잇따른 탓이다.

원래 그의 본업은 크롬 도금 사업이었다. 대학 졸업 후 그 분야에 줄곧 매진했고 나중에는 직접 개인 사업체까지 꾸렸다. 사업가의 길을 걷던 그의 인생이 바뀐 계기는 PBA 출범이었다.

그는 한국 3쿠션을 세계무대로 이끈 고(故) 김경률 선수의 수제자로 선택을 받았다. 20대 중반 시절이었다. 고민 끝에 거절한 그는 결국 30대 후반의 나이에 사업을 접고 프로당구 선수의 길을 선택했다. 진정한 '언더독'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당구 대신 도금 영업 '한 우물'
3개월 만에 연맹 선수활동 마감

도금은 전형적인 3D 업종 중 하나로 꼽힌다. 각종 화학약품의 유독성에 노출될 수밖에 없으며 노동집약적 산업의 특성을 갖춘 탓이다. 그래서 도금 작업장 환경은 늘상 열악하고 위험했다. 노병찬이 크롬 도금업에 뛰어든 이유는 공교롭게도 당구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때 시작한 당구의 재미에 흠뻑 빠져 대학교를 졸업하고서도 당구장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취업에 대한 진지한 고민 대신 당구를 즐기는데 여념이 없었죠. 이를 보다 못한 선배가 크롬 도금 회사를 소개해줘서 도금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겁니다."

프로당구 선수 노병찬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노병찬과 당구의 인연은 계속 이어졌다. 입사한 회사의 대표가 마침 대한당구연맹 소속 선수 출신이었던 것이다. 평소 노병찬의 당구 실력을 눈여겨 본 대표는 선수 등록을 권유했다.

"선수 활동을 진지하게 생각하지도 않은 채 가벼운 마음으로 등록을 마쳤죠. 그리고 3개월 정도 활동하다가 직장 일이 바빠서 거의 1년여 동안 대회에 나가지 못했는데 자동적으로 선수 자격이 박탈되더라고요. 저도 '그런가 보다'라고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죠."

입사한 뒤 2년여 동안 직장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던 그에게 또다시 당구의 유혹이 다가왔다. 그의 당구 재능을 아끼던 지인 중에서 당구장을 차려주겠다는 제안이 온 것이다. 젊은 나이라 그런지 쉽게 흔들렸다.

"일단 직장을 그만두고 당구장 목을 찾기 위해 6개월 정도 여기저기 돌아다녔죠. 그런데 당구장을 제안한 지인께서 사정이 생겨 갑자기 '없던 일'이 되버린 겁니다. 직장도 그만둔 마당에 황당했지만 쉽게 포기가 안 되더라고요. 당시 제가 가진 돈은 2000만원 정도였어요. 그래서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했다가 엄청 혼만 나고 접어버렸죠."

노병찬은 도금 약품을 취급하는 무역회사로 취업했다. 약품을 사용하다가 불량이 나오면 기술적으로 해결해주는 기술영업직을 맡았다. 고객들과 부대끼는 영업직이 적성에 맞기도 해 당구장 창업의 꿈은 잊고 회사 업무에 몰두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도금과 관련한 신제품이 그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다.

"새로운 약품이 도금업계에 확산되는 기미가 보여서 회사에 신제품을 취급하자고 제안을 했는데 받아들이지 않는 거예요. 그참에 개인회사를 차려버렸죠. 직장을 바로 그만둘 수는 없어서 매형 명의로 사업체를 내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노병찬은 눈코 뜰 새 없이 자투리 시간을 최대한 쪼개면서 직장 일과 사업을 겸행했다. 주문이 들어오면 주로 새벽시간이나 퇴근 이후 시간을 활용해 처리하는 일과가 반복됐다.

3년 정도 고생을 하자 결실이 나타났다. 수입한 약품이 도급업계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대박이 난 것이다. 그의 나이 34세 때 일이다.

"운이 좋게 사업이 잘 되면서 돈을 모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집도 마련하고 결혼까지 할 수 있었죠.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스스로 힘으로 기반을 닦은 셈이라 나름 뿌듯했고 자신감도 넘치던 시절이었다고 봐요."

프로당구 선수 노병찬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무리한 골프영업으로 허리 부상
PBA 직관 후 들끓은 도전 욕구

사업이 성공하자 시련이 뒤따랐다. 무리한 골프 영업이 원인이었다. 며칠 동안 몸에 마비가 와 꼼짝도 하지 못할 정도로 증세가 심각했다.

"제가 술을 못해서 주로 골프영업에 집중했죠. 그런데 피로가 누적된 상황에서 골프를 계속 치다보니 무리가 왔던 것 같아요. 갑자기 다리 부분에 마비 증상이 온 겁니다. 병원에서 디스크 초기 증상이라는 진단이 나왔고 결국 골프를 그만둬야 했죠. 그래서 다시 취미 생활로 큐를 잡았습니다. 당구는 워낙 제가 좋아했던 운동이고 그나마 허리에 부담이 가지 않는 스포츠였으니까요."

그가 큐를 다시 잡은 시기는 PBA가 출범한 2019년 무렵이었다. 물론 프로리그가 생긴다는 사실은 인지했지만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로 치부했다. 하지만 평소 친분이 있던 이연성 선수 등과 PBA 경기를 관전하러 갔다가 전환점을 맞이했다. 눈으로 직접 목격한 PBA 무대는 그의 피를 들끓게 만들었다.

"썰렁한 체육관 대회만 연상했던 기존 관념이 화려한 무대세트와 조명, 중계 카메라 등을 보자 무너졌어요. 이제 3쿠션도 당당한 프로 스포츠화가 가능하다고 여긴 거죠. 그때부터 잠재 의식에 묻힌 승부욕과 도전 정신이 꿈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노병찬의 프로 도전을 부추기는 제안도 때맞춰 들어왔다. 당구로 인연을 맺었던 후배가 동업으로 당구장을 차리자고 한 것이다. 마침 사업도 내리막길로 접어들어 다른 길을 모색하려던 그에게는 솔깃한 제안이었다.

"10년 전쯤 레슨을 받았던 후배가 평소 저를 많이 따랐는데 어느 날 그러는 거예요. 자신이 돈을 벌면 당구장을 차려주겠다고요. 그때는 그냥 웃고 넘어갔는데 그 후배가 성공을 해서 10년 전 약속을 지킬 테니 당구장을 맡아달라고 한 겁니다. 고정적인 월급을 받는 당구장 대표를 맡는 일이니 집에서도 반대를 하지 않더라고요."

결국 그는 인천 연수구에 당구장을 오픈한 뒤 PBA 도전을 위한 담금질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문득 노병찬은 고(故) 김경률 선수를 떠올렸다. 어차피 당구 선수의 길을 선택하자 김경률의 제안을 거부했던 과거의 일이 새삼 기억이 난 것이다.

"한창 당구를 즐기던 20대 중반 무렵 우연히 김경률 선수와 자주 어울릴 수 있었는데 저를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회사 연봉을 물어본 뒤 자신이 월급을 대신 감당해줄 수 있으니까 당구를 같이 치자고 하시더라고요. 사실상 수제자 제의를 하신 거죠. 당시만 해도 당구에 대한 확신이 부족해 고심 끝에 사양을 했는데 막상 프로 선수가 될 결심을 하자 그때 당구를 본격적으로 배웠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죠."

노병찬은 큐스쿨을 대비해 10개월여 동안 무딘 칼날을 갈아세웠다. 큰 욕심을 부리지는 않았다. 공백기가 길어서 1부 진출은 꿈도 꾸지 못하고 2부 리그 진출을 목표로 삼았다.

2020년 대망의 PBA투어 선발전이 열렸다. 두 차례 트라이아웃과 네 차례의 큐스쿨 토너먼트를 거쳐 마지막 서바이벌까지 통과해야 1부 투어 티켓을 얻는 험난한 과정이다. 그는 공동 21위로 최종 서바이벌에 진출해 극적으로 1부 투어에 합류했다. 스스로도 믿어지지 않는 성적이었다.

"첫 시즌 성적은 처참했습니다. 예선을 치르면 거의 '광탈'이었죠. 시즌 내내 1승도 거두지 못했어요. 경험도 부족했고 상대방의 이름값에 경기 전부터 주눅이 들었으니 떨리기만 한 거죠. 다음 시즌에는 좀 나아지는가 싶더니 쿠드롱 선수와의 첫 대결에서 다시 무너지는 경험을 했죠. 머릿속이 그냥 하얘지더니 어느새 경기가 끝나버린 겁니다."

이후부터는 생각을 고쳐잡았다. 상대의 점수는 상관하지 않고 나만의 경기에 몰입하자고 다짐한 것이다. 2022~2023시즌 '하나투어 PBA챔피언십' 64강전에서 쿠드롱과 다시 만난 노병찬은 승부치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승리를 거두는 이변을 연출하고 8강까지 진출했다.

"마음가짐이 달라지니 상대방의 기세에 눌려 긴장하거나 떨리는 모습이 사라졌습니다. 또한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마음을 비우니 승률이 높아졌죠. 결국 당구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점을 깨우친 겁니다."

프로당구 선수 노병찬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매일 10시간 이상 혹독한 훈련
"산체스 등 강자들 합류가 자극제"

노병찬은 지금도 매일 10~12시간 훈련을 반복하고 있다. 부족한 경험을 채우기 위해 강자들의 장점을 배우고 익히는데도 인색하지 않다. 알량한 자존심보다는 상대를 통해 계속 배우는 자세가 최고의 경쟁력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부드럽고 다양한 스트로크 훈련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특히 쿠드롱이나 조재호 선수의 스트로크를 많이 참조하는 편이죠. 유튜브 영상을 통해 딕 야스퍼스(네덜란드)의 경기도 꾸준히 챙겨봅니다. 또한 기본 배치를 실수하지 않도록 집중하고 있어요. 기본 배치를 놓치는 순간 바로 패배로 연결되기 때문이죠. 결국 기본기 훈련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가오는 2023~2024시즌부터는 경쟁이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4대 천왕'인 세계 랭킹 2위 다니엘 산체스(스페인)가 전격적으로 PBA 진출을 선언한 데 이어 튀르키예를 대표하는 세미 세이기너, 무랏 나시 초클루, 루피 체넷 등이 가세한다. 콜롬비아의 강자 로빈슨 모랄레스도 복귀한다. 국내 최정상급 강자인 최성원, 이충복 선수도 새 시즌부터 합류한다. 본격적인 '별들의 전쟁'이 시작되는 셈이다.

'언더독'의 반란을 꿈꾸는 노병찬의 각오도 남다르다. 강자들이 즐비해 경쟁에서 밀려날 것이라는 우려감 대신 강자들과의 진검승부가 벌써 설레는 모습이다.

"산체스 선수 등이 합류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흥분되더라고요. 솔직하게 말하면 '기대 반, 걱정 반'이라고 할 수 있지만, 세계적인 선수들과 직접 승부를 겨룬다는 생각만으로도 막 피가 끓어오르는 것 같아요. 그들과의 대결을 통한 새로운 배움에 대한 기대감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죠."

 

스포츠한국 정완주 기자 wjchung12@hankooki.com

Copyright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