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가 지지 않기를’ 응원하게 되는 신기한 마음[그림책]
메피스토
루리 글·그림
비룡소 | 120쪽 | 2만1000원
메피스토는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악마다. 대학자 파우스트를 유혹해 방대한 지식을 주는 대신 그의 영혼을 갖기로 한다. <긴긴밤>으로 상찬받은 루리의 신작 <메피스토>는 인간이 신에게 구원받은 뒤 홀로 남은 악마 메피스토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오갈 데 없어진 메피스토는 떠돌이 개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왔다가 한 소녀를 만난다.
‘둘의 이야기’ ‘개의 이야기’ ‘소녀의 이야기’ ‘다시, 개의 이야기’의 네 챕터로 구성돼 있다. 둘의 이야기에서 개와 소녀는 온갖 장난을 치며 돌아다닌다. 다이어트 하는 사람들 앞에서 라면을 끓여먹고, 건조대 위 빨래에 물을 뿌린다. 마지막 남은 까치밥을 가져가거나, 자동차에 눈을 그리는 낙서를 하기도 한다. 어떤 장난은 아슬아슬 선을 넘나든다.
악마인 개는 늙지 않는데 소녀는 조금씩 나이드는 듯하다. 천진난만한 장난의 나날은 끝나고, 갑자기 모든 게 멈춘다.
이어지는 챕터에서 둘의 사연이 반복된다. 다만 소녀의 사연이 조금 더 추가된다. 소녀는 귀가 들리지 않는다. 또래에서 따돌림받는다. 가족이나 친구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억지웃음을 짓는 데도 조금씩 지쳐갈 때 소녀는 자신을 따라오는 개와 만난다. 소녀는 ‘귀머거리’이며 개는 ‘악마’라는 사실을 서로 공유하고 유쾌한 악당 놀이를 이어가면서 둘은 세월을 보낸다.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냉혹한 세상”(작가의 말)에서 둘의 생활이 평탄할 리 없지만, 루리는 끝내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따뜻한 삶”의 풍경을 그려낸다. 판타지의 힘을 빌려서나마 아름답게 그려진 둘의 결말이 눈부시고, 작가의 의지가 경탄스럽다. 악마가 지지 않기를 응원하게 되는 신기한 책이다. 그림책과 그래픽노블의 중간 형태 분량이다. 눈 밝은 성인 독자에게도 ‘수작’으로 꼽힐 만하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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