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생산 강국 한국을 키워낸 건 미국의 ‘대일 견제심리’[책과 삶]
칩워
크리스 밀러 지음·노정태 옮김
부키 | 656쪽 | 2만8000원
반도체는 미·중 갈등은 물론 국제 정치와 경제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다. 하지만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을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쌓이고 쌓인 과제 더미를 바라보다 손을 놓아버리게 되는 학생의 심정이라고 할까.
밀린 진도를 따라잡고자 마음을 먹었다면 <칩워>(Chip War)는 읽어볼 만한 책이다. 반도체 기술의 탄생, 미국에 이어 일본과 한국이 반도체 생산 강국이 된 이유, 중국과 소련이 반도체 생산국이 되는 데 실패한 사연 등을 종합적으로 다룬다.
책은 저자 크리스 밀러가 100여명이 넘는 과학자와 엔지니어, 최고경영자, 관료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시간 순서대로 펼쳐진다. 지금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반도체가 사실 군사 목적으로 개발됐다는 점, 1960년 최초의 반도체 연구 기관을 세우고 집적회로 개발까지 성공했던 중국이 왜 ‘잃어버린 20년’을 겪었는지, 반도체 시장을 주름잡던 일본이 어쩌다 한국, 대만에 밀려났는지 등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저자는 반도체가 아닌 국제 정치 전문가다. 미국의 대소련 정책을 전공했다. <칩워>가 반도체 전쟁을 기술·산업의 관점을 넘어 정치, 경제, 군사적 측면까지 두루 포괄한 데는 이런 그의 이력이 작용했다. 책이 철저히 미국 중심의 관점으로 서술된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한국인 독자로서 가장 눈길이 가는 대목은 저자가 보는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다. 저자는 한 개 챕터를 할애해 한국이 반도체 산업에 뛰어든 과정 또한 ‘미국의 시각에서’ 설명한다.
1970년대 세계 반도체 시장을 장악한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 한국을 지원했으며, 한국의 성공은 미국이 구축해놓은 공급망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국내에서 신화처럼 여겨지는 한국의 반도체 역사는 그의 책에서 ‘적의 적은 친구’라는 차갑고도 단순한 논리로 해석된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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