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규칙 ‘집단 동의’ 판례, 윤석열 정부 노동정책 제동
사회통념 논리 더이상 안 통해…‘노동자의 남용 여부 판단’ 불씨 남아
사용자가 취업규칙을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바꿀 때 반드시 노동자의 ‘집단적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선언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지난 11일 판결은 윤석열 정부가 추진 중인 노동개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이 노동조건 결정에 있어 ‘노사 대등의 원칙’을 재확인한 만큼 정부가 이에 어긋난 제도 개선을 추진할 경우 논란이 일 수 있다.
1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현대자동차 간부사원 취업규칙 사건 판결문을 보면, 대법원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대한 노동자의 집단적 동의권에 대해 “실질적으로 불평등한 근로자의 권익을 보호·강화해 그들의 기본적 생활을 향상시키려는 목적”이라고 명시했다. 대법원은 “취업규칙의 내용에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불이익 변경 때)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보는 것은 취업규칙의 본질적 기능과, 필수적으로 확보돼야 하는 절차적 정당성의 요청을 도외시하는 것”이라며 기존 판례를 폐기하는 이유를 밝혔다.
대법원은 1977년부터 집단적 동의권 법리를 확립했었다는 점을 짚었다. 1989년 근로기준법에 집단적 동의권이 명문화되기 전이다. 대법원은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권은 명문의 규정이 없더라도 근로조건의 노사 대등 결정 원칙과 근로자의 권익 보장에 관한 근로기준법의 근본정신, 기득권 보호의 원칙으로부터 도출된다”며 “집단적 동의는 단순히 요식적으로 거쳐야 하는 절차 이상의 중요성을 갖는 (취업규칙의) 유효요건”이라고 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노동자의 집단적 동의권을 형해화하는 방향의 노동개혁 정책에는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2016년 박근혜 정부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을 완화하는 행정지침을 시행한 게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지침은 연공급에서 직무·성과급 중심으로의 임금체계 개편 등은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기 때문에 취업규칙 변경 때 노동자의 집단적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규정했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집권 뒤 이 지침을 폐기했다.
권오성 성신여대 법학부 교수는 “박근혜 정부는 임금피크제 확산을 위해 노동자 동의를 받지 않은 취업규칙 변경도 사회통념상 합리적이면 된다는 논리를 들었는데 이제 당시와 같은 방식으로 지침을 만드는 것이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는 박근혜 정부와 달리 접근하고 있기는 하다. 노동개혁 밑그림을 그린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지난해 12월 “임금체계에 직무·직종·직군의 다양성이 반영될 수 있도록 취업규칙 변경의 동의 주체 범위를 명확히 하는 등 법·제도적 개선방안을 모색할 것”을 고용노동부에 권고했다.
특정 직무·직종·직군의 임금체계 개편을 위해 취업규칙을 변경할 때 해당 직종·직군 노동자의 동의만 받아도 변경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양대노총은 “과반 노조나 근로자대표의 교섭력과 합의권이 무력화된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남은 불씨는 대법원이 노동자 측의 집단적 동의권 ‘남용’ 여부를 별도로 따져보라고 한 것이다. 회사가 노동자의 집단적 동의를 받지 않은 채 취업규칙 변경을 강행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노동계에선 과반 노조나 근로자대표가 특정 직무·직종·직군의 취업규칙 변경에 동의하지 않는 사례를 사용자가 ‘집단적 동의권 남용’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혜리·김지환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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