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이 불바다”…78년 전 기억 안고 사는 피해자들

최혜림 2023. 5. 12.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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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창문이 촥 쏟아지니까 창문 깨지는 소리가 타다닥 날거 아닙니까..."]

히로시마 원자폭탄 피해자 정인도 할아버지입니다.

아직도 78년 전 그 날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다음 주 히로시마에서 주요 7개 나라, G7 정상회의가 열릴 때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일본 총리가 히로시마의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같이 참배하기로 했습니다.

전체 원폭 피해자 열에 하나는 한국인으로 최소 7만, 최대 20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입니다.

이 가운데 3만 명 정도가 살아 돌아왔고, 천8백여 명이 생존해있습니다.

대부분 80대입니다.

최혜림 기자가 국내에 살고 있는 원폭 피해자들을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18살에 히로시마에서 버스 승무원으로 일했던 김일조 할머니는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김일조/히로시마 원폭 피해자 : "(원자폭탄) 떨어지고선 전신이 불바다고 전신만신이 피투성이고... 지금도 이런 게 안 낫는데 온갖 약을 다 발라도 안 나아요."]

상처는 평생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박동인/나가사키 원폭 피해자 : "원자탄에 데인 사람은 십 년을 못 넘긴다 이렇게 하더라고요. 이제 몇 년 살고 나면 죽는구나 이게 신경이 쓰여 가지고..."]

자식들에게 피해가 갈까 속 시원히 털어놓지도 못합니다.

[정원술/한국원폭피해자협회장 : "외상으로 흉하니까 남한테 알리기도 싫고 또 원폭이 대물림된다는 그런 사회적 인식 때문에 알리질 않아요."]

일본 정부가 지급하는 치료비인 원호수당도 일본에 살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당하다 4년여의 소송 끝에 승소했지만, 실제 지급까지는 또 험난한 과정을 겪어야 했습니다.

[심진태/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장 : "원호수당이 아니라 원수수당입니다 (신청을) 자기 나라와서 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증인을 대라는 겁니다. 한집 식구도 풍비박산이 났는데 그게 증인을 어떻게 댑니까?"]

또 다른 소송 끝에 이제는 일본인과 같은 수준의 지원을 받게 됐지만,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지원은 없다시피 했습니다.

국내엔 아직 제대로 된 추모시설도 없는 상황, 피해자들은 위령비 참배 소식이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한 마음을 감추지 못합니다.

[심진태/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장 : "처음이고 좋은 일인데 그러나 그것으로 끝을 내면 안 되고, 한국에 돌아오면 한국원폭피해자들 어떻게 살고 있는지 한번 찾아볼 줄 알아야 돼요."]

KBS 뉴스 최혜림입니다.

촬영기자:강승혁/영상편집:서정혁

최혜림 기자 (gaegul@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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