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치요금’ 된 전기료 책임, 한전 사장에게만 물을 일인가
빚더미에 오른 한국전력이 12일 대규모 자구안을 내놨다. 한전 사장은 정부에 사의를 표명했다. 한전 사상 최악의 경영 위기는 전기요금 인상 약속을 미뤄 사실상 ‘정치요금’으로 만든 정부·여당의 몫이 작지 않다. 적자 구조를 키우는 근본적 문제는 덮어둔 채 책임만 떠넘기기 바쁜 여권 행태가 유감스럽다.
한전은 이날 비상경영회의에서 ‘알짜’ 부동산 자산을 매각하고, 임직원 임금을 동결하고, 전력설비 건설을 미루고 줄여 2026년까지 25조7000억원의 재무 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국민의힘이 “(한전이) 도덕적 해이에 빠진 채 요금을 안 올려주면 다 같이 죽는다는 식으로 여론몰이만 한다”고 몰아세우자 당초 계획한 재정건전화 규모에서 5조원을 늘린 것이다. 당정이 경영난 책임을 지라며 퇴진 압박을 해온 정승일 한전 사장은 임기 1년을 남기고 물러났다. 전 정부 인사인 그의 사퇴 외압설은 윤석열 대통령 방미 경제사절단에서 막판에 제외될 때도 불거졌다. 이제 전기요금 인상은 정부·여당에 공이 넘어갔다. kWh(킬로와트시)당 7원, 4인 가족 기준 한 달 3000원 추가부담하는 안이 유력한 걸로 전해진다.
문제는 이런 자구안이나 소폭 인상으론 한전의 막대한 적자를 풀기 어렵다는 것이다. 192조원에 달하는 한전 부채는 원자력·석탄·액화천연가스(LNG)·유류 등 에너지원에 관계없이 민간 발전사에 동일한 전력도매가격(SMP)을 지급보장하는 제도 탓이 크다. 고유가 속 비싼 전기를 사다가 소비자에겐 발전원가의 70%도 안 되게 싸게 파는 역마진 구조다. 그럼에도 전기요금 결정권을 쥔 정부와 여당은 물가부담 등을 이유로 2분기에 약속한 인상도 40일 넘게 미뤄왔다. 국정지지율이나 총선 눈치만 보고 있다고 비판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정치요금’이 된 전기료 구조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취약계층 부담은 최소화하면서 전기요금은 국민·기업에 예고한 대로 제때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 지난 4월 상한제 도입 후에도 별 효과 없는 SMP제도는 전면 보완하고, 차제에 전기 소비를 줄이자는 정치 리더십도 발휘돼야 한다. 이런 문제를 내버려둔 채 한전에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온당치 않다. 이대로라면 산업의 근간인 에너지 생태계가 흔들리고 경제나 금융시장에도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정부·여당은 한전도, 전기요금도, 에너지 생태계도 지속 가능한 종합대책을 서둘러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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