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가야고분군
가야는 기원 전후부터 562년 사이 한반도 남부에 있던 고대 정치체이다. 낙동강 유역의 꽤 넓은 범위에 문화권을 형성했지만, 신라·백제·고구려와 더불어 ‘4국’을 이루지는 못했다. <삼국사기>에 가야사는 신라본기에 간략히 기술돼 있다. <삼국유사>에 금관가야를 비롯해 6가야가 있었다고 돼 있지만, 금관가야 기록인 가락국기 외에는 문헌이 남아 있지 않다. 가야가 잊힌 왕국이 된 것은 삼국과 달리 중앙집권국가를 만들지 않고 연맹체로 존재한 것과 관계 있다.
가야의 이런 약점이 오히려 강점이 된 걸까. 7곳에 흩어진 가야 고분을 묶은 ‘가야고분군(Gaya Tumuli)’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확실시된다고 한다. 오는 9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리는 제45차 세계유산위원회를 앞두고 유네스코 심사·자문기구가 최근 ‘등재 권고’ 판단을 내렸다. 고분들은 경북 고령 지산동, 경남 김해 대성동, 함안 말이산, 창녕 교동·송현동, 고성 송학동, 합천 옥전, 전북 남원 유곡리·두락리에 있다. 이곳에선 그 시기 생활상을 보여주는 금동관·목걸이·토기·마구 등이 출토됐다.
가야고분군은 1995년 석굴암·불국사 이후 한국의 16번째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된다. 북한이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은 ‘고구려고분군’에 이어 한반도 고분군으로는 두번째다. 유네스코는 가야고분군이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유일한 혹은 적어도 독보적인 증거”라는 등재 기준을 충족한다고 밝혔다. 지리적으로 떨어진 고분들은 가야 연맹에 속한 대등한 정치체들이 주변국과 공존하면서 자율적·수평적인 관계망을 유지해온 점을 보여줘 고대 동아시아 국가 형성 과정의 다양성을 입증하는 중요한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가야가 중앙집권국가가 되지 못해 역사서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못했지만, 바로 그 이유로 15세기가 지나 조명받는 것은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한 개인의 삶은 대부분 한 세기를 넘지 못하고 끝난다. 문화유산은 유한한 인간이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영원성을 희구하는 인류 문명의 속성을 드러낸다. 가야고분군은 반드시 강하고, 승리한 것이어야 살아남는 게 아니라는 점을 새삼 일깨운다.
손제민 논설위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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