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의 전설’ 장훈의 조막손 [만물상]
‘일본 프로 야구의 전설’ 장훈(張勳·83)은 원래 오른손잡이였다. 왼손잡이가 된 것은 네 살 때 입은 화상 때문이다. 가난한 재일교포의 2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난 장훈이 한겨울 모닥불에 고구마를 익혀 먹으려 할 때 트럭이 후진해서 밀어버렸다. 불 속에 오른손을 짚어 약지와 새끼손가락이 붙어 버렸다. 엄지와 검지도 심하게 구부러졌다. 조막손이 된 것이다. 어머니 박순분 여사가 그를 업고 사방팔방으로 뛰었으나 허사였다. 장훈은 “오른손으로는 작은 널빤지 하나만 들 수 있을 정도가 됐다”고 했다.
▶타자가 스윙할 때는 두 손으로 배트를 잡고 회전하면서 끝까지 뻗어줘야 한다. 장훈의 오른손 힘은 다른 선수보다 현격히 떨어진다. 그럼에도 23년간 2752경기에서 통산 3할1푼9리, 안타 3085개, 수위 타자 7회의 대기록을 남겼다. 전무후무하다. 백인천 전 롯데 감독은 “그런 손으로 그런 기록 낼 수 있는 사람은 절대 없다”며 “새벽 1시에 팬티만 입고 연습하는 것을 본 적도 있다”고 했다.
▶장훈은 그렇게까지 피나는 연습을 한 이유로 어머니를 꼽는다. “성공해서 어머니에게 비단저고리 사주고 돈을 많이 드리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사랑하는 어머니로부터 크게 야단맞은 적이 있다. 프로야구 구단에 입단하면서 일본에 귀화하려고 했다. 그러자 어머니가 “조국을 팔겠다는 것이냐. 당장 야구를 그만두라”고 했다. 장훈은 “그때만큼 어머니가 화난 적은 없었다”고 했다. 장훈은 귀화하지 않았고 프로 계약금 200만엔을 신문지에 싸서 전부 어머니에게 바쳤다.
▶일본 특파원 시절, 장훈 선수를 몇 차례 본 적이 있다. 일본 방송에 출연 후 한국인이 많은 식당과 술집에서 사람들과 자주 어울렸다. 팔순의 나이에도 언제나 당당한 ‘한국 사나이’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한국 미디어와 인터뷰에서는 “국적은 종이 하나로 바꿀 수 있지만, 민족의 피는 바꿀 수 없다”고 얘기해왔다.
▶항상 웃는 얼굴의 장훈이 본지 인터뷰에서 히로시마 원폭 투하 때 누나를 잃은 사실을 밝히며 눈물을 흘렸다. 한일 양국 지도자가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함께 참배하기로 한 데 대해 “감사하다”고 했다. 기시다 총리가 징용 피해자들에 대해 “가슴 아프다”고 한 데 대해 “사과한다는 말은 안 썼지만 (재일교포인) 나는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히로시마 생존 피폭자인 그의 눈물은 한일관계가 요동칠 때마다 숨죽여 지내야 하는 교포들의 고통을 상징하는 것 같다. 노(老)영웅이 다시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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