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애나 존스의 시대 끝났다” 英, 이라크에 문화재 6000점 반환
서구 박물관 약탈 문화재 돌려준다
19~20세기 제국주의 시절 세계에서 약탈한 문화재들을 반환하려는 미국과 유럽의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미 문화계에선 “문화재 약탈을 트로피 쟁탈 게임으로 여겼던 ‘인디애나 존스의 시대’가 끝났다. 서구 문화계의 문법이 바뀌었다”(뉴욕타임스)는 말까지 나온다. 인디애나 존스는 모험심 강한 백인 고고학자가 제3세계에서 고대 유물·보물을 무단 도굴해 빼돌리는 것을 영웅처럼 그린 해리슨 포드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다.
뉴욕 소재의 미 최대 박물관인 메트로폴리탄 박물관(메트)은 지난 9일 “18명 규모의 전문 조사팀을 구성해 150만여 점의 고대 유물 등 소장품에 대해 유입 경로 등을 놓고 사실상 전수조사를 한 뒤, 환수 조치 검토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맨해튼 검찰이 메트 보유 문화재 중 장물임이 입증된 27점을 압수해 반환시켰는데, 관련 수사가 계속 이어지자 선제적으로 나선 것이다. 앞서 보스턴 미술관도 수사 움직임이 일자 자발적으로 내부 조사팀을 꾸렸다.
9일 이라크는 영국이 학술 연구 목적으로 100년간 임대해간 문화재 6000여 점을 영국박물관으로부터 돌려받았다. 이라크 대통령이 바그다드 공항에서 회견을 열고 찰스 3세 국왕의 반환 결단에 감사를 표했다. 앞서 나이지리아는 1980년대 약탈돼 영국 케임브리지대가 소장했던 문화재 6점을 125년 만에 되찾았다. 이집트는 미 텍사스 휴스턴 자연과학박물관에 전시됐던 2300년전 이집트 왕조 시대 유물 ‘녹색관’을 미 외교관들로부터 돌려받았다. 캄보디아는 미 덴버 미술관에서 고대 유물 4점을, 나이지리아는 미 스미스소니언 협회와 영국으로부터 각각 베닌 왕조의 청동 유물 ‘베닌 브론즈’를 돌려받았다.
서구는 1800년대부터 시작해 1·2차 세계 대전기까지 아시아·중동·아프리카·유럽의 고대 문명국에서 문화재 유물을 정책적으로 대거 확보했고 민간 도굴꾼들도 활개쳤다. 이후 1960~1990년대 예술품 밀매업자들의 ‘세탁’ 과정을 거쳐 유수의 박물관들이 이를 본격적으로 사들이거나 기증받았다. 박물관들은 “우린 정당한 대가를 지불했다”는 입장이지만, 뺏긴 나라들은 장물인 만큼 서구 정부와 문화계가 책임지고 반환하라는 입장이다.
약탈 문화재 반환은 2000년대 후반 영국의 브렉시트, 유럽 반(反)이민정책이 강화되고 미 패권이 상대적으로 약화되면서 본격화됐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과거 프랑스 식민지였던 아프리카가 중국 영향권에 들어가자, 아프리카의 마음을 사기 위해 ‘유물 반환 보좌관’까지 신설해 루브르 박물관 등에 소장된 문화재 반환을 추진해왔다. 독일, 아일랜드, 이스라엘 등도 사회 정의, 역사 반성 차원에서 약탈·밀반입 문화재들을 속속 찾아내 반환하고 있다.
그러나 쉽게 반환되는 것들은 유물로서의 인기나 중요도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세계 최대 장물 보관소’란 비판까지 받는 영국박물관은 지난해 파르테논 신전에서 떼어온 국보급 엘긴 마블을 그리스에 반환하기로 잠정 합의했으나, 돌연 “오토만 제국으로부터 합법적으로 취득했다는 증거가 새로 나왔다” “떼어내 이송하면 파손될 우려가 있다”며 집행을 미루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 기원전 196년에 고대 이집트 문자가 새겨진 영국박물관의 로제타 스톤 역시 반환 가능성이 적다고 한다. 캄보디아는 크메르 제국 시절 문화재 77점을 영국 래치포드 가문으로부터 돌려받았으나, 훈센 총리가 나서 “나머지 장물도 다 돌려달라”고 요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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