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회계 자료 공개 거부’, 과태료 부과가 한계… 고용부 “법 개정 추진할 것”
회계 자료 제출 거부에 이어 정부의 현장 조사까지 거부한 노동조합 37곳에 대해, 고용노동부가 과태료 부과 외에 추가적인 조치는 하기 어렵다고 12일 밝혔다. 한국노총·민주노총을 비롯한 회계 자료 미제출 노조들은 각각 지금까지 부과된 최대 650만원의 과태료만 내면, 회계 세부 내역을 공개하지 않을 수 있게 됐다.
지난 2월 고용부는 조합원 1000명 이상 노조 334곳에 공문을 보내, 노조법상 사무실에 둬야 하는 회계 장부 등을 실제로 비치하고 있다는 것을 증빙하는 자료를 낼 것을 요구했다. 조합원들이 자기 노조의 회계 처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를 언제든지 노조 사무실에 가서 확인해볼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양대 노총은 고용부 조치가 “노조 자주성에 대한 침해”라며 산하 노조들에 협조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다. 고용부가 제출 시한을 연장해가며 기회를 줬지만 양대 노총 본부를 비롯한 52곳이 증빙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고용부는 지난 3월 이 노조들이 ‘정부가 요구하는 경우 결산 결과와 운영 상황을 보고해야 한다’는 노조법 제27조를 어겼다고 보고, 각 노조에 과태료 150만원을 부과하는 한편, 지난달 21일부터 이달 3일까지 각 노조 사무실에 근로감독관을 보내 현장 조사를 시도했다. 이 노조들이 회계 장부 등을 사무실에 비치하고 있는지를 직접 확인하기 위한 절차였다. ‘질서 위반 행위가 발생했다는 합리적 의심이 있는 경우’ 공무원이 현장에 가 조사를 할 수 있다는 질서위반행위규제법 제22조에 따른 조치였다.
그러나 이 기간 고용부가 현장 조사를 시도한 노조 38곳 가운데 단 1곳을 제외한 37곳이 조사를 거부했고, 고용부는 이 노조들에 각각 질서위반행위규제법 제57조에 따라 5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회계 자료 제출과 현장 조사를 모두 거부한 한국노총·민주노총 등 노조들이 각각 내야 하는 과태료는 최대 650만원이 됐다.
고용부는 이 노조들이 회계 장부를 조합원들이 볼 수 있는 상태로 두고 있는지는 끝내 확인하지 못했다. 그러나 고용부는 각 노조에 회계 자료 제출을 다시 요구하거나, 현장 조사를 재차 시도하지는 않을 계획이다. 고용부는 노조들이 회계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있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데 대해서 자료 제출을 반복해 요구하거나 이를 근거로 과태료를 거듭 부과하기는 현행 법상 어렵다고 본 것으로 알려졌다.
회계 관련 자료를 공개할 의사가 없는 노조들은 최대 650만원의 과태료만 내면 자료 공개를 피할 수 있게 됐다. 한 회계 전문가는 본지에 “큰 규모의 회계 부정이 있어서 이를 숨겨야 하는 노조가 있다면, 그런 노조들은 약간의 과태료를 내고 자료 제출을 끝까지 피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볼 것”이라고 했다. 양대 노총을 비롯한 노조들은 과태료 부과에 불복해 법원에서 재판을 받겠다는 입장이어서, 과태료조차 내지 않게 될 가능성도 있다.
노조들이 회계 자료 제출 요구를 회피할 수 없도록 노조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달 협의를 통해 노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노조 회계감사원의 자격 요건을 규정하고, 조합원 3분의 1 이상이 회계감사를 요구하는 경우 회계감사를 실시해 그 결과를 공개하도록 하며, 노조가 회계를 고용부가 구축하는 회계 공시 시스템에 자발적으로 공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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