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커버스터] 푸틴의 쪼그라든 열병식…"이겨라" 외친 김정은 속내

김아영 기자 2023. 5. 12.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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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과 푸틴의 브로맨스…러시아의 절대반지는?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 안보 이슈를 정밀 타격하듯 풀어드리는 벙커버스터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SBS 통일외교팀 김아영입니다.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약 열흘 만에 한일 정상이 서울에서 만났고 며칠 뒤면 일본에서 또 한미일 정상이 만납니다. 약한 고리였던 한일 관계 개선에도 속도가 붙으면서 한미일 그 어느 때보다 서로를 더 끌어안고 있죠. 건너 편에 선 북한과 중국 러시아 관계라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북한은 중국과 일찌감치 전통의 순망치한 관계를 복원했고 러시아와도 하루가 다르게 끈끈해지는 분위기입니다.
 

'진짜 전쟁' 선언한 푸틴…"성전 이겨라" 응원한 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공간이죠. 지난 9일, 모스크바 크렘린궁 앞에 있는 붉은 광장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날은 옛 소련이 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로부터 항복을 받아낸 지 78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두 번째 맞는 '전승절'이었는데, 지난해와 비교하면 무기 동원 규모도 인원도 축소됐다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외신에 따르면 지난해 131대 동원된 전차는 올해 51대, 지난해 11,000명이 동원된 병력은 올해 8,000명에 그쳤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이제 러시아를 향한 진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며 독기가 서린 선언을 했습니다. 그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전쟁이라는 표현을 공식적으로 사용한 건 처음입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 러시아 대통령
오늘날 문명은 다시 한번 결정적인 전환점에 서 있습니다. 우리 조국을 상대로 한 진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최첨단 무기도 이번엔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세 과시는 의식한 듯 보였습니다. 지난해와 달리 옛 소련권인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탄 대통령도 참가시켰기 때문이죠. 그리고 모스크바까지 직접 가진 못했어도 이들보다 더 열렬히 응원을 보낸 인물은 한 명 더 있었습니다.
 
조선중앙TV : 앞으로도 계속 승리하리라고
 
북한의 김정은 총비섭니다.
 
조선중앙TV (김정은 총비서 축전) : 제국주의자들의 강권과 전횡에 맞서 국제적 정의를 실현하고 세계의 평화를 수호하기 위한 성스러운 투쟁에 과감히 떨쳐 나선
 

단 한 번 강렬한 만남…김정은-푸틴 '브로맨스'?


국제사회가 맹렬히 비난하는 전쟁을 성전에 비유할 만큼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사이지만, 정작 두 사람이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눈 건 한 차례 뿐입니다. 2019년 4월, 여전히 바람이 찼던 러시아 블라디보스크에섭니다.
 
김정은 총비서 : 안녕하십니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 때만 해도 북한의 속은 사실 말이 아니었을 겁니다. 트럼프와 '빅딜'을 꿈꾸며 베트남 하노이까지 갔다가 빈손으로 온 지 두 달밖에 지나지 않은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쓰린 속을 달래기라도 하듯 김정은은 새로운 북-러 관계를 만들자며 푸틴의 손을 붙잡았습니다. 지금은 집권 20년이 넘은 푸틴과 10년 차를 넘긴 김정은. 장기 집권하는 지도자끼리는 한 번 만나는 것 만으로 남 달리 통하는 게 있는 걸까요? 북-러 관계, 이후 쾌속 질주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두 나라 관계를 한 꺼풀만 벗겨보면 겉에서 보이는 것과는 다른 양상이 나타난다고 진단합니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학교 교수
(북한과 러시아는 서로를 향해) 웃음을 짓고 하지만 여전히 내면이 아주 약합니다. (러시아에서는) 반 미국 민족주의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해 아주 비판적인, 아주 비판적인 의식은 여전히 주류입니다. (두 나라 관계는) 임시적인 동맹 사실상 그게 동상이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뿌리가 단단한 흔들림 없는 관계보다는 서로의 필요에 따라 밀착하거나 멀어지는 걸 반복했던 임시적인 관계 성격이 더 컸다는 겁니다
 

편들 때는 확실하게…우크라 전 '기회' 잡았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북한은 '우리가 확실하게 당신들 편에 섰다'는 메시지를 러시아를 향해 줄곧 보내고 있습니다. 전쟁 한 달 만인 지난해 3월, 유엔에선 25년 만에 긴급 특별 총회란 게 열렸는데 러시아 침공을 규탄하고 철군을 요구를 하는 결의안에 찬반을 묻기 위해서였죠. 찬성표가 압도적으로 쏟아졌고 중국과 이란은 차마 반대는 하지 못한 채 기권을 했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러시아와 같은 선택을 했습니다. 이날 반대표 던진 나라 러시아 북한 포함 5곳에 불과했습니다.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친러시아 성향 분리주의자들이 선포한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의 독립 역시 북한은 러시아, 시리아 다음으로 재빨리 승인했습니다.
 
김성 / 주 유엔 북한 대사
(주민 투표를 통한 주민들의) 자기결정권은 다른 나라의 간섭 없이 주권과 국제 정치적 지위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합법적인 권리입니다
 
국제 무대에서 지지하는 목소리 하나가 아쉬운 러시아, 러시아에 대해선 마땅히 지렛대가 없던 북한으로선 생색을 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북한이 받을 건 명확합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손에 끼워진 절대 반지 거부권이죠.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학교 교수
북한 입장에서 보면 값싼 거예요. 유엔 총회에서 러시아를 지지하는 것은 (별도로) 투자가 (필요) 없어요. 그 대신에 러시아는 의미가 훨씬 더 많은, 유엔 안보리에서의 대북 제재를 가로막을 수 있습니다. (북한으로서는) 아주 좋은 거래입니다. 싼 것을 주고 비싼 것을 받아요.
 
지금 유엔 안보리 시스템에선 중국 한 곳만 거부해도 불가능한 게 추가 제재인데 러시아까지 확실하게 이중 보험을 들어둔 모양새입니다. 핵무기 고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북한으로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국의 전선이 러시아까지 확대되고 이른바 신냉전 구도가 강조되는 상황, 그리 나쁘지 않을 거라는 분석입니다.
 
이호령 /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
북한한테 가장 유리한 국면이라고 본인들이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신 냉전 체제'라는 것을 강조하고 북중러 한미일 3 대 3 구도를 자극적으로 많이 이야기하고 있는 거죠 러시아보다는 북한이 더 유리한 국면이다(라고 북한이 생각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북한은 지난달 고체 연료 기반의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인 화성 18형을 쏘고도 추가 제재 하나 받지 않았습니다.
 

러시아산 빼닮은 미사일…군사 협력 노골화 땐?

 
여기서 또 흥미로운 건 화성 18형의 생김샙니다. 러시아가 1990년대에서 2000년대 개발한 고체 연료 ICBM 토폴M과 닮아있기 때문이죠. 북한이 10여 년 전부터 준비했다면서 야심 차게 공개한 최신 병기 해일은 러시아가 실전 배치한 대륙 간 핵 추진 어뢰, 포세이돈을 따라한 걸로 보입니다. 변칙 궤도로 요격이 어렵다는 단거리 미사일 KN-23은 러시아의 이스칸데르 미사일과 흡사해 아예 북한판 이스칸데르라고도 불리죠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학교 교수
북한은 벌써 1970년대 군수공업 군수기업소를 대상으로 하는 첩보 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1990년대 소련 붕괴 이후 실업자가 된 기술자들은 돈 때문에도 반 미국 사상 때문에도 북한으로 중요한 전달한 기술을 전달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호령 /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
인민군이 태생하게 되고 발전하게 되고 기반을 닦아준 것이 구소련 때부터 만들어졌다는 것이죠. 그래서 실질적으로 북한의 상당 부분의 재래식 무기는 다 러시아제 무기에 기반해서 발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푸틴의 최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최근 우리에게 꽤 섬찟한 위협을 하기도 했습니다.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가능성을 열어둔 윤석열 대통령의 외신 인터뷰를 겨냥해 최신식 러시아 무기가 북한에 넘어간다면 한국 사람들이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고 한 거죠.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학교 교수
(러시아가 반발해) 탱크나 경화무기를 (북한에) 수출할 수도 있고 이런 저런 기술을 전달할 수도 있습니다. (한국이 무기를 제공한다면) 거의 확실히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냥, 이것은 보복 조치이니까.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해 북한 도발에 전혀 제동을 걸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지금보다 더 노골적으로 군사 협력에 나선다는 건 완전히 차원이 다른 얘기가 될 수 있습니다.
 

미사일이 전부 아니다…북핵에도 러시아 지분?


러시아의 그늘, 미사일에만 드리워져 있는 건 아닙니다. 북한은 1956년엔 소련과 핵 연구 협정을, 1959년엔 원자력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1960년대 영변 단지에 도입한 원자로 역시 소련의 지원을 받은 것이었죠. 기술 협력 뿐만 아니라, 북한이 핵 개발 의지를 확실히 하게 된 변곡점마다 소련이 있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1962년 소련이 미국 턱 끝에 있는 쿠바에 핵 미사일을 배치하려고 시도하다 핵전쟁 직전까지 갔던 쿠바 미사일 위기도 그 예입니다. 냉전 시대 최고 위기였던 당시 상황은 소련이 쿠바에 배치된 미사일을 철수하는 것으로 일단락 됐는데 북한에는 적지 않은 충격을 던진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학교 교수
그들의 입장에서 쿠바 미사일 결과는 소련의 배신 행위인겁니다. 신호가 됐습니다. 소련과 미국은 우리 국가 이익에 맞지 않는 타협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와 같은 시나리오를 예방하기 위해서 우리(북한)도 자기 힘으로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북한이 러시아와의 관계를 재평가하는 시기는 세계 정세를 달리 읽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북러 관계, 어쩌면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큰 나비 효과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러시아 견제할 G7…북러 밀착 지속

 
러시아를 견제하는 정상들의 행사가 또 막이 오릅니다. 오는 19일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 G7 정상회의입니다. 미국은 의약품 농산물을 제외하곤 모든 품목에 대한 러시아 수출을 금지하는 방안을 G7 회원국들과 사전 협의하기도 했죠. 러시아, 그리고 푸틴을 고립시키기 위한 외교의 장이 펼쳐질 것인데, 친구가 사라진 러시아를 향해 북한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한미일 대 북중러,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진영 구도가 선명해지는 구도를 더는 피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지만 조용히 뒤에서 웃고 있는 건 그 누구도 아닌 북한일지 모릅니다.

영상취재 : 김현상 / 편집 : 정용희 / 콘텐츠디자인 : 고결 / 제작 : D콘텐츠기획부

김아영 기자nin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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