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바로 신고 안 했지?” 피해자답지 않은 ‘죄’
2023. 5. 12. 18:14
친구와 클럽에 갔다 모텔서 옷 벗겨진 채 눈을 떴는데
이틀 뒤 고소했단 이유로 검찰은 기소도 안 하려 했고
법원은 성관계에 합의했다는 상대의 진술을 받아들여
지난 4월 27일 만취 상태의 여성을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로 기소된 남성이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이 사건은 2020년 5월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자 163개의 시민단체가 모여 ‘준강간 사건의 정의로운 판결을 위한 공동대책위(공대위)’를 꾸려 대응해온 사건이다. 이들은 만취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성폭력 상담사례에서 흔히 볼 수 있을 정도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가장 보통의 준강간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준강간·준강제추행은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해 간음 또는 추행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형법 제299조는 준강간·준강제추행을 강간 또는 강제추행의 죄와 같이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날 공대위는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17년 본 준강간 사건의 발생부터 신고, 항소심 판결 그리고 대법원 선고에 이르기까지 사법적 의무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피해자의 권리가 완전히 배제당했다”며 사법시스템 전반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사건은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7년 5월 5일 A씨는 친구들과 함께 서울의 한 클럽에 놀러갔다. 친구들과 첫차를 타고 집에 돌아가기로 한 후, 차 시간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친구들과 잠깐 떨어져 있는 사이 피해자에게 B씨가 다가와 같이 술을 마시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A씨는 친구들을 기다리는 동안만 동석하기로 했다가 술을 한두 모금 마시고 기억을 잃었다. 잠이 깼을 때 A씨는 경기도 외곽의 한 모텔에서 옷이 벗겨진 채 누워 있었다. A씨는 소지품도 클럽에 놔둔 상태였으며, 친구들은 연락이 안 되는 A씨를 아침까지 찾아 헤매야 했다. 모텔방 침대에서는 B씨가 자고 있었다. 이틀 후 A씨는 B씨를 강간 및 준강간 혐의로 경찰에 신고했다.
■ 항거불능 상태 입증에도 무죄
A씨는 여러 가지 정황상, 자신이 잠든 사이 성폭행이 있었을 것이라고 봤다. 반면 B씨는 모텔에 들어가자마자 성관계를 하려고 A씨의 옷을 벗겼지만, ‘시체와 성교하는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은 B씨의 진술을 받아들여 B씨를 ‘준강간 기수’가 아닌 ‘미수’로 기소했다.
B씨는 1심, 2심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고, 대법원에서도 무죄를 확정받았다. 피해자 측 변호인은 “이 사건을 맡았을 때는 이렇게 오랜 기간이 걸릴지도 유죄를 인정받기 위해 이처럼 외롭고 힘든 싸움을 하게 될지도 전혀 예상치 못했다”라며 “준강간 사건은 보통 범행 시점에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였는지가 입증됐는지에 따라 유·무죄의 판단이 달라지기에, 피해 당시 피해자의 상태가 명확히 확인되는 이 사건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준강간 사건에서 수사기관 및 재판부는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였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피해자가 멀쩡하게 걷는 장면이 촬영된 CCTV가 있는지, 피해자가 멀쩡하게 보낸 메시지가 있는지, 피해자가 걷거나 말을 하는 것을 보는 사람이 있는지, 피해자가 결제한 내역이 있는지 등을 엄격하게 따진다. ‘준강간·준강제추행’만큼 고소가 어려운 사건이 없다고 할 정도로 지나치게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대 논란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사건의 경우 수사 과정에서 확보된 모텔 CCTV에 만취 상태에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A씨의 상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건 당일 오전 5시 50분경 B씨를 비롯한 남성 4명은 만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A씨를 차에서 끄집어냈다. A씨는 신발도 신지 못하고 허리는 90도로 접힌 채 B씨 일행에 질질 끌리다시피 해서 모텔에 들어갔다. A씨의 항거불능 상태는 명확하게 입증된 셈이다. 검찰은 B씨를 피해자의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해 강간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로 기소했다.
법원은 그러나 B씨가 A씨의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해 성관계를 할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1심·2심과 대법원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클럽에서 A씨와 성관계에 동의했고, 모텔에 가 옷을 벗기면 A씨가 깨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B씨의 진술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A씨에게는 성관계에 동의한 기억이 없었다. CCTV 속 A씨는 양옆에서 남성들이 끌고 가도 고개조차 못 들 정도로 취해 있어 쉽게 깨어나기 어려워보이는 상황이었다. 양 측의 주장은 어긋났지만, 법원은 A씨와 B씨가 손을 잡고 스킨십을 하는 장면을 보았다는 B씨 친구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성관계에 동의한 것으로 여길 만한 대화가 오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피해자 측은 “피해자는 CCTV상으로도 명백한 항거불능 상태였고, 피고인 또한 피해자에 대해 ‘시체와 같았다’고 표현할 정도로 피해자의 상태를 인지했다. 즉 피해자의 항거불능 상태를 충분히 인지하고 이를 이용해 간음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는 성관계에 동의한 기억이 없다. 상황 또한 친구들과 함께 귀가하기로 해 ‘잠시만 앉아 있겠다’고 동석을 한 상황이었다”라며 “들고 있던 휴대폰 외 어떤 소지품도 가지고 나오지 못했으며 친구들에게 먼저 귀가한다는 말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낯선 남성과 성관계를 하기 위해 새벽 시간에 성인 남성 4명이 탑승한 차량을 이용해 서울 외곽까지 이동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동의를 받았다는 피고인의 주장을 따르더라도 피고인이 성관계를 실행하고자 할 시점에 피해자의 상태는 항거불능 상태로 사정이 변경됐기에 그 시점에서는 피해자의 동의가 없었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 납득 어려운 검찰의 불기소
CCTV로 항거불능 상태가 명확하게 드러나고 B씨가 만취한 피해자 A씨의 옷을 벗긴 사실이 인정됐음에도 B씨는 무죄로 풀려났다. 피해자 변호인은 “적어도 준강제추행죄로라도 유죄가 날 것으로 봤다”라며 “피해자 진술은 일관됐고, 피해자의 상태도 명확히 확인됐다. 피해자가 친구들과 나눈 메시지에서 객관적인 고소 경위가 드러났으며, 피고인을 무고할 동기도 없다. 그런데 피해자의 진술은 재판 과정에서 배척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유를 추측하자면 이 사건은 애초에 피해자가 같이 신고한 강간이 불기소되면서 발목이 잡혔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애초 A씨는 준강간 외에 강간으로도 B씨를 신고했다. 피해자 측에 따르면 낯선 모텔방에서 눈을 뜬 A씨는 먼저 혼란 속에서 옷을 챙겨 입었다. 길치였던 A씨는 어디인지도 모르는 낯선 곳에서 집에 귀가하기 위해서는 휴대전화가 필요했다. A씨는 B씨가 깨기 전에 방전된 휴대전화를 조금만 충전하고 바로 나가기 위해 침대 밑에 웅크리고 기다리다 깜빡 잠이 들었다. 휴대전화를 충전하며 친구들에게 상황을 알리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 사이 B씨는 잠에서 깼고 물리력을 행사하며 A씨를 강간했다. A씨는 거부했지만, 힘을 이기지 못해 콘돔이라도 사용해달라고 요청했다. A씨는 경찰에 술에 취했을 때(준강간), 깨어났을 때(강간) 모두 두 차례의 강간이 있었다고 신고했다.
반면 B씨는 술에 취했을 때는 성관계를 하지 않았고, 깨어난 후에는 A씨가 콘돔을 요구했다며 동의에 의한 성관계였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B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강간·준강간 미수를 비롯한 모든 혐의에 대해 불기소 처분했다. 검찰은 불기소 이유로 A씨가 깨어난 후 즉시 외부로 구조 요청을 하지 않았고, 바로 도주하지 않았으며, B씨에게 콘돔 사용을 요구하고, 사건 발생 이틀 뒤에 신고했다는 점 등을 들었다.
A씨는 항고했지만 검찰은 이를 또 기각했다. 겨우 재정신청(검사가 고소 사건이나 고발 사건에 대해 독단적으로 불기소 결정을 내렸을 때 그 결정에 불복하는 고소)이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마저도 ‘강간’은 기각됐고 ‘준강간미수’ 혐의에 대해서만 인용됐다.
기각됐던 ‘강간’ 혐의는 이후 ‘합의된 성관계’로 간주되면서 ‘준강간 미수’ 재판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2심 판결문은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피고인 측이 주장한 ‘합의된 성관계’를 주요 근거로 들었다. B씨는 ‘준강간 미수’ 혐의에 대해 옷을 벗기다 보면 피해자가 깨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하면서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해 간음하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진술했다. 피해자의 옷을 벗긴 이후 성관계를 하지 않은 경위에 관해서는 ‘어차피 성관계 합의를 하고 온 거라 다음날에 할 수도 있는 것인데 굳이 자고 있는 피해자를 상대로 성관계를 할 생각이 없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2심 판결문은 B씨의 진술을 인용하며 “피고인이 실제 이 사건 당일 오후 모텔 방에서 잠에서 깬 피해자와 성관계를 했는데 당시 피고인이 폭행 등 유형력을 행사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한다고 밝혔다. 불기소 처분이 내려진 강간 혐의는 ‘다음날 성관계’로 간주돼 준강간 미수 무죄의 한 근거로 작용한 셈이다.
그렇다면 강간 혐의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 처분 이유는 충분히 납득할 만한 것이었을까. 시민사회에서는 검찰이 제시한 이유에 대해 성폭력 피해자에게 요구되는 전형적인 ‘피해자다움’의 편견이 작동됐다고 비판했다. 조소연 한국성폭력위기센터 소장은 “대법원 결과가 도출되기까지 모든 과정은 비상식적이었으며 철저한 가해자 중심이었다”라며 “피해자는 피해 당시에는 ‘더 강하게 저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피해 직후 ‘즉시 현장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소를 하기까지 2일이 걸렸다’는 이유로 두 차례나 강간 피해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마주해야 했다”고 비판했다.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만취했던 피해자가 몇 시간 만에 깨어났더라도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운 심한 숙취 상태였을 가능성이 높다. 콘돔 사용은 강간 위기 상황에서 도주할 기회 및 시간을 벌기 위해 또는 임신이나 성병 등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요구되기도 한다. 피해자 A씨는 콘돔 사용을 요구하면서 B씨의 시선을 돌려 도주하려 했지만 실패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사건 발생 이틀 뒤에 신고했다는 점을 ‘늦었다’고 보는 것은 ‘성폭력 범죄 피해자라면 즉신 신고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통념이다. 성폭력 피해자들과 연대하며 사법시스템 감시활동을 해온 연대자D는 “낯선 사람에 의한 성폭력 피해든 아는 사이에서 일어난 성폭력 피해든 피해자가 성폭력 피해를 인지하고 본인이 성폭력 피해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과정 자체가 바로 되지 않는다”라며 “이 사건의 피해자가 몸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도 이틀 만에 대응책을 마련해 신고하러 간 것은 비교적 빠른 시간에 신고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검찰이 제시한 불기소 이유가 해당 사건이 놓여 있는 전체적인 상황과 맥락을 보기보다는 ‘피해자는 이럴 것’이라는 ‘피해자다움’의 편견에 따라 적용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해외에서는 ‘피해자다움’에 대한 편견이 성폭력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작용하는 것을 경계한다. 미국 테네시주 법원은 “법원이 신속한 고소의 원칙을 폐지하고자 하는 것을 선호하는 이유는 위 원칙이 성폭력 피해자인 여성이 정형화된 방법으로 피해 사실을 고소해야 하며 그러지 않을 경우 신빙성이 없다는 성차별적 기대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언급했다. 영국 항소심 법원은 “피해자마다 심각한 성범죄 트라우마에 반응하는 것이 모두 다르므로 전형적인 반응이란 존재할 수 없고 성범죄 피해 이후 즉각적으로 고소를 제기하는 피해자도 있는 반면, 성범죄로 인해 갖게 되는 충격 등으로 인해 이를 고지하는 시점이 늦어지는 피해자도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
■ ‘피해자다움’이라는 편견
2018년 4월 대법원 판결에 ‘성인지감수성’이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당시 대법원 제2부는 학생을 성희롱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은 대학교수가 낸 해임 결정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재판부는 이때 판결에서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 심리를 할 때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가장 보통의 준강간’ 판결을 보면 법원의 판결은 여전히 가해자 중심이다. 성인지감수성과도 동떨어져 있다. 재정신청 인용으로 법원의 명령에 의해 기소한 검찰은 재판 당사자임에도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 재판에서 ‘최종 불기소 의견’이라고 밝히며 의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검사에게 재정사건이니 백지 구형을 내려도 좋다고 말했다. 법정의 분위기가 기울어진 상황에서 재판부는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이라는 명분으로 피해자에게 부여된 발언권은 배제하였다. 결국 1심은 배심원 7명 중 5명이 무죄 평결을 내렸고,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무죄가 선고됐다.
2심 판결에서는 B씨가 거짓말한 정황도 지적됐다. 피해자 A씨에게 택시를 타고 왔다는 등 모텔에 온 경위를 사실과 달리 설명했다. 모텔직원에게 ‘A씨가 모텔에 들어갈 때 (만취상태가 아니라) 무리가 없어 보였다’는 등의 사실확인서를 받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클럽에서 두 사람이 스킨십하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봤다’라는 B씨 친구들의 진술을 토대로 “적어도 피고인에게 준강간 고의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하나의 정황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피해자 측은 “재판 과정에서 B씨 및 친구들의 진술의 신빙성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은 채 그들의 진술을 왜 믿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 없이 그저 스킨십이 있었다는 진술을 토대로 스킨십이 있었다며 고의를 부인하는 근거를 삼았다”며 “피고인 및 참고인들의 진술을 믿을 수 있는지 기록을 통해 확인하고 판단해야 함에도 아무런 판단 없이 피고인 및 참고인의 진술을 준강간 고의 부인의 근거로 삼게 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태옥 천주교성폭력상담소 소장은 “1심 재판은 준강간의 고의, 준강간 실행의 착수나 중단 등 법리에 대한 판단임에도 법률 비전문가인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무죄로 판단됐다. 2심에서는 (B씨의 거짓말과 피해자의 법정진술이 있었음에도) 성폭력 사건의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에 대한 판단은 전무했다”라고 지적했다.
연대자D는 “피해자를 배제·소외하는 한국 형사사법시스템의 극단적인 사례라고 생각한다. 수사기관, 공소유지를 해야 하는 검찰, 재판부 모두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결국 실체적인 진실 파악에 실패했다. ‘법대로’ 피해를 인정받고 회복하려던 피해자들의 의지를 꺾어버린 부적절한 사례이다”라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이틀 뒤 고소했단 이유로 검찰은 기소도 안 하려 했고
법원은 성관계에 합의했다는 상대의 진술을 받아들여
지난 4월 27일 만취 상태의 여성을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로 기소된 남성이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이 사건은 2020년 5월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자 163개의 시민단체가 모여 ‘준강간 사건의 정의로운 판결을 위한 공동대책위(공대위)’를 꾸려 대응해온 사건이다. 이들은 만취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성폭력 상담사례에서 흔히 볼 수 있을 정도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가장 보통의 준강간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준강간·준강제추행은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해 간음 또는 추행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형법 제299조는 준강간·준강제추행을 강간 또는 강제추행의 죄와 같이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날 공대위는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17년 본 준강간 사건의 발생부터 신고, 항소심 판결 그리고 대법원 선고에 이르기까지 사법적 의무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피해자의 권리가 완전히 배제당했다”며 사법시스템 전반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사건은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7년 5월 5일 A씨는 친구들과 함께 서울의 한 클럽에 놀러갔다. 친구들과 첫차를 타고 집에 돌아가기로 한 후, 차 시간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친구들과 잠깐 떨어져 있는 사이 피해자에게 B씨가 다가와 같이 술을 마시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A씨는 친구들을 기다리는 동안만 동석하기로 했다가 술을 한두 모금 마시고 기억을 잃었다. 잠이 깼을 때 A씨는 경기도 외곽의 한 모텔에서 옷이 벗겨진 채 누워 있었다. A씨는 소지품도 클럽에 놔둔 상태였으며, 친구들은 연락이 안 되는 A씨를 아침까지 찾아 헤매야 했다. 모텔방 침대에서는 B씨가 자고 있었다. 이틀 후 A씨는 B씨를 강간 및 준강간 혐의로 경찰에 신고했다.
■ 항거불능 상태 입증에도 무죄
A씨는 여러 가지 정황상, 자신이 잠든 사이 성폭행이 있었을 것이라고 봤다. 반면 B씨는 모텔에 들어가자마자 성관계를 하려고 A씨의 옷을 벗겼지만, ‘시체와 성교하는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은 B씨의 진술을 받아들여 B씨를 ‘준강간 기수’가 아닌 ‘미수’로 기소했다.
B씨는 1심, 2심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고, 대법원에서도 무죄를 확정받았다. 피해자 측 변호인은 “이 사건을 맡았을 때는 이렇게 오랜 기간이 걸릴지도 유죄를 인정받기 위해 이처럼 외롭고 힘든 싸움을 하게 될지도 전혀 예상치 못했다”라며 “준강간 사건은 보통 범행 시점에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였는지가 입증됐는지에 따라 유·무죄의 판단이 달라지기에, 피해 당시 피해자의 상태가 명확히 확인되는 이 사건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준강간 사건에서 수사기관 및 재판부는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였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피해자가 멀쩡하게 걷는 장면이 촬영된 CCTV가 있는지, 피해자가 멀쩡하게 보낸 메시지가 있는지, 피해자가 걷거나 말을 하는 것을 보는 사람이 있는지, 피해자가 결제한 내역이 있는지 등을 엄격하게 따진다. ‘준강간·준강제추행’만큼 고소가 어려운 사건이 없다고 할 정도로 지나치게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대 논란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사건의 경우 수사 과정에서 확보된 모텔 CCTV에 만취 상태에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A씨의 상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건 당일 오전 5시 50분경 B씨를 비롯한 남성 4명은 만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A씨를 차에서 끄집어냈다. A씨는 신발도 신지 못하고 허리는 90도로 접힌 채 B씨 일행에 질질 끌리다시피 해서 모텔에 들어갔다. A씨의 항거불능 상태는 명확하게 입증된 셈이다. 검찰은 B씨를 피해자의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해 강간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로 기소했다.
법원은 그러나 B씨가 A씨의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해 성관계를 할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1심·2심과 대법원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클럽에서 A씨와 성관계에 동의했고, 모텔에 가 옷을 벗기면 A씨가 깨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B씨의 진술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A씨에게는 성관계에 동의한 기억이 없었다. CCTV 속 A씨는 양옆에서 남성들이 끌고 가도 고개조차 못 들 정도로 취해 있어 쉽게 깨어나기 어려워보이는 상황이었다. 양 측의 주장은 어긋났지만, 법원은 A씨와 B씨가 손을 잡고 스킨십을 하는 장면을 보았다는 B씨 친구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성관계에 동의한 것으로 여길 만한 대화가 오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피해자 측은 “피해자는 CCTV상으로도 명백한 항거불능 상태였고, 피고인 또한 피해자에 대해 ‘시체와 같았다’고 표현할 정도로 피해자의 상태를 인지했다. 즉 피해자의 항거불능 상태를 충분히 인지하고 이를 이용해 간음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는 성관계에 동의한 기억이 없다. 상황 또한 친구들과 함께 귀가하기로 해 ‘잠시만 앉아 있겠다’고 동석을 한 상황이었다”라며 “들고 있던 휴대폰 외 어떤 소지품도 가지고 나오지 못했으며 친구들에게 먼저 귀가한다는 말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낯선 남성과 성관계를 하기 위해 새벽 시간에 성인 남성 4명이 탑승한 차량을 이용해 서울 외곽까지 이동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동의를 받았다는 피고인의 주장을 따르더라도 피고인이 성관계를 실행하고자 할 시점에 피해자의 상태는 항거불능 상태로 사정이 변경됐기에 그 시점에서는 피해자의 동의가 없었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 납득 어려운 검찰의 불기소
CCTV로 항거불능 상태가 명확하게 드러나고 B씨가 만취한 피해자 A씨의 옷을 벗긴 사실이 인정됐음에도 B씨는 무죄로 풀려났다. 피해자 변호인은 “적어도 준강제추행죄로라도 유죄가 날 것으로 봤다”라며 “피해자 진술은 일관됐고, 피해자의 상태도 명확히 확인됐다. 피해자가 친구들과 나눈 메시지에서 객관적인 고소 경위가 드러났으며, 피고인을 무고할 동기도 없다. 그런데 피해자의 진술은 재판 과정에서 배척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유를 추측하자면 이 사건은 애초에 피해자가 같이 신고한 강간이 불기소되면서 발목이 잡혔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애초 A씨는 준강간 외에 강간으로도 B씨를 신고했다. 피해자 측에 따르면 낯선 모텔방에서 눈을 뜬 A씨는 먼저 혼란 속에서 옷을 챙겨 입었다. 길치였던 A씨는 어디인지도 모르는 낯선 곳에서 집에 귀가하기 위해서는 휴대전화가 필요했다. A씨는 B씨가 깨기 전에 방전된 휴대전화를 조금만 충전하고 바로 나가기 위해 침대 밑에 웅크리고 기다리다 깜빡 잠이 들었다. 휴대전화를 충전하며 친구들에게 상황을 알리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 사이 B씨는 잠에서 깼고 물리력을 행사하며 A씨를 강간했다. A씨는 거부했지만, 힘을 이기지 못해 콘돔이라도 사용해달라고 요청했다. A씨는 경찰에 술에 취했을 때(준강간), 깨어났을 때(강간) 모두 두 차례의 강간이 있었다고 신고했다.
반면 B씨는 술에 취했을 때는 성관계를 하지 않았고, 깨어난 후에는 A씨가 콘돔을 요구했다며 동의에 의한 성관계였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B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강간·준강간 미수를 비롯한 모든 혐의에 대해 불기소 처분했다. 검찰은 불기소 이유로 A씨가 깨어난 후 즉시 외부로 구조 요청을 하지 않았고, 바로 도주하지 않았으며, B씨에게 콘돔 사용을 요구하고, 사건 발생 이틀 뒤에 신고했다는 점 등을 들었다.
A씨는 항고했지만 검찰은 이를 또 기각했다. 겨우 재정신청(검사가 고소 사건이나 고발 사건에 대해 독단적으로 불기소 결정을 내렸을 때 그 결정에 불복하는 고소)이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마저도 ‘강간’은 기각됐고 ‘준강간미수’ 혐의에 대해서만 인용됐다.
기각됐던 ‘강간’ 혐의는 이후 ‘합의된 성관계’로 간주되면서 ‘준강간 미수’ 재판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2심 판결문은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피고인 측이 주장한 ‘합의된 성관계’를 주요 근거로 들었다. B씨는 ‘준강간 미수’ 혐의에 대해 옷을 벗기다 보면 피해자가 깨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하면서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해 간음하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진술했다. 피해자의 옷을 벗긴 이후 성관계를 하지 않은 경위에 관해서는 ‘어차피 성관계 합의를 하고 온 거라 다음날에 할 수도 있는 것인데 굳이 자고 있는 피해자를 상대로 성관계를 할 생각이 없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2심 판결문은 B씨의 진술을 인용하며 “피고인이 실제 이 사건 당일 오후 모텔 방에서 잠에서 깬 피해자와 성관계를 했는데 당시 피고인이 폭행 등 유형력을 행사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한다고 밝혔다. 불기소 처분이 내려진 강간 혐의는 ‘다음날 성관계’로 간주돼 준강간 미수 무죄의 한 근거로 작용한 셈이다.
그렇다면 강간 혐의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 처분 이유는 충분히 납득할 만한 것이었을까. 시민사회에서는 검찰이 제시한 이유에 대해 성폭력 피해자에게 요구되는 전형적인 ‘피해자다움’의 편견이 작동됐다고 비판했다. 조소연 한국성폭력위기센터 소장은 “대법원 결과가 도출되기까지 모든 과정은 비상식적이었으며 철저한 가해자 중심이었다”라며 “피해자는 피해 당시에는 ‘더 강하게 저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피해 직후 ‘즉시 현장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소를 하기까지 2일이 걸렸다’는 이유로 두 차례나 강간 피해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마주해야 했다”고 비판했다.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만취했던 피해자가 몇 시간 만에 깨어났더라도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운 심한 숙취 상태였을 가능성이 높다. 콘돔 사용은 강간 위기 상황에서 도주할 기회 및 시간을 벌기 위해 또는 임신이나 성병 등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요구되기도 한다. 피해자 A씨는 콘돔 사용을 요구하면서 B씨의 시선을 돌려 도주하려 했지만 실패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사건 발생 이틀 뒤에 신고했다는 점을 ‘늦었다’고 보는 것은 ‘성폭력 범죄 피해자라면 즉신 신고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통념이다. 성폭력 피해자들과 연대하며 사법시스템 감시활동을 해온 연대자D는 “낯선 사람에 의한 성폭력 피해든 아는 사이에서 일어난 성폭력 피해든 피해자가 성폭력 피해를 인지하고 본인이 성폭력 피해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과정 자체가 바로 되지 않는다”라며 “이 사건의 피해자가 몸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도 이틀 만에 대응책을 마련해 신고하러 간 것은 비교적 빠른 시간에 신고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검찰이 제시한 불기소 이유가 해당 사건이 놓여 있는 전체적인 상황과 맥락을 보기보다는 ‘피해자는 이럴 것’이라는 ‘피해자다움’의 편견에 따라 적용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해외에서는 ‘피해자다움’에 대한 편견이 성폭력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작용하는 것을 경계한다. 미국 테네시주 법원은 “법원이 신속한 고소의 원칙을 폐지하고자 하는 것을 선호하는 이유는 위 원칙이 성폭력 피해자인 여성이 정형화된 방법으로 피해 사실을 고소해야 하며 그러지 않을 경우 신빙성이 없다는 성차별적 기대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언급했다. 영국 항소심 법원은 “피해자마다 심각한 성범죄 트라우마에 반응하는 것이 모두 다르므로 전형적인 반응이란 존재할 수 없고 성범죄 피해 이후 즉각적으로 고소를 제기하는 피해자도 있는 반면, 성범죄로 인해 갖게 되는 충격 등으로 인해 이를 고지하는 시점이 늦어지는 피해자도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
■ ‘피해자다움’이라는 편견
2018년 4월 대법원 판결에 ‘성인지감수성’이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당시 대법원 제2부는 학생을 성희롱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은 대학교수가 낸 해임 결정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재판부는 이때 판결에서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 심리를 할 때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가장 보통의 준강간’ 판결을 보면 법원의 판결은 여전히 가해자 중심이다. 성인지감수성과도 동떨어져 있다. 재정신청 인용으로 법원의 명령에 의해 기소한 검찰은 재판 당사자임에도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 재판에서 ‘최종 불기소 의견’이라고 밝히며 의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검사에게 재정사건이니 백지 구형을 내려도 좋다고 말했다. 법정의 분위기가 기울어진 상황에서 재판부는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이라는 명분으로 피해자에게 부여된 발언권은 배제하였다. 결국 1심은 배심원 7명 중 5명이 무죄 평결을 내렸고,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무죄가 선고됐다.
2심 판결에서는 B씨가 거짓말한 정황도 지적됐다. 피해자 A씨에게 택시를 타고 왔다는 등 모텔에 온 경위를 사실과 달리 설명했다. 모텔직원에게 ‘A씨가 모텔에 들어갈 때 (만취상태가 아니라) 무리가 없어 보였다’는 등의 사실확인서를 받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클럽에서 두 사람이 스킨십하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봤다’라는 B씨 친구들의 진술을 토대로 “적어도 피고인에게 준강간 고의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하나의 정황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피해자 측은 “재판 과정에서 B씨 및 친구들의 진술의 신빙성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은 채 그들의 진술을 왜 믿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 없이 그저 스킨십이 있었다는 진술을 토대로 스킨십이 있었다며 고의를 부인하는 근거를 삼았다”며 “피고인 및 참고인들의 진술을 믿을 수 있는지 기록을 통해 확인하고 판단해야 함에도 아무런 판단 없이 피고인 및 참고인의 진술을 준강간 고의 부인의 근거로 삼게 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태옥 천주교성폭력상담소 소장은 “1심 재판은 준강간의 고의, 준강간 실행의 착수나 중단 등 법리에 대한 판단임에도 법률 비전문가인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무죄로 판단됐다. 2심에서는 (B씨의 거짓말과 피해자의 법정진술이 있었음에도) 성폭력 사건의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에 대한 판단은 전무했다”라고 지적했다.
연대자D는 “피해자를 배제·소외하는 한국 형사사법시스템의 극단적인 사례라고 생각한다. 수사기관, 공소유지를 해야 하는 검찰, 재판부 모두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결국 실체적인 진실 파악에 실패했다. ‘법대로’ 피해를 인정받고 회복하려던 피해자들의 의지를 꺾어버린 부적절한 사례이다”라고 말했다.
※참고- ‘성폭력 형사사건에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과 경험칙에 관한 연구’(사법정책연구원, 2020)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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