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무늬만 중립'…美 "러에 무기공급" 공개비판

신윤재 기자(shishis111@mk.co.kr) 2023. 5. 12.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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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소련 시절부터 러와 밀착
中·러와 합동 해상훈련 이어
러 군사지원 의혹도 불거져
주남아공 美대사 우려 표명에
랜드화값 추락 3년 만에 최저
남아공 "증거 없어" 즉각 반발
진땀 해명 11일(현지시간)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국회에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을 향해 러시아에 무기를 제공했다면서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남아공은 명확한 증거가 없는 상태로 독립된 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히고, 루번 브리지티 주남아공 미국대사의 발언에 대해 "(양국 간) 협력과 파트너십 정신을 훼손한다"며 반발했다. 러시아와 오랜 기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남아공 정부는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 '중립'을 표방하며 러시아에 대한 비판을 자제해왔다.

파이낸셜타임스(FT)·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11일(현지시간) 브리지티 미국대사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해 12월 러시아가 남아공에서 전쟁에 쓸 무기를 공급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은 이를 매우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난해 12월 초 남아공 케이프타운 인근 사이먼타운 해군기지에 정박한 러시아 화물선 '레이디R'이 무기와 탄약을 싣고 귀항했다고 확신한다"며 "남아공은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브리지티 대사는 '정보가 정확하냐'는 질문에 "목숨을 걸 수 있다"고 답했으며, 지난 2월 인도양에서 남아공이 러시아, 중국 해군과 3개국 합동훈련을 실시한 것과 관련해서도 "훈련 시기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고 덧붙였다. 당시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은 우크라이나 침공 1년과 시기상 겹치는 점을 문제 삼았으나, 남아공은 지역 평화와 안정을 위한 우호국 간 군사훈련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브리지티 대사의 이날 발언에 남아공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남아공 대통령실은 성명을 통해 "러시아 선박이 남아공에 정박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지금까지 이것(러시아에 대한 무기 공급)의 혐의를 입증할 어떤 증거도 없다"고 밝혔다. 또 남아공 당국이 자체적으로 진상 조사를 시작했다며 "브리지티 대사의 발언은 최근 합의된 양국 간 협력과 파트너십 정신을 훼손한다"고 지적했다. 성명에 따르면 최근 남아공 대표단과 미국 관료 간에 미국 정보기관이 보유한 모든 증거를 공유한다는 합의가 있었다.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은 이날 의회 회기 중 나온 야당 의원의 관련 질의에 "해당 사안을 조사하고 있다"며 "늦지 않게 확인된 내용을 공유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브리지티 대사의 발언이 나온 직후 남아공 화폐인 랜드화 값은 달러당 약 19랜드로 떨어지며 2.5%가량 급락했다. 랜드화 값은 역대급 전력난 여파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는데, 연초 이후 낙폭을 12%까지 키웠다. 최근 3년래 가장 낮은 수준이다.

현재 남아공 정부와 러시아의 밀착 관계는 옛 소련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남아공의 극단적 인종차별 정책 '아파르트헤이트'가 실시될 당시 옛 소련은 저항 세력이자 현재 집권 여당인 아프리카국민회의(ANC)를 군사적으로 지원했다. 이후 1994년 첫 자유투표로 정권을 잡은 ANC는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러시아와 함께 '브릭스'(BRICS·신흥 경제 5개국) 회원국이기도 한 남아공은 2013년 브릭스 정상회의 때 러시아와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맺은 후 해군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해왔다. 2014년에는 760억달러 규모의 원자력 협정을 체결하기도 했다. 남아공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패권을 둘러싼 대국들의 대리전"으로 규정하며 미국 편도, 러시아 편도 아닌 '비동맹운동'에 기반한 중립이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신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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