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면] 나는 '植집사'다
이웃 아주머니를 어디 모셔다줄 일이 있어 아파트 앞에 차를 댔다. 도착을 알리고 잠깐 틈이 있어 분리수거함 쪽을 기웃거리니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접시 몇 장이 보인다. 냉큼 달려가서 보니 흰 바탕에 연한 풀꽃 문양이 들어간 도자기 접시다. 이게 웬 떡이냐. 주워 차 트렁크에 실었다. 이걸로 받침대 없는 화분 3개가 해결되었다.
난데없이 식집사의 길로 들어서면서 화분 기갈증이 생겼다. 공기가 잘 통하는 토분은 식물에 최적이지만 비싸서 받침까지 사기는 망설여진다. 그래서 안 쓰는 접시를 받침으로 쓰다가 주변 아파트 분리수거함까지 뒤지게 됐다.
사무실에 처음엔 하나둘씩 늘어나던 화분이 이제 수십 점이 넘어간다. 삽목 중인 잔챙이들도 있고 물꽂이를 해놓은 병과 컵도 창틀마다 놓여 있다. 서북향이라 빛이 아주 귀해 오후에 잠깐 때를 맞춰서 화분을 내놓느라 부산스럽기도 하고, 모자란 빛을 채워주는 식물 전용 등을 이곳저곳 늘어놓아 어지럽기도 하다.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아내가 내 방에 들어와 보더니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촌스럽다, 어지럽다, 미적이지 않다 등 한마디씩 던질 때마다 나는 개의치 않으려 하지만 듣기가 좋지는 않다.
나는 식물로 아름답게 공간을 꾸미는 플랜테리어에 그다지 끌리지 않는다. 미적으로 잘 안배된 공간은 인간 중심적인 공간이다. 식물은 향유의 대상이고 공간의 주인을 위해 복무하는 존재가 된다. 미니멀하게 꽉 짜인 공간에서 나는 불편하고 숨이 막힌다. 나는 식물이 주인이 되는 공간이 더 좋다. 비록 사무실이긴 하지만 울창하게 식물로 꽉 들어차서 거기에 폭 감싸인 느낌으로 일하고 싶다.
식물이 건강하게 잘 크는 게 나의 목적이자 그게 또 최고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미적 안배 따위는 없다. 매일 분무를 해줘야 하는 식물들은 그들끼리 모아두고 매일 바깥에 나갔다 와야 하는 친구들은 또 창 가까이 모아둔다.
식집사의 일상은 바쁘다. 식물을 키우는 3대 요소인 물, 바람, 빛을 식물별로 적절히 배분하려면 주의 깊은 관찰이 필요하고 엉덩이가 가벼워야 한다. 나무젓가락으로 수시로 흙을 찔러보고 과습과 건조를 체크하는 게 아직까지 익숙지 않다. 잎이 넓은 식물은 먼지도 닦아줘야 하고 시든 꽃잎과 이파리는 그때그때 떼어줘야 영양분 낭비를 줄일 수 있다.
비싼 식물은 절대 사지 않는다는 게 나름의 철칙이다. 화원에 가면 여러 가지 크기의 화분들이 있지만 나는 가장 작은 것을 데려온다. 키우는 재미인데 다 키운 걸 들이면 그게 무슨 재미인가? 수형이 아름다운 것도 내 관심이 아니다. 직접 키우면서 수형을 만들어가는 게 역시 큰 재미이기 때문이다. 키우기 어려운 식물들은 크기가 중품 정도 되면 가격이 많이 올라간다. 그런 식물을 어릴 때 데려다가 키워내는 건 도전의식을 자극하고 결과에 따라 두 배의 기쁨을 준다.
나는 왜 식물을 이토록 좋아할까. 생각해보면 아주 어린애 같지만 작은 씨앗에서 저렇게 천변만화하는 형상이 만들어지는 게 믿을 수 없어서 좋다.
생김새들이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도 나를 식물에 깊게 빠지게 만든다. 열대우림 지역 나무 밑에서 자라는 칼라테아, 베고니아 같은 종류는 찢어진 잎이나 구멍 난 잎, 특이한 무늬 등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다. 찢어지고 구멍 난 이유는 빽빽한 밀림 속에서 자기 밑에 있는 잎에 빛을 투과시켜 주려는 생존 전략이고 특이한 무늬는 벌레가 이미 파먹은 것처럼 보이게 해서 벌레를 피하려는 위장 전략이다. 이런 것이 참으로 감탄스럽다.
하나하나 배워나갈 때마다 각각의 화분에선 스토리가 생겨나고 자료를 찾아보고 싶은 욕구도 자극한다. 배려하고 보살피는 손길이 오히려 정신의 평온함과 심리적 만족감을 이끌어낸다. 작은 실뿌리부터 맨 꼭대기의 잎까지 상태를 살피고, 봄부터 겨울까지 지고 피는 삶의 순환을 함께하면서 자연스럽게 생명에 대한 명상이 되기도 한다.
요즘처럼 공기가 좋지 않아 안팎으로 답답할 때 식물들이 내뿜는 신선한 기운은 출구가 되어준다. 식물과 함께하는 나의 식생활이 앞으로도 탈 없이 잘 이어지길 바란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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