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성 저해” “보지않을 권리”···퀴어축제 ‘불허’ 회의록 속 ‘혐오들’
서울광장에서 서울퀴어퍼레이드(퀴어문화축제) 개최를 불허하기로 결정한 서울시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시민위) 회의 당시 일부 시민위원들이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 발언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행사 주최 측을 ‘갈등을 조장하는 단체’라고 하거나 ‘비교육적 집단’으로 매도하는 발언도 있었다. 이에 대해 행사 주최 측은 “혐오로 점철된 회의록”이라고 비판했다.
서울시 홈페이지에 지난 11일 공개된 제4차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시민위는 지난 3일 회의에 참석한 시민위원 9명의 만장일치로 오는 7월1일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가 신청한 축제 개최를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기독교 단체가 주최하는 ‘청소년 청년 회복콘서트’는 허용했다. 양 주최 측은 행사일 90일 전 동시에 광장 사용을 신청해 동일 순위로 등록됐다.
서울시는 시민단체, 시의회 의원, 건축업 종사자 등으로 구성된 12명의 시민위를 꾸려 광장 사용 허가 결정을 내리고 있다.
위원들은 축제에 대해 “공공성이 저해된다”는 이유로 반대 의견을 냈다. 축제가 시민에게 피해를 주고, 사회 갈등을 유발하는 성격의 행사라는 것이다. A 위원은 “‘소수 성에 대한 문화를 인정하고 가자’ ‘우리의 이야기를 하겠다’라고 이야기하기에는, 피해를 보는 서울 시민들이 많다”고 했다. B 위원은 “서울시민의 교통이라든지, 정작 정말 이 광장을 이용하고 싶은 시민들에게는 굉장히 많은 피해를 주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성소수자를 향한 부정적 인식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위원도 있었다. C 위원은 “음성적이라고 이야기를 해야 되나? 이태원이나 이런 작은 집단에서 시작하다가 서울시, 대한민국이 성소수자들을 인정하는 문화로 받아들인다”며 “바르게 커야 되는 청소년의 성 문화 인식이라든지, 교육적인 부분에서도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축제를) 서울시에서 ‘단 며칠이라도 땡큐하다’라고 진행한다는 것 자체가 시민으로서 굉장히 불편하다”고 했다. “(다른 시민들의) 보고 싶지 않아 하는 권리”를 언급하며 축제 개최를 반대한 의견도 있었다.
일부 의원들은 지난 축제에서 성인용품이 전시·판매된 점을 지적했다. 한 위원은 “민원사항을 보니 자위행위 기구, 유해물건 등을 전시했던 내용이 있다”며 “유해물건이 나올 확률이 (기독교단체 주최 행사보다) 서울퀴어문화축제가 더 많다”고 말했다.
시민위는 차후 퀴어문화축제의 서울광장 허가를 규제할 구체적 규정도 만들자고 논의했다. D 위원은 “이렇게 논란이 있다면 앞으로도 퀴어축제라든지, 문제가 있는 축제들을 위원회에서 걸러 내야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B 위원도 “서울퀴어문화는 성 문화잖아요. 신청을 할 때, 제재에 대한 부분을 조금 더 강력하게 남겨둔다면 다음에 결정할 때도, 서울시에서도 불편하지 않고, 책임을 조금 덜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위원들 중 ‘성소수자의 권리도 중요하다’는 의견을 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거의 유일하게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외칠 수 있는 축제의 장을 ‘공공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빌미로 불허하는 것 자체가 성소수자의 시민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며 “갈등은 대등한 위치에 있는 이들의 의견 충돌을 일컫는다. 퀴어문화축제에서 소란을 피우는 무리는 약자의 목소리를 억압하고 위협하는 행동이지, 대등한 위치에서 벌어지는 갈등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회의에서 ‘음란물’ 등이 거론된 것에 대해 “‘성소수자가 성적으로 문란한 사람’이라는 편견적 시선”이라며 “이러한 시선을 담은 혐오발언을 퍼트려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시민위와 서울시는 소수자의 목소리와 시민권을 보장할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외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선우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장은 “회의록이 혐오의 말로 점철돼 있었다”며 “퀴어문화축제는 성소수자가 온전한 자신의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기회로, 성소수자 인권을 향상시켜왔다”고 밝혔다. 이어 “‘갈등을 조장하는 단체’라는 논리는 서울시가 조직위 법인 설립 불허가 당시 밝힌 것과 같다”며 “시민위가 정말 시민의 의견을 대변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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