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의 책과 지성] "학교는 정밀하고 아름다우며 육군은 정예하다"

허연 기자(praha@mk.co.kr) 2023. 5. 12.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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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년전 민영환의 눈에 비친 선진국의 모습들
민영환 (1861~1905)

"부강이 날로 계속되니 누구라도 능히 이에 비교할 수 없다. 학교가 정밀하고 아름다우며, 육군은 굳세고 정예하고, 의술·음률도 더 이상 이 정도에 이를 수 없다. 각국의 모든 학자들은 비록 이미 졸업했어도 반드시 이 나라에서 교정을 받은 연후에야 가히 세상에 나갈 수 있다."

1896년 4월 1일 특명전권공사로 임명된 민영환은 수행원 윤치호 김득련 김도일 손희영 스테인 등과 함께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조선을 떠난다. 그들의 여정은 험난했다. 중국으로 배를 타고 갔다가 다시 일본을 거쳐 캐나다 미국을 경유해 영국 네덜란드 독일 폴란드를 지나 러시아에 도착했다. 돌아올 때는 반대로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러시아를 관통해 조선으로 돌아왔다.

204일간 11개국을 거치는 대장정을 담은 민영환의 기행문이 '해천추범(海天秋帆)'이다. 해천추범은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다'라는 뜻이다.

책에는 조선 근대화에 관심이 많았던 민영환의 눈에 비친 선진 문물에 관한 흥미롭고 의미 있는 글들이 담겨 있다.

서두의 글은 네덜란드에서 기차 편으로 독일 베를린에 도착한 민영환이 남긴 글이다. 그는 독일의 교육 인프라스트럭처와 의학, 음악에 관해 부러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민영환의 글에는 바람 앞의 등불 같았을 위태로운 조국을 걱정하는 문장도 눈에 띈다.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서는 이런 기록을 남긴다.

"들으니 이곳은 옛날에 가장 개화한 자주국이었는데 백여 년 전 정치가 점차 쇠약해지고 벼슬아치들이 백성을 능멸하고 학대하여 내란이 수차례 일어나도 능히 다스려 안정을 취할 수 없었다. 결국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랑스 세 나라가 그 땅을 나누었으니 이것은 나라를 도모하는 자가 거울 삼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선진 문물을 접한 그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장면들도 흥미롭다.

캐나다에 도착한 민영환이 엘리베이터를 처음 보고 쓴 글이다.

"밴쿠버 항구에 배를 댔다. 캐나다부(府)에서 관할하는 땅이다. 내려서 호텔로 갔다. 5층 높이의 넓게 트인 집이었는데 오르고 내리기가 쉽지 않을 것을 헤아려 아래층에 한 칸의 집을 마련하여 전기로 마음대로 오르내리니 기막힌 생각이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기구를 타본 경험을 남기고 있다.

"위에 바람을 넣은 가벼운 둥근 물체가 끈으로 묶여 있다. 주관하는 사람이 여러 가지 기구를 구비하고 함께 타고 바람 쐬기를 청하였다. 이에 올라타서 하늘 사이를 배회하니 마치 날개를 탄 신선과 같다."

민영환은 여행에서 돌아온 지 10년 후인 1905년 일본의 내정간섭을 비판하다 대세가 기울자 자결한다. 안타까운 선각자의 죽음이었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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