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경제경영서] "물가 잡았다고 긴장 푼 순간 인플레는 반드시 다시 온다"

고보현 기자(hyunkob@mk.co.kr) 2023. 5. 12.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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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가장 뛰어났던 美 Fed의장의 경고
매경·예스24 선정
매경DB

'인플레이션 파이터' '볼커 룰의 입안자'…역대 가장 뛰어난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으로 꼽히는 폴 볼커(1927~2019)에겐 여러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1980년대 최악의 스태그플레이션을 제압하면서 죽기 직전까지 '미스터 체어맨'으로 불린 인물이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별명은 '권총을 품고 다니며 고물가 정책을 펼친 의장'. 이는 재임 당시 그가 실제로 품에 권총을 지니고 다닌 습관에서 비롯된 말이다. 볼커는 석유파동과 달러화 약세가 한창이던 1979년 지미 카터 정부 시절 연준 의장에 취임했다. 연준의 절대적 독립성을 내세우며 "인플레이션과 전면전을 벌일 것"이라던 그에게 대통령이 기회를 준 것이다. 물가 상승률이 무려 11%까지 치솟던 혼란의 시대였다.

미스터 체어맨 폴 볼커 크리스틴 하퍼 지음 남민호 옮김, 글항아리 펴냄, 2만 8000원

전례 없는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잠재우기 위해 볼커는 취임 직후 재할인율(중앙은행이 시중은행에 자금을 대출할 때 적용하는 금리)을 10.5%까지 끌어올렸다. 11%대였던 기준금리를 2년 만에 역대 최고치인 20% 수준까지 인상했다. 그가 내딛는 한 발 한 발이 미국 금융 역사상 본 적 없는 시도나 다름없었다.

이에 불만을 가진 시민단체와 농민들이 연준 건물을 둘러쌌다. 무장 괴한이 들이닥쳐 인질극까지 벌였지만 그는 살해 협박에 굴복하는 대신 권총을 품었다. 불굴의 의지로 끝까지 인플레이션 '학살'을 이어나간 파이터의 면모를 보여주는 일화다.

지난해 자이언트스텝을 연이어 단행한 제롬 파월 연준 의장 입에서도 볼커 이름이 수없이 언급됐다. 파월 의장이 초강경 긴축 기조를 내보이며 쓴 "keep at it(견뎌낼 것)"이란 표현은 볼커 회고록의 원제목이기도 하다.

신간 '미스터 체어맨'은 세계 경제가 위기에 빠진 순간마다 소환되는 역사적 인물 볼커가 직접 써내려간 회고록이다.

"나는 여러 국가가 하나씩 파괴적인 인플레이션을 경험하면서 물가 안정을 회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을 지켜봤다. 그 후에 인플레이션에 대한 승리가 눈앞에 보이면 통화당국은 긴장을 풀고 경기를 부양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약간의 인플레이션'을 수용한다. 그 결과 인플레이션의 확산 과정이 다시 처음부터 전개된다."

책을 공동 집필한 크리스틴 하퍼 블룸버그마켓 편집장은 이제는 세상을 등진 체어맨이 자서전을 쓸 당시 이런 조언을 남겼다고 전했다. 하퍼 편집장은 "오늘날 상황에서 그가 우리에게 전할 메시지가 있다면 회고록을 집필하던 당시와 똑같으리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책에는 볼커 의장 재임 당시 요동치던 국제 경제와 그가 현장에서 느낀 소회 등이 담겼다. 뉴저지주 티넥에서 태어난 그는 지방정부 소속 공무원이었던 부친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고 고백한다. 30년 가까이 재무부와 뉴욕연방준비은행 등을 거친 그가 어떤 태도와 통찰력으로 미국 경제정책의 틀을 닦았는지 엿볼 수 있다.

볼커는 자신의 가장 큰 업적이라 불리는 연준 의장 시절을 떠올리면서도 "그것이 회고록을 쓰기로 결심한 근본적인 이유는 아니다"고 강조한다. 국가의 효율적인 정책 운영이 망가지고 '유능한 정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오늘날 "내 삶의 대부분을 바친 금융통화정책 사안에서만큼은 독자가 교훈을 얻어내길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고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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