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울릉군 3년간 86명 전출, 전입은 ‘0’…농어촌 공무원 ‘엑소더스’
공무원 유출지, 인구감소지역과 일치
수도권 선호보다 정주여건 나쁜 탓
지방에도 ‘살만한’ 인프라 만들어야
지역 불균형·주민 이탈도 막을 수 있어
지방의 한 기초단체에서 2017년 공직생활을 시작한 A씨(32)는 올해 초 권역 내 광역단체로 전입했다. A씨는 “함께 전입 시험을 봤던 분들 중 일부는 도청 소재지에 가족이 거주하고 본인만 장거리 출퇴근하거나 주말부부를 하던 분들이었다”라고 말했다.
경향신문이 전국 243개 자치단체를 대상으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간의 공무원 전입·전출 현황을 정보공개 청구한 결과 240개 자치단체 중 168곳에서 전입공무원보다 전출공무원이 더 많았다. ‘1대1 인사교류’가 아닌 일방적인 공무원 유출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전출자가 전입자보다 2배 이상 많은 자치단체도 89곳에 달했다. 대부분은 기초자치단체, 그 중에서도 농어촌 지역이었다.
경남 하동군은 최근 3년간 공무원 56명이 전출을 나갔다. 전입 온 공무원은 단 한명도 없었다. 경상북도 울릉군에서도 같은 기간 공무원 30명이 군청을 떠났다. 전입자는 역시 ‘0명’이었다. 지방 군청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전출자가 전입자 2배 이상 ‘89곳’···대부분 비수도권 농어촌
전출 공무원이 전입 공무원보다 2배 이상 많은 89곳 중 51곳이 ‘군’ 단위였다. 시는 23곳, 광역시 자치구가 12곳, 광역시는 1곳, 서울의 자치구는 1곳이었다.
특히 89곳 중 비수도권 지역이 89%(79곳)에 달했다. 광역시 자치구 중에선 드물게 전입자보다 전출자가 많았던 12곳 역시 수도권과 거리가 먼 곳(광주·울산·부산)이었다. 도시가 아닌 농촌 지역일수록, 수도권에서 먼 지역일수록 공무원 유출 지역이 많았다.
수도권에서 멀수록 유출 정도도 심했다. 하동군의 경우 지난 3년간 전입 온 공무원은 한명도 없었지만 같은 기간 전출을 나간 공무원은 56명에 달했다. 울릉군도 진입자는 0명인데 반해 전출자는 30명이었다. 전남 해남군은 전입자 1명에 전출자 28명, 전남 신안군은 전입자 1명에 전출자 20명, 전남 고흥군은 전입자 3명에 전출자 40명, 강원도 정선군은 전입자는 4명에 전출자 37명이었다.
군청을 떠난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지난 3년 간 이들 89곳에서 전출을 나간 공무원은 1942명이다. 서울로 간 경우는 143명, 서울 외 수도권 지역은 243명, 중앙기관 87명, 광역자치단체 소재지(자치구 포함) 1106명, 제주와 세종 등 특별행정구역 39명, 시(비수도권) 지역 224명, 군(비수도권) 지역은 100명이었다. 비수도권의 시·군으로 전출 간 사례는 16%에 불과했지만, 수도권·광역단체·중앙부처로 간 경우는 83%에 달했다.
1대1 인사 교류가 원칙인데도 비수도권을 중심으로 전출하는 공무원들이 더 많은 것은 ‘일방전입’도 허용되기 때문이다. 이로인해 광역단체나 수도권 자치단체에서 결원이 생겨 전입 희망자를 모집할 때마다 비수도권·농어촌 기초단체 공무원들이 몰린다. 전입 시험을 따로 치러야 할 정도다.
■‘공무원 유출’과 ‘인구감소지역’, 무슨 관계?
공무원 전출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채용 시험 때 경쟁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비수도권 기초단체를 지망해 합격한 뒤 원래 연고지인 수도권이나 광역자치단체 등으로 다시 전입하는 것이다. 수도권 지역을 선호하는 경향도 작용한다.
그러나 전출자들의 이동 현황을 보면 수도권 이동보다 권역 자체를 벗어나지 않는 경우가 2배 이상 많았다. 전입자보다 전출자가 2배 이상 많은 지역의 3년 간 전출자 중 서울과 수도권, 중앙부처로 간 이들이 473명인 반면 권역 내 광역단체 소재지로 옮긴 이들은 1106명이었다. 타지 출신 눈치 지원자나 수도권 선호 때문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해당 지역에서 일정 기간 이상 거주한 경우에만 지원 자격을 주는 신안군 등에서도 공무원 유출은 지속된다. 나고 자란 고향임에도 떠난다는 얘기다. 공무원들은 기초단체뿐 아니라 광역단체 업무도 경험하고 싶은 직업적 욕구도 작용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정주 여건’이다.
공무원 유출 지역은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인구감소지역’과 거의 일치한다. 89개 인구감소지역 중 73곳에서 전출 공무원이 전입 공무원보다 더 많았다. 교통·문화·의료·교육·보육 전반에 걸친 인프라 부족이 주민들은 물론 공무원들도 떠나게 만든다. 고향에서 비교적 가까우면서도 인프라는 더 잘 갖춰진 권역 내 도청 소재지나 광역시로 근무지를 옮기는 것이다.
2013년 농촌 기초단체에 합격해 2018년 권역 내 광역단체로 옮긴 공무원 B씨(34)는 “이전 근무지엔 또래들이 별로 없고 지인들도 도시에 있어 인간관계가 단절되는 느낌을 받았다”며 “병원에 가려면 도시로 나가야 했고 문화생활에 대한 갈증도 컸다”고 말했다.
■자치행정 ‘구멍’ 우려, 그 여파는···
공무원을 빼앗긴 기초단체들은 빈자리를 채우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전입 희망자를 모집해봤자 경력 지원자가 거의 없다보니 신입 공무원을 채용해 빈자리를 메운다. 신입 공채는 1년에 한 번 꼴로 이뤄진다. 해당 보직은 상당 기간 공석일 수밖에 없다. 신입 직원이 와도 업무를 익히는 데엔 시간이 걸린다. 겨우 업무를 파악할 때쯤 그 공무원 역시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것이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면 자치행정에 구멍이 생길 수 있다. 한 기초단체 인사 담당자는 “담당자가 자주 바뀌고 업무 인수인계가 잘 안될 경우 주민이 기존에 신청했던 인허가 건이 제때 제대로 처리되지 못해 계약이 취소되거나 지체금을 물게 되는 사례도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기초단체 관계자는 “독거노인이 많은 농어촌이나 도서·벽지의 경우 어디에 누가 사는지, 어떤 병을 앓고,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알아야하는데 신입 공무원은 경력 공무원보다 이런 걸 파악하는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며 “주민 복지의 질도 떨어질 수 있다”고 했다.
사기에도 영향을 미친다. 또 다른 기초단체 인사 담당자는 “한 명이 떠나면 다른 직원들도 ‘나도 떠나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며 “여기서 뭘 제대로 해보려 하기보단 그냥 ‘거쳐 가는 곳’ 정도로 여기는 분위기가 없지 않다”고 했다.
이는 지역 간의 인구 불균형을 심화시킬 수 있다. 정주 여건이 안 좋은 지역일수록 자치행정의 질도 나빠지고 주민 이탈이 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백약이 무효’···해법은
지방공무원법은 공무원이 최초 입직한 기관에서 3~4년 동안 타 기관으로의 전출을 금지한다. 벽지의 경우 조례로 이 기한을 5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 그러나 기한이 지나기가 무섭게 젊은 공무원들은 떠나간다. 전출 금지 기한을 무한정 늘릴 수도 없다. 거주·이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비판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인력 유출을 참다못한 일부 기초단체들은 소속 공무원의 전출을 불허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출 허가를 얻지 못한 공무원들은 육아휴직도 불사한다. 공무원은 자녀 1명당 3년까지 육아휴직이 허용된다. 결원이 생기는 건 마찬가지이다. 한 기초단체 인사담당자는 젊은 공무원들의 의원면직(자발적 퇴직) 비율이 낮지 않다고 했다.
특별 인센티브 제도가 있지만 도서·벽지에서만 시행된다. 효과도 기대에 못 미친다. 농촌 지역의 한 기초단체 인사 담당자는 “‘산부인과 하나 없는 곳에서 어떻게 애를 낳고 키우느냐’는 젊은 직원들을 무슨 말로 붙잡아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다”고 했다.
해법은 지방을 골고루 ‘살만한 곳’으로 만드는 수밖에 없다. B씨는 “공무원이니 사명감으로 모든 것을 감내하라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최소한의 인간관계를 만들고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으며 애를 낳고 기르고 가르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는 환경을 찾는 것은 당연하다”며 “그런 환경이 안 된다면 떠나는 주민들 역시 결코 붙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https://www.khan.co.kr/local/local-general/article/202301260600001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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