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법소년’ 혐오에 기생하는 사이다 서사는 어떻게 웹툰의 대세가 되었나[위근우의 리플레이]
공개 직후 네이버 신작 랭킹 1위
학교폭력의 피해자인 주인공 윤성
가해자가 ‘촉법소년’이란 이유로
법으로는 느슨한 처벌을 받게되자
직접 응징…‘사적 보복’에 나선다
성공하는 웹툰에 대한 작법서를 쓴다면 첫 문장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혐오의 대상을 골라라. 두 번째 법칙, 대상을 정당하게 미워할 수 있는 부도덕한 흠결을 덧씌워라. 셋째, 문명의 제약 때문에 정당한 응징을 못하는 것 같은 답답한 상황을 만들어라. 넷째, 어떤 방식이든 그 제약을 넘어설 권력과 힘을 주인공에게 부여하라. 다섯째, 그 힘으로 혐오의 대상을 물리적으로 응징해 독자에게 쾌감을 주되 마치 정의구현에 동참하는 듯한 알리바이를 제공하라. 이것이 최근 박태준만화회사에서 제작한 네이버웹툰 신작 랭킹 1위이자 목요일 순위 2위까지 오른 <촉법소년>이 단기간에 성공한 비법이다.
그 과정에서 가해자들을 악마화
불법성에 대한 논의는 원천 차단
정당성 부여하고 통쾌함을 선사
실제로 공격하는 혐오의 대상은
‘X 같은 법’의 수혜자 촉법소년
작품 공식 소개는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은 X 같은 법들로 가득하다. 나를 지옥으로 밀어 넣고도 처벌받지 않았던 촉법소년들. 그 X 같은 법의 결과물들에, 지금부터 복수를 시작한다.’ 주인공 이윤성은 학교폭력의 피해자지만, 그를 괴롭히다 못해 집안까지 풍비박산 낸 가해자들이 촉법소년이라는 이유로 느슨한 처벌을 받자 그들을 직접 찾아가 복수한다. 가해자를 불구에 가깝게 만드는 사적 복수를 허용해도 되느냐는 문제를 차치하면, 가해자들은 그런 보복을 당해도 쌀 만큼 악마적인 인간들로 그려진다. 그러니 법망을 피한 윤성의 복수는 정당하고 통쾌하다. 하지만 이것은 통쾌함의 본질이 아니다. 이 작품이 실제로 공격하는 대상, 그리고 독자들이 그 공격에 대리만족을 느끼는 혐오 대상은 악마 같은 가상의 가해자들이 아닌 소년법, 그리고 그 ‘X 같은 법’의 수혜자인 촉법소년이기 때문이다.
촉법소년 일반에 대한 성인의 혐오는 무임승차에 대한 혐오다. 언론을 통해 소개되는 10대 범죄자들은 소년법을 악용해 두려움 없이 범죄를 저지르고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존재로 그려진다. 종종 자신이 촉법소년임을 내세우며 피해자나 경찰을 조롱하는 모습이 공개되기도 한다. 소년법을 방패 삼아 권리만 누리고 의무는 다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 이 얼마나 혐오하기 좋은가. 이러한 믿음엔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강력범은 소년범의 극히 일부이며 실은 생계형 범죄가 훨씬 많다는 사실, 많은 경우 소년범의 학교 부적응과 비행의 원인에 학대를 비롯한 환경적 요인이 있다는 사실이 생략되어 있다. 촉법소년의 지위를 벼슬처럼 누리는 소년범의 이미지와 환경적 요인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실제 소년범 사이엔 크나큰 간극이 있다. 하지만 현재 촉법소년이라는 단어는 소년법의 근거를 구성하는 다양한 담론적이고 경험적인 맥락과는 단절된 채, 일종의 ‘밈’처럼 사용된다. 이처럼 납작한 ‘밈’의 프로필에 사이코패스 성향을 더하면 <촉법소년>의 가해자들이 된다. 가령 소년범죄의 동기 1위가 우연과 호기심이라는 통계는 소년법을 악용하는 영악한 10대라는 스테레오타입에 대한 반례지만, <촉법소년>에선 호기심 때문에 윤성에게 온갖 잔혹한 실험을 하고 심지어 윤성의 집까지 불태운 박상철의 악마성을 설명하기 위해 인용된다. 현실이 왜곡되어 밈이 되는 게 아니라 밈을 유지하기 위해 현실을 왜곡하는 앞뒤가 뒤바뀐 세계. 유일하게 현실적인 것은 촉법소년에 대한 독자들의 혐오 정서뿐이다.
웹툰의 ‘성공하는 공식’에 충실
혐오 대상에 대한 징벌을 정당화
독자들은 혐오할 자유를 누린다
문제는 이런 작품이 넘친다는 것
제동을 걸지 않는다면…두렵다
차라리 <촉법소년>이 웹툰계에 돌연 등장한 끔찍한 돌연변이라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촉법소년>의 작법은 성공한 웹툰 다수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가령 초기 <뷰티풀 군바리>는 여성을 징병의 의무 없이 권리만 누리는 무임승차자로 규정하고 그들이 군대에서 개고생하는 것을 지켜보는 즐거움에 집중한다. 초반 에피소드에서 신병교육대에 들어간 여성들은 교관의 환복 지시도 무시하는 개념 없는 훈련병으로 그려지고, 필연적으로 얼차려를 받으며, 부리나케 환복하는 장면에서조차 철저히 가슴과 둔부가 강조된다. 즉 여성이 군대 가서 겪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여성을 군대 보내 욕보이고 싶은 욕망을 최대한 정당하게 포장하는 에피소드다. ‘군대는 집 지키는 개’라고 여성부에서 얘기했더라는 오래된 도시 괴담이 수만의 추천으로 베스트 댓글이 된 것까지가 이 혐오와 혐오의 정당화를 완성한다. <촉법소년>의 박태준만화회사는 이러한 편법을 회사 원천 기술처럼 구사한다.
사이다 학원물의 시대를 연 박태준 작가의 <외모지상주의>에서 노출 방송으로 남자들 주머니를 쉽게 열고 주인공 박형석에게 양다리를 시도하던 여성 캐릭터 유이는 철저히 비호감으로 묘사되며, 남자 친구에게 들켜 구타당하는 장면에 대해선 통쾌하다는 반응이 수만의 추천으로 베스트 댓글이 됐다. <김부장>에서 주인공 김부장의 딸을 괴롭히며 문제의 시발점이 된 주혜리는 아버지의 권력에 빌붙어 악행을 저지르는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캐릭터이며, <존망코인>에선 코인 가격 폭등으로 부자가 된 주인공이 과거 자신의 돈을 뜯어내고 사라졌던 전 애인을 무릎 꿇린다. 이러한 성공 패턴은 다른 작가 다른 작품에도 정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채용택 작가의 <참교육>은 혐오에 기생한 사이다 서사의 패턴과 노하우를 아예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세계관으로 만들어 엄청난 성공을 거둔 일종의 최종버전이다. 체벌이 법으로 금지된 걸 틈타 영악하게 교권을 침해하는 학생들, 진정한 평등 대신 여성 중심적 사상을 강요하는 페미니스트 초등교사 같은 무임승차자들을 응징하는 주인공의 참된 교육의 여정. 물론 이들 혐오 대상은 인터넷 남초 커뮤니티 등을 통해 ‘밈’처럼 구성된 가상 이미지에 가깝다. 정확히 촉법소년이 그러하듯.
<촉법소년>은 말하자면 <참교육>에 대한 박태준만화회사의 대답 같다. 일정한 계보로 연결되는 동시에 다음 단계를 열었다. 앞서 <참교육>에 대해 일종의 최종버전이라 했지만 <촉법소년>은 아예 최종버전이라는 개념을 해체하는 듯하다. <참교육>이 체벌을 통한 참된 교육으로 상대를 갱생시킨다는 위선적인 기만으로 유지된다면, <촉법소년>은 굳이 갱생시킬 것 없이 상대를 절멸시키자는 욕망을 투명하게 배설한다. 사실 서사와 주제의식의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촉법소년>은 허점투성이다. 상철이 지은 죄에 비해 소년원 수감이라는 낮은 처벌을 받긴 했지만, 그와 그 일당이 윤성 집에 불을 내고도 잡히지 않고 윤성에게 뒤집어씌워 더 괴롭힐 수 있었던 건, 그들이 촉법소년이라서가 아니라 학내 권력과 압도적 폭력, 뻔뻔함 때문이었다. 흑막이었던 조영범이 윤성의 누나를 차로 치고 잡히지 않은 것도 촉법소년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범죄를 안 들켜서다. 그런 극악한 범죄자에 대해서도 소년법으로 보호하는 게 온당하냐는 질문까진 할 수 있겠지만, 정작 <촉법소년>은 이런 극악한 범죄가 느슨한 소년법 때문에 생긴 것처럼 범주를 교란한다. 조금만 뜯어봐도 어설픈 사기인 게 드러나지만, 기꺼이 속을 준비가 된 독자들에겐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바닥의 바닥까지 떨어져 혐오를 팔아먹을 수 있다.
여기서 독자들은 소비자지만 동시에 작품의 토대가 되는 혐오 메커니즘의 생산자이기도 하다. 허술한 서사 구조와 허접한 논리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이 <촉법소년>의 주제의식을 믿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이미 믿고 있는 혐오의 정당성에 기대 작품의 세계관이 공고히 버티는 것이다. 작품과 독자가 서로의 정당성을 보증하는 공생 관계 속에서 작품은 혐오 대상에 대한 징벌 서사를 주저함 없이 진행하며, 독자 역시 자기변명조차 없이 혐오할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이 쾌감의 본질은 해방감, 도덕적 절제로부터의 해방감이다. 문명은 제약일 뿐이다. 최종버전 없는 사이다 서사의 쾌감 경쟁에서 <촉법소년> 이후 과연 무엇이 등장할 것인가.
지금은 혐오 대상이 촉법소년이다. 다음번엔 ‘민식이법 놀이’를 하는 초등학생 자해공갈단과 그들을 ‘참교육’하는 보배드림 유저의 이야기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질 나쁜 농담도 싱거운 기우도 아니다.
지금 제동을 걸지 않는다면, 우울한 예언이 될 것이다.
위근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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