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다비는 세계 각국 ‘맛의 백화점’···맵부심 있다면 파키스탄 케밥이 ‘딱’[다른 삶]

기자 2023. 5. 12.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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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안 라이프
중동의 더위 이기는 맛
눈과 입이 즐거운 인도 무굴제국 요리, 파키스탄 전통 음식 차플리케밥, 전통 방식으로 끓여낸 짙은 향의 에티오피아 커피, 아랍식 시즈닝으로 요리한 양갈비(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자국민보다 외국인 더 많은 나라
다채로운 요리와 식재료의 향연
인도 궁정요리 무굴제국 맛 ‘은은’
파키스탄 차플리케밥은 ‘얼얼’
UAE ‘짭쪼름’ 양고기 강력 추천
에티오피아 식당 커피는 ‘황홀’

아부다비가 거대한 한증막으로 변모하는 계절이 돌아왔다. 사막에서 뜨거운 바람이 불어오는 이 환절기에 신기하게도 가족들이 한 차례씩 병치레를 한다. 며칠 밤낮을 고열에 시달리던 아이들이 제 모습을 되찾자 이번에는 남편이 그 감기로 앓아누웠다. 쉴 새 없이 병원 출석 도장을 찍다가 겨우 한숨을 돌리자 이번에는 내 머릿속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듯한 어지러움이 몰려왔다.

‘음…. 몸보신을 할 때가 되었군.’

전 재산인 몸뚱이가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고 재촉하는 신호였다.

한국에서는 때가 되면 한방 약재와 닭고기를 푹 고아 만든 삼계탕이나 피로 해소에 으뜸인 추어탕과 같은 보양식을 먹으며 기운을 차렸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산해진미를 맛보기가 쉽지 않다. 아시안 마트에서 재료를 구해와 집에서 직접 해먹는다면야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이 뜨거운 날씨에 뜨거운 불 앞에 줄곧 서 있는 상상만으로도 두통이 밀려오는 것만 같다. 가족들을 위해서라면 거침없이 소매를 걷어붙이면서도 날 위한 요리는 ‘차라리 안 먹고 말지’라고 생각하는 게 주부의 숙명인지라, 고민 끝에 아부다비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보양 음식을 찾아 먹어보기로 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은 자국민보다 외국인이 많은 인구구조를 가진 나라이기에 다양한 요리와 식재료의 향연이 펼쳐지는 곳이다. 관광지로 유명한 두바이만 하더라도 미쉐린 별을 단 레스토랑이나 전 세계 유명 식당의 2호점이 몰려 있다. 그에 비해 석유를 기반으로 하는 산업구조상 그런 화려함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아부다비에는 석유산업을 지탱하기 위해 몰려든 일꾼들과 그들이 사랑하는 투박하지만 진심 어린 식당이 있다. 나는 UAE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국가별 인구분포도를 펴 놓고 순서대로 맛집을 탐험해 보기로 했다. 식당은 해당 나라 출신 친구들의 추천을 받았다.

1. 인도의 맛

아부다비 시내를 눈 감고 걸어가다 아무 레스토랑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인도 음식점일 확률이 반은 될 것이다. 인도 사람이 UAE 인구분포의 약 38%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평소에도 인도 카레나 탄두리 치킨을 자주 배달해 먹는 편이지만 이번에는 무굴제국의 요리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무굴제국의 요리는 그 이름에서부터 화려함을 느낄 수 있는 인도식 궁중요리다. 사프란, 카다멈 등 값비싼 향신료를 다양하게 사용하고 크림이나 버터 등을 베이스로 이용하여 부드러운 향미를 느낄 수 있다. 기타 인도 요리에 비해 오랜 시간이 걸리고 많은 기술을 필요로 하는 메뉴들이다. 명성에 걸맞게 레스토랑은 입구부터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화려한 그림들로 치장되어 있었다. 맛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만족감을 주는 음식들과 지극정성인 점원들의 서비스에 마치 내가 무굴제국의 어느 황제라도 된 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눈과 입이 즐거운 대제국의 맛이었다.

2. 파키스탄의 맛

파키스탄 카레를 한번 맛보면 인도 카레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파키스탄의 영원한 숙적인 인도 사람들이 들으면 극대로할) 이야기가 있다. 우리가 보기엔 두 나라의 음식이 거기서 거기 같지만 광활한 영토에 종교도 다르다 보니 음식의 향이 다르다고들 한다. 호기심을 참을 수 없어 파키스탄 친구에게 물어 아부다비에서 가장 맛있다는 파키스탄 식당을 방문해 보았다.

맵기를 반드시 ‘마일드’로 요청하라는 친구의 조언에 따라 ‘버터카레’와 ‘니하리(고기를 넣어 우려낸 국물 요리)’는 맵지 않게 해달라 주문했지만 뒤늦게 시키느라 요청을 깜빡한 ‘차플리케밥’은 한입 맛보곤 입에서 용가리 불이 뿜어져 나오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나름 맵부심(매운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는 인터넷 용어)이 있는 코리안을 울게 만든 그 차플리케밥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터키식 케밥과 달리 고기와 각종 야채를 잘게 다져 뭉친 뒤 기름에 튀겨 내는 떡갈비와 같은 모습이었다.

파키스탄 음식들은 인도 음식과 비슷했지만 국물의 진하기나 향신료에서 차이를 느낄 수 있었고 무엇보다 토종 한국인의 입맛에도 거부감 없이 잘 맞았다. 맵기만 잘 조절한다면 말이다.

3. 아랍에미리트의 맛

아랍 전통음식을 맛보고 싶다고 하면 대다수의 현지인 친구들은 레바논 식당을 추천해 준다. 아랍지역의 음식은 한·중·일처럼 명확하게 스타일이 나뉘어 있다고 보기에 어려울 정도로 유사성이 짙은데 그중 지중해를 낀 지리적 위치 때문인지 ‘레바논 식당’ 하면 어딜 가도 중간 이상은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병아리콩을 갈아 만들어 건강에 좋다는 후무스나 오이와 토마토가 주재료인 파투시 샐러드에 ‘쿠브즈’라고 불리는 아랍식 빵으로 식사를 시작하지만 오로지 몸보신을 위해 식당을 방문한 나는 양갈비구이 1㎏으로 주문을 시작했다. 동의보감에서 ‘양고기는 따뜻한 성질이라 속을 보하고 기운을 더해준다’ 하여, 뜨거운 아랍의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음식이라 생각하기 쉽겠지만 뼈가 시릴 정도의 에어컨 바람이 몰아치는 실내에서 오들오들 떨다 보면 이 양갈비가 진하게 그리워진다. 짭조름하게 입맛을 돋우는 아랍식 시즈닝으로 요리된 양갈비를 씹고 뜯고 맛보다 보면 1㎏이 순식간에 사라져 있다. 아랍으로 여행을 오는 한국 친구들에게 강력 추천하는 메뉴이기도 하다.

‘만수르의 영양간식’ 대추야자도 빼놓을 수 없는 보양식 중 하나이다. 단 다섯 알만 먹어도 밥 한 공기에 달하는 높은 칼로리 때문에 먼 옛날 사막을 횡단하던 아랍 사람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식재료였다. 극도로 강한 단맛에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 수도 있지만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과 함께 먹다 보면 어느 순간 식후 입가심용으로 빼놓을 수 없다. 대추야자는 아랍 전 지역에서 재배되는데 품종에 따라 단맛이나 식감에 차이가 있다. 크기도 가장 크고 쫀득쫀득한 ‘메드줄(Medjool)’ 품종이 맛있기로는 가장 유명하지만 무슬림들이 사랑하는 대추야자는 따로 있다. 바로 ‘아즈와(Ajwa)’이다. 크기도 작고 딱딱한 아즈와가 인기 있는 이유는 그 독특한 생산지에 있다. 무슬림들의 3대 성지순례 지역 중 하나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메디나에서만 자라는 대추야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추야자 가게에서도 유기농 아즈와가 가장 비싼 값에 팔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맛은 개인에 따라 평가가 다르니 아랍 지역을 방문한다면 대추야자 시장에 들러 여러 품종을 시식해보고 입맛에 맞는 대추야자를 찾아보길 권유한다.

4. 아프리카의 맛

마지막으로 한국에서는 좀처럼 맛보기 힘든 색다른 음식을 도전해보고 싶어 에티오피아에서 온 친구에게 조언을 구했다. 친구는 눈을 반짝이며 “물론이지. 에티오피아 음식을 한 번에 맛볼 수 있는 곳으로 널 안내해 주겠어”라고 했다. 그녀의 추천으로 찾아간 식당은 겉에서 보기에는 작고 소박했지만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자 실제 아프리카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넓고 알록달록한 인테리어가 시선을 사로잡는 곳이었다. 친구가 미리 일러준 스페셜 메뉴를 주문하니 신맛이 나는 게 특징인 전통 빵 위에 매콤한 닭고기 스튜인 ‘도로왓’, 육회를 잘게 다져서 매운 소스와 버무린 ‘키트’ 그리고 렌틸콩으로 만든 ‘미스르’ 등 전통음식이 한 상 푸짐하게 차려졌다. 그러나 그렇게 푸짐한 상을 내어준 주인장은 숟가락을 주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손으로 빵을 찢어 같이 나온 요리를 요령껏 함께 집어 먹고 있어서 나 또한 그들처럼 손으로 집어 음식을 맛보기 시작했다. 머릿속으로는 상상조차 되지 않았던 맛의 향연이었다. 음식은 매콤했고 자극적이어서 후식으로 딱 커피 한 잔이 생각나는 맛이었다. 1500원짜리 전통 커피 한 잔을 주문하자 거대한 주전자에 커피가루와 물을 넣고 한참을 끓이던 점원이 아주 작은 잔에 커피의 윗부분만 따라서 향과 함께 내왔다. 커피에 취한 건지 향 연기에 취한 건지 모를 듯한 아득한 느낌이 몰려들었다. 역시 커피는 에티오피아 그리고 에티오피아는 커피 그 자체였다.

몸보신을 핑계로 눈과 입 모두 즐거웠던 맛집 탐방을 마무리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이가 느닷없이 말했다. “엄마, 난 솔직히 오늘 먹은 거 다 별로였어. 난 엄마가 해준 밥이 제일 맛있어.” “아까는 맛있게 잘만 먹더니” 하고 핀잔을 주었지만 아이에게 내 마음을 들켜버린 것만 같았다. 사실 나도 우리 엄마가 해주는 밥이 먹고 싶다. 복날이 되면 내가 좋아하는 손바닥만 한 전복을 넣고 끓인 삼계탕, 마녀 머리카락같이 굵어서 가끔 씹히지도 않던 진한 미역국, 하다못해 냄비 한솥 가득이라 몇날 며칠을 먹어도 끝이 보이지 않던 그 뽀얀 곰탕마저도 말이다.

▶조혜임



국내외 기업에서 커뮤니케이터로 일했다. 현재는 남편, 쌍둥이 딸과 아랍에미리트연합에 거주하며 현지의 일상을 글과 그림에 담아 소셜 플랫폼에 연재하고 있다.

조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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