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의 ‘숨겨졌던’ 아내, 주안[책과 책 사이]
정혼하고 7년을 기다린 뒤에야 결혼했다. 남편은 첫날 밤부터 따로 잤다. 집을 나가 내연녀와 동거하며 자식까지 낳았다. 아내는 남편을 기다리며 전족을 한 채 시어머니가 죽을 때까지 봉양했다. 시동생들까지 챙겼다.
남편은 루쉰, 아내는 주안, 내연녀는 쉬광핑이다. 주안에 관한 기록은 한동안 한 줄로 기록됐다. 루쉰 사망 이듬해 만든 연보 중 1906년 루쉰이 26세 때 “6월에 고향으로 돌아가 산인의 주 여사와 혼인하다”는 구절이 나온다. 연보 작성자들은 이 한 줄마저 넣을지 고민하다 쉬광핑에게 “한 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으니 제수씨께서는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는 편지를 보냈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뒤 루쉰은 ‘문학가, 사상가, 혁명가’로 규정됐다. 사람들은 ‘중매 결혼’이 루쉰의 이미지를 훼손한다고 여겼다. 뤼순 연구에서 주안은 기피 대상이 되며 배제됐다. 한동안 루쉰 전기에서도 주안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나도 루쉰의 유물이다>(김민정 옮김, 파람북) 저자 차오리화는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며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구식 여성”의 역사를 살려낸다. 그는 “새 시대와 낡은 시대의 교체 속에서 역사로부터 버림받은 여성 군상이 있다. 그녀들을 배제한 역사 서사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으며, 두께도 없다”고 말한다.
차오리화는 요즘말로 ‘루쉰 안티’가 아니다. 상하이 루쉰기념관 연구원이다. 루쉰을 두고도 “이(주안과의) 문제를 피하거나 감추는 게 아니라 드러내 보여야 했다”고 말한다.
흠결이나 약점은커녕 법원 유죄 판결이 난 범죄 행위도 부인하거나 없는 일로 치부하고, 명백한 오류와 잘못이 드러나도 눈과 귀를 닫아버리며 공격하는 ‘맹목적 신도’들이 판치는 지금 현실이 떠오른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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