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무지개는 뜬다”···퀴어퍼레이드 불허해도 ‘지워지지 않겠다’는 대학생들
대학생 박현우씨(26)는 16살 때 처음 서울퀴어퍼레이드(퀴퍼·퀴어문화축제)에 참석했다. 처음으로 용기를 낸 걸음이었다. 당시 클로짓(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을 밝히지 않은 사람)이었던 그는 자신의 발걸음이 숨겨온 성 정체성을 만인에게 드러내는 일이 될까 두려웠다. 하지만 걱정은 잠시였다. 도심 한복판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을 만나고, 성소수자가 아닌 시민들도 함께 무지갯빛 깃발을 흔드는 모습에서 “해방감을 느꼈”다. 그가 매년 여름, 단 하루뿐인 행사를 기다리는 이유다.
성소수자의 축제라 불리는 퀴퍼가 올해는 서울광장에서 열리지 못할 위기에 놓였다. 서울시가 오는 7월1일로 계획된 퀴퍼 주최 측의 광장 사용을 지난 3일 불허하면서다. 이날 서울광장에서는 기독교 단체가 주최하는 ‘청소년·청년 회복콘서트’가 열린다. 퀴퍼는 2015년 이후 코로나19로 집회가 제한되던 때를 제외하고는 매년 서울광장에서 열려왔다.
서울시의 불허 결정에 항의하는 대학생들이 12일 행동에 나섰다. ‘서울퀴어퍼레이드 서울광장 사용불허 규탄 대학가 무지개 행진 기획단’은 이날 오전 서울 신촌역 인근에 모여 규탄 행진을 열었다. 10개 대학에서 20개 단위에 이르는 학생들은 서울시의 결정에 대해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행정”이라며 “불허해야 할 것은 축제가 아닌 혐오”라고 했다.
학생들은 가뜩이나 눈에 잘 띄지 않는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행정당국이 나서 지워버렸다고 비판했다. 서울대 성소수자 동아리 큐이즈(Queer In SNU)의 학생 대표는 “우리는 매일매일 지워진다”며 “퀴어로서의 자긍심을 개방적인 공간에서 나눌 수 있는 하루마저 서울시가 혐오 여론을 등에 업고 박탈했다”고 했다.
이들은 서울시가 “급조돼 구체적 내용조차 불분명한 종교행사를 명목상 ‘어린이 및 청소년 관련 행사’란 이유로 먼저 수리해버렸다”며 “해당 행사는 공익을 위한 문화행사로 인정하고, 성소수자의 자리는 모두를 위한 공간에 부적합하다고 판단한 근거가 무엇이냐”라고 물었다. 청소년·청년 회복콘서트라는 기독교 단체의 행사를 향해서는 “누구를 위한 회복이냐, 우리가 청년이다!”라고 외쳤다.
이날 행진에 참여한 학생들은 ‘혐오를 연대로 이겨낼 것’이라고 했다. 주최 측 대표자 권소원씨는 “서울시 결정으로 ‘우리는 시민이 아니고, 보여져서는 안 되는 존재냐’며 타격을 입은 친구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권씨는 동료들이 절망하는 모습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마음으로 행사를 준비했다. 자신을 논바이너리(여성·남성 이분법을 거부하는 사람) 레즈비언이라고 소개한 연소씨(활동명·22)는 “혐오적 행정에 가로막혀 거리에 나오게 되니 마음이 씁쓸하다”며 “작년 퀴퍼에서 시청광장을 한 바퀴 돌며 ‘연대’를 외쳤던 순간을 떠올리려 한다”고 했다.
학생들은 유쾌함을 잃지 않았다. 무지개 깃발·머리끈·마스크·타투스티커 등이 마치 축제처럼 신촌역 앞을 물들였다. 시청광장 대신 신촌 일대를 행진한 120여명의 학생들은 퀴퍼의 오래된 주제가인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불렀다. 이들은 “우리가 여기에 있다, 무지개는 이어진다!”라고 외치고, 웃고, 환호하며 거리를 걸었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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