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피하고 싶었다” 조국을 적수로 또 만난 김판곤의 탄식
말레이시아를 43년 만에 아시안컵 본선으로 이끈 김판곤 감독(56)은 “이런 확률이 어딨느냐”고 탄식했다.
4번 포트에 배정된 말레이시아(FIFA 랭킹 138위)가 지난 11일 카타르 도하의 카타라 오페라 하우스에서 열린 2023 아시안컵 조 추첨에서 한국(27위)과 요르단(84위), 바레인(85위)과 같은 E조에 묶여서다.
말레이시아가 E조에 가장 먼저 이름을 올린 뒤 나머지 포트가 채워질 때마다 변해가는 김 감독의 안색이 답답한 심정을 잘 드러냈다. 그는 하루가 지난 12일 기자와 통화에서 “마지막 1번 포트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니면 한국을 만나는 상황이었다”고 떠올린 뒤 “중동 3개국을 상대하더라도 한국은 피하고 싶었다. 한국이 내 조국이라는 사실을 떠나 아시아 최강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김 감독은 지난해 1월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장에서 물러난 뒤 말레이시아 지휘봉을 잡았다. 파울루 벤투 전 한국축구대표팀 감독과 함꼐 한국 축구의 성장을 이끌었던 터라 안팎의 내밀한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러나 김 감독은 ‘말레이시아가 한국의 빈 틈을 찌를 수도 있지 않겠냐’는 질문에 손사래를 쳤다. 김 감독은 “정말 속속들이 다 아니까 더 무섭다. 선수 개개인의 수준과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과 협회의 지원 수준까지 다 안다. (위르겐 클린스만이라는) 좋은 감독도 왔으니 부담스럽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말레이시아가 포트 2~3번 정도의 전력이라면 한국전에 욕심이라도 냈다. 우린 이길 전력도, 우승 전력도 아니니 그저 용기를 갖고 최선을 다하는 축구를 보여주겠다는 생각 뿐”이라고 말했다.
김 감독의 빠른 포기는 옛 경험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홍콩을 이끌고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16강에 올랐다가 한국에 0-3으로 완패한 아픔이 있다. 한국은 이 대회에서 무실점 전승 우승이라는 믿기지 않는 위업을 세웠다.
당시를 떠올린 김 감독은 “그 시절에도 홍콩이 16강 진출이 대단한 일이었는데, 한국을 만나버렸다. 외국에서 지도자로 활동하면서 한국만 만나지 않는 게 소원이었다. 그런데 반대로 두 번이나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라고 말했다.
다만 김 감독은 말레이시아가 아시안컵 조별리그 통과를 포기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24개국이 참가하는 이번 대회는 각 조의 1~2위 뿐만 아니라 조 3위 상위 4개팀도 16강에 오를 수 있다. 한국을 제외한 나머지 2개팀을 최대한 물고 늘어져야 한다.
김 감독은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에 진출한 한국과 맞대결은 선수들을 위한 좋은 추억으로 여기겠지만, 요르단과 바레인은 다르다”며 “개최국이 카타르라 가까운 두 나라가 유리한 환경인 것은 분명하다. 그래도 잘 준비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상대인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 감독이 믿는 구석은 말레이시아 축구 선수들의 빠른 발전 속도다. 그가 처음 부임할 때만 해도 FIFA 랭킹 154위에 머물던 말레이시아가 어느덧 138위로 발돋움했다. 아시안컵 본선이 열리는 내년 1월까지 라이벌들과 격차를 더욱 좁혀야 한다. 김 감독의 장기인 맞춤형 전술까지 맞물린다면 말레이시아가 E조의 복병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김 감독은 “홍콩을 맡았을 당시 2018 러시아 월드컵 2차 예선에서 몇 수 위라던 중국과 0-0으로 비기면서 돌풍을 일으킨 기억이 있다”면서 “이번 아시안컵에선 그 이상의 기적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김 감독의 발언에는 말레이시아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이자 한국 지도자의 저력을 인정받고 싶다는 의지가 담겼다. ‘쌀딩크’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박항서 전 베트남 감독에 이어 한국인 지도자 전성시대는 아직 유효하다. 김 감독은 “아시안컵이라는 큰 무대에서 한국인 지도자의 능력을 보여주겠다. 기대해달라”고 말했다.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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