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한국도 예외 없다, 미국이 반도체 산업 들쑤시는 이유는?

김범주 기자 2023. 5. 12.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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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를 지켜야 군사력도 지킨다" 그래서 승산은?


깐깐해서 남 주자 깐깐남 세 번째 시간, 오늘은 반도체 이야기입니다. 미국이 자꾸 우리 반도체 산업, 기업들을 툭툭 건드린다는 기사들이 쏟아집니다. 그런데 보통 언론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미국 왜 저래, 기분 나빠" 수준의 평가에서 그칩니다. 그런 수준의 이야기로는 해결책을 찾을 수 없습니다. 사람 대 사람 간에도 사귀는 사이 아니면, "나 서운해" 해봐야 "그래서 어쩌라고" 정도의 대꾸가 나오잖아요. 상대방이 왜 저러는지를 먼저 파악하고 이해해야, 맞는 대응책도 내놓을 수 있습니다.


미국이 왜 저러느냐, 힌트가 될 만한 책이 있습니다. 칩 워, '반도체 전쟁'으로 번역할 수 있을 텐데, 작년 10월에 나온 이후로 계속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파이낸셜 타임스 같은 언론은 '올해의 책'으로 꼽기도 했고요. 그만큼 이 문제에 대해서 미국의 시각, 혹은 미국의 바람을 잘 담았다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는, 책 표지 디자인에서부터 드러나 있습니다. 성조기에 별 대신, 반도체 칩이 박혀 있죠. 반도체는 곧 미국이다, 미국이 개발해서 여기까지 끌고 왔고, 누구에게도 뺏길 수 없기 때문에 전쟁 같은 다툼을 각오해야 한다는 결론을 담고 있습니다.

미국이 왜 이렇게 반도체에 흥분하는지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전쟁 초기에 러시아가 일방적으로 몰아칠 거란 예상이 많았었는데, 실제론 아니었죠. 여러 변수가 있었지만 바로 이 무기, '재블린'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2km 바깥에서 탱크에 대고 조준을 합니다. 그리고 이 미사일을 쏘면 낮게 날아가다가 (그래서 러시아 탱크에서는 발사 장면을 보지도 못하고 있다가), 탱크 앞에서 하늘로 치솟아서는 직각으로 내리꽂습니다. 쏜 사람은 그사이에 안전하게 피할 수가 있죠.


한 발에 우리 돈 1억 원이 넘는 비싼 무기라서 무한정 쓸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비싼 만큼, 효과는 비교 불가였죠. 기사에 따르면 전쟁 초기 발사한 3백 발 중에 280발이 러시아 탱크에 명중해서 작전 수행 불가 사태를 만들었습니다. 명중률이 93%, 기존 무기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수치입니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반도체 덕분입니다. 사실 저 미사일은 전자제품입니다. 조준된 탱크를 쫓아가고, 적당한 지점에서 공중으로 치솟아서, 무게중심을 잘 잡고 정확하게 내리꽂는 그 과정을, 미사일에 실린 2백 개 정도의 반도체로 알아서 판단하고 작동시킵니다. 아예 처음부터 텍사스 인스트루먼트라고, 반도체 회사가 개발에 참여했을 정도였거든요.

반대로 러시아는 그런 기술이 없죠. 우크라이나 전쟁 통계는 아직 없지만, 8년 전 시리아 내전 때 러시아군을 분석한 결과가 있는데, 그때 러시아군이 썼던 포탄과 미사일 중에 95%는 유도 기능이 없는 '막폭탄'이었습니다. 맞으면 좋고 안 맞으면 어쩔 수 없는 수준이었단 거죠. 미국 같은 반도체 기술이 없기 때문입니다. 막폭탄 대 1억짜리 전자 폭탄, 다수의 예상을 처음부터 뒤바꿔 놓은 가장 큰 차이였다고 할 수 있겠죠.

이렇게 미국의 군사력은 앞선 반도체 개발 능력에 크게 달려있습니다. 양보다 질로 승부하는 거죠. 그리고 이 부분 때문에 '반도체 전쟁' 수준의 분쟁이 시작된 겁니다.

10년 전쯤, 그러니까 오바마 전 대통령 말기까지만 해도 미국 주류는 중국에 대해서 낙관하는 분위기가 다수였습니다. 중국이 물건을 열심히 만들어서 미국에 수출하면, 그래서 돈 맛을 보면 앞서서 그랬던 한국, 일본, 타이완처럼, 미국이 만든 자본주의 세계 안으로 들어와서 행복하게 잘 살 거라고 믿었습니다.


당장 지난주에도 워런 버핏이 본인의 회사,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 총회에서 "미중 갈등은 멍청한 짓"이라고 말했는데 이런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여전히, 특히 경제계에는 많습니다.


하지만 군사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매파'들은 다른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저런 생각으로 중국이 반도체를 개발하고, 인재들과 회사와 기술을 사 모으는 걸 용납해 왔는데 그걸로 수출할 물건을 만드는 걸 넘어서, 첨단 무기에 쓸 '중국 반도체'를 개발하고 있다는 정보를 확보하게 됐다는 겁니다. 민간 통신용 반도체를 만드는 줄 알았더니 각종 무기들과 통신하는 체계를 만드는데 들어가고, AI를 연구한다더니 그 AI 기술로 무기들을 통합 사용하는 시스템을 연구하더란 거죠.


이어서 당선된 트럼프 전 대통령도 초반에는 이런 시각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매파들이 이런 정보들을 바탕으로 설득에 성공했고, 이후 정권이 바뀌고 현재 바이든 대통령이 등장했지만, 역시 이 시각을 수용해서 '대 중국 정책'을 이어가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위기감을 느낀 미국이 그래서 중국이 반도체 개발하는 걸 막으려고 어떤 방법을 집어 들었나, 이게 또 중요합니다. 우리하고 아주 밀접한 영향이 있습니다.

미국이 우선 쓰는 방법은 최신 반도체를 만들 장비를 끊어버리는 겁니다. 이때 등장하는 전문용어가 EUV입니다. 익스트림 울트라 바이올렛, 극자외선 기술이란 겁니다. 앞으로는 이 EUV 기계가 있어야, 더 작은 공간에 촘촘하고 빽빽하게 소재들을 채워 넣는 최첨단 반도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에 그런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회사는 단 두 곳 있습니다. 한국의 삼성전자, 그리고 타이완의 TSMC입니다.


이게 2018년에 삼성이 화성에 EUV 공장을 새로 짓기 시작할 때 행사 사진입니다.

유명한 '충주시 유튜브'에서 이렇게 패러디 재료로 활용하기도 했지만,


뒤집힌 천에 너무 집중하시기보다는 저 EUV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저 기술을 쓰는 방법을 우리가 더 열심히 갈고닦아야 이 전쟁에서 어쨌거나 유리한 위치를 이어갈 수 있다, 이걸 기억하는 계기로 삼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 그런데, 이 EUV라는 기계를 만들 줄 아는 회사가 이 지구상에 딱 한 회사밖에 없습니다. 그게 더 대단하죠. 네덜란드에 ASML이란 회사입니다. 여기를 틀어막으면, 그래서 중국에 기계를 못 보내게 하면, 중국은 최첨단 반도체를 만들 길이 막힙니다.

네덜란드 회산데, 미국이 팔지 말라면 안 파냐? 네, 안 팝니다. 정확하게는 못 팔죠.


이유는 이 사진에서 또 찾아볼 수 있습니다. ASML 홈페이지에 가보시면 이렇게 기계 안을 다 까서 보여주는 사진을 여럿 올려놨습니다. 잘 보면 베낄 수도 있겠는데, 비밀 사항일 거 같은데 저렇게까지 보여줘도 되나 싶죠.

그런데 그럴 만한 게, 보여줘도 못 만듭니다. 절대로요. 이 기계가 인류 역사상 가장 복잡하고 정교하고 어려운 기계입니다. 부품이 45만 7329가지가 들어가는 걸로 알려져 있는데 이게 오차 없이 맞아 돌아가게 만드는 기술을 ASML만 갖고 있습니다. 흉내를 낼 수 있는 회사도 없습니다.

더 나아가서, 이 45만 가지 부품 중에 상당수가 지구상에 한 회사 혹은 두 회사만 만들 수 있는 최고 정밀 부품입니다. 이 회사들이 ASML에만 독점 공급을 하고 있는데, (다른 데는 이 정도 부품은 필요하지도 않으니까요) 문제는 핵심 중에 핵심 부품들은 또 대부분 미국 부품들이란 겁니다. 미국 정부가 "너네 중국에 이 기계 팔려고? 그러면 미국 부품들은 못 준다" 하는 순간, 이 대단한 회사도 문을 닫을 지경에 처하게 됩니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어찌저찌 EUV 기계를 중국이 가져갔다고 해보죠. 다음 난관이 있습니다. 현재 반도체는 정교해질 대로 정교해져서, 사람 손으로는 설계도를 그릴 수 없습니다. 최첨단 소프트웨어가 있어야 그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소프트웨어들, 전부 미제입니다. 다른 나라 제품이 없습니다.

세 번째, 이 설계 소프트웨어도 빼갔다고 해보죠. 그래도 안 됩니다. 기계 돌리려면 또 그 첨단 공정에 맞는 첨단 재료들이 들어가야 하는데 이 재료들은 또 대부분 일본제입니다. 설계도가 있고 기계가 있어도, 이거 안 주면 소용이 없습니다. 공장 못 돌리거든요.

몇 년 전에 일본이 우리나라에 반도체 소재 수출 막았던 거 기억하시죠? 네, 사실 그 소재들 중에 일부입니다. 중국에 할 작전을 시험 삼아서 우리한테 써본 셈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정리하자면, 미국은 중국이 반도체 기술을 키워서 반대로 본인들을 겨냥할 수 있는 초정밀 무기를 만드려고 한다고 판단하고 있고, 그걸 막기 위해서 설계부터 기계, 원자재까지, 거기에 필요한 모든 길을 막기로 했다, 다 미국 혹은 미국과 가까운 우방들이 만드는 것이고, 대체를 할 수도 없습니다.

예를 들면 EUV 같은 경우에, ASML이 1990년대부터 30년 동안 개발한 겁니다. 중국이 지금부터 개발한다고 10년에서 15년은 족히 걸린다는 평가가 나와 있습니다. 그 사이에 미국은 더 멀리 가 있을 수도 있죠.

그렇다고 미국이 중국 반도체 싹을 다 자르겠다는 생각은 아닙니다. 최첨단 반도체가 아닌 반도체, 정확하게 말하면 '7 나노미터'라는 기준을 이야기하는데, 그거보다 큰 반도체는 어차피 지금 확보한 기술로도 만들 수 있을 건데, 그거는 미국에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해도 된다. 왜냐면 미국에 수출할 싼 공산품에 넣을 거니까, 그건 미국에도 이득이니까, 어느 정도 허락을 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예를 들어서 최근에 이런 기사가 나왔는데,


'미국이 원칙이 없네' 하는 댓글들이 넘쳐났지만, 아뇨, 미국은 원칙이 있습니다. 중국에게 '우리에게 이득인 건 열어주고, 위협이 되는 건 싹부터 자르겠다'는 두 방향으로 가려는 겁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김범주 기자news4u@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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