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경제 제재' 허무는 그들...전쟁과 이웃 국가의 불편한 진실 [와이파일]

김재형 2023. 5. 12.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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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모스크바 붉은 광장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지 1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우크라 침공 이후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에 대한 경제 재재를 결정했습니다.유럽연합 EU의 경우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 반도를 강제 점령한 뒤 대 러시아 제재를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제재 이후 자동차와 전자 제품, 고급 브랜드 등 서방의 주요 기업들을 러시아에서 철수했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5월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국민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구든지, 어떤 고급 상품이든 러시아로 가져올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러시아 부호들은 여전히 고가의 명품 사치품들을 불편함 없이 소비하고 있습니다. 레인지로버, 벤츠 등 고급 차량과 구찌, 프라다 등 명품은 물론이고 아이폰 등 최신형 IT기기나 전자제품도 오히려 유럽의 소매가보다 싸고 빠르게 살 수 있습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서방의 제재를 피하는 국가들을 거점으로 하는 무역 경로를 만들었습니다. 우회로를 통해 서방의 제재를 무력화하고 있는 겁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새로운 무역 경로는 주로 모스크바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국가들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터키, 중국, 그리고 아르메니아와 카자흐스탄과 같은 전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들이 러시아로 서방의 상품을 수출하는 중계 기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여기에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역시 러시아 우회 수출의 요충지로 떠올랐습니다.

서방의 제재를 무력화한 대표적 품목은 자동차입니다. 제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자동차 시장은 활발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중동과 기타 지역의 중개업체들을 통해 이루어지는 수입 물량의 증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아랍에미리트와 아르메니아의 러시아 자동차 수출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무역 패턴은 통계에도 잘 나타납니다. 2021년 EU에서 러시아로의 자동차 수출은 50억 유로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1년 뒤인 2022년, 10억 유로로 줄었습니다. 무려 80% 감소했습니다. EU에서 빠진 부분은 어디로 갔을까요? 아랍에미리트와 카자흐스탄 등 러시아의 우회 수입국으로 분산됐습니다.지난해 기준 EU에서 카자흐스탄으로의 자동차 수출액은 전년 대비 4배 증가한 약 7억 유로. EU에서 아랍에미리트로의 자동차 수출은 40% 증가해 24억 유로를 기록했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아르메니아는 작년에 자동차 수입이 5배 이상 늘어나 7억1200만 달러를 보고했습니다.

이러한 수치는 러시아의 자동차 수입 흐름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보여주는 명확한 지표입니다. EU에서 러시아로의 직접적인 수출이 금지되면서 제재를 피할 수 있는 국가들을 우회로로 이용하고 있는 겁니다. 이와 관련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EU가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아르메니아 등으로 선적한 20억 달러 상당의 전략물자 중 절반이 목적지에 도달하지 않고 사라졌다고 보도했습니다.

파이낸셜 타임즈는 증발한 전략물자가 러시아로 유입됐다고 전했습니다.러시아 인접국이 EU에 전략 물품을 주문한 뒤 러시아로 밀수출하는 '유령 무역' 방식으로 서방의 제재를 무력화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러시아로 우회 수출되는 자동차와 고가 명품, 전자기기 등을 만드는 기업들은 이 같은 사실을 모르고 있을까요? 알면서도 눈을 감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AP/연합뉴스)
제재를 무력화시키는 이런 우회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1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데도 러시아 내부 여론이 크게 요동치지 않는 원인 중 하나일 수 있습니다. 전쟁 전과 후 소비 생활에서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이니까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에 따른 서방의 경제 재재, 그리고 중동과 친러시아 국가들의 막대한 반사 이익, 여기에 알고도 눈감는 서방 기업들의 모습까지.

상식보다 이익만을 좇는 냉정한 현실 속에 러시아 시장은 어느때보다 뜨겁습니다. 서방의 제재를 비웃 듯 말이죠.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이유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러시아군 폭격 맞은 우크라이나 도시(로이터/연합뉴스)
덧붙이기)

누군가(우크라이나)의 불행이 또 다른 누군가(중계무역국들)에겐 기회가 될 수 있는 냉정한 현실을 보며 73년 전 발발한 한국 전쟁을 떠올렸습니다. 당시 한반도의 아픔은 이웃 국가 일본에게는 엄청난 기회였습니다. 미국과 UN 등 한국전쟁 참전국들이 전쟁에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기 위해 일본의 공장과 산업을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일본은 높은 수준의 기술을 개발하고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게 됐으며 한국 전쟁 이후 세계 경제에서 선도적 위치를 차지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YTN 김재형 (jhkim03@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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