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사실상 핵보유국화'와 핵확산 논쟁…한국에도 영향

이우탁 2023. 5. 12.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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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커 교수 '한국 독자 핵개발' 반대 "위험 커질 것"
핵확산 낙관론 vs 비관론 논쟁 갈수록 가열될 듯

(서울=연합뉴스) 이우탁 기자 = 북한 핵 문제가 국제적 이슈가 될 때마다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지그프리드 헤커 스탠퍼드대 명예교수이다.

1943년생인 헤커 교수는 제너럴모터스 연구소 금속공학연구원을 거쳐 로스앨러모스 연구소 소장을 1986년부터 1997년까지 맡았다. 스탠퍼드대 금속공학과 교수로 세계적 핵물리학자로 유명하다.

그는 북한 핵문제와 매우 인연이 깊다. 북한이 고비고비마다 그를 평양에 초청해 외부 세계에 알릴 만한 내부 모습을 공개하곤 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북한은 2003년 3월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북한 핵 문제가 국제사회의 이슈로 부각되던 때인 2004년 1월 헤커 박사 일행을 영변 핵시설로 초청해 유리병 속의 플루토늄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핵 억제력'의 존재를 과시했다.

이후 매년 평양을 방문했던 헤커 박사는 2010년 11월 북한 당국의 초청으로 영변을 방문한 뒤 스탠퍼드대 웹사이트에 8쪽 분량의 보고서를 올렸다.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시설의 실체를 확인한 바로 그 유명한 '헤커 보고서'이다.

그런 헤커 박사가 11일(현지시간) 한미 친선 비영리단체 코리아소사이어티의 조너선 코라도 정책국장과의 대담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은 정말 정말 나쁜 생각이라는 게 내 견해"라고 말했다.

코리아소사이어티 대담에 참석한 지그프리드 헤커 스탠퍼드대 명예교수(왼쪽) [코리아소사이어티 유튜브 캡처]

헤커 박사의 발언은 북한이 핵무장에 성공한 상황에서 북핵 위협에 시달리는 한국의 '핵 옵션'을 두고 백가쟁명식 논쟁이 벌어지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한국 내에서는 미국에 의한 확장억제 강화와 함께 전술핵무기 재배치는 물론이고 한국의 자체 핵무장 추진 등 다양한 의견이 분출되고 있다.

최근 끝난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를 담은 '워싱턴 선언'을 통해 미국의 확장억제 방안이 양국 정부의 정책 방안으로 정리되긴 했지만 향후 북한의 대응 등에 따라 한국 내 여론은 물론이고 미국의 기류도 변화의 여지가 있는 상황이다.

헤커 박사가 대담에서 "두 나라(남북한)가 모두 독자 핵무기를 가진다면 위험은 어마어마하게 커질 것"이라면서 "한국이 자체 핵무기를 개발한다면 경험이 부족한 두 명의 지도자가 손가락을 핵 버튼에 올려놓게 되는 셈"이라고 우려한 것은 이른바 핵확산 비관론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1945년 미국에 의해 첫 핵실험이 성공할 때부터 1991년 냉전체제 붕괴 전까지를 제1차 핵 시대로, 그리고 그 이후의 시대를 2차 핵 시대로 구분한다.

2차 핵 시대를 상징하는 국가들이 바로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이다. 이들 국가들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서명하지 않은 채 핵 개발에 성공했다는 특징이 있다. 미국은 독자제재와 유엔 시스템을 통한 제재를 가해 핵 개발을 막으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막지 못했다. 이제 이 세 나라는 '사실상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국 연합뉴스 자료

2차 핵 시대가 이어지는 가운데 어떤 나라가 그 뒤를 이을 것인지가 관심사인데,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등장한 것이다.

새로운 핵보유국의 등장으로 인해 국제 핵질서가 유지될 것이냐, 대혼란을 일으킬 것이냐를 주제로 한 낙관론자와 비관론자 간 시각이 다르다.

비관론을 대표하는 인물이 스콧 세이건인데, 신흥 핵보유국들이 적대국가와 인접해있고 정치적으로도 불안한 체제를 유지하는 국가들이라 핵전쟁의 위험성을 높인다고 우려했다. 헤커 박사의 시각이 바로 이 시각을 바탕에 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낙관론을 강조한 케네스 왈츠는 수평적 핵확산이 이뤄지더라도 반드시 불안정을 초래할 것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핵확산 낙관론자들은 신흥 핵보유국들도 냉전 시기의 미·소 핵 강대국처럼 자국의 핵무기를 안정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왈츠는 북한의 핵무장이 결국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을 높일 것이라고 보고 있다.

북한의 핵 무력 고도화에 따른 학계의 논쟁은 앞으로도 더욱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헤커 박사가 북한의 핵 개발에 따라 한국도 독자 핵 개발에 설 경우 "당연히 그들(한국)은 할 수 있다"고 했듯이 한국의 독자 핵 개발 문제는 국제적인 핵확산 체제에서 폭발력 있는 이슈가 되고 있다는 점이 새삼 확인되는 장면이다.

lw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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