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베로가 육성만 생각할 때, 한화는 감독 '경질' 카드만 만지작거렸다
[마이데일리 = 박승환 기자] 지난 11일 밤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한화 이글스가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 홈 맞대결에서 5-1로 승리, 위닝시리즈를 거둔 후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을 전격 경질했다는 것이었다.
한화는 타구장에서 경기가 버젓이 진행되고 있는 11일 밤 9시 보도자료를 통해 "최원호 퓨처스 감독을 구단의 제13대 감독으로 선임했다. 계약 조건은 3년 총액 14억원(계약금 2억원, 연봉 3억원, 옵션 3억원)이다. 지난 2021시즌부터 팀을 이끈 카를로수 수베로 감독과는 계약을 해지했다"고 밝혔다.
한화가 수베로 감독과 결별했던 가장 큰 이유는 '방향성'에 대한 차이였다. 한화는 수베로 감독이 타순과 라인업을 확실하게 정립하고 시즌을 치러나가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수베로 감독은 팀을 처음 맡았던 2021시즌과 크게 다르지 않은 틀에서 2023시즌을 진행해왔던 것이 주된 경질 요인이었다.
손혁 단장은 "지난 시즌이 끝난 후 수베로 감독의 연임에 대한 내부 논의가 있었다. 남은 게약 기간 1년을 함께 가기로 했지만, 최근 연패 기간 중 구단 내부적으로 다시 논의를 했다"며 "달라진 운영을 보여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직도 타순이나 투수의 역할이 완전히 정립되지 않았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선수들의 활약이 뒷받침이 돼야 한다. 현장에서 타순과 보직을 못 박아주더라도 선수가 그에 맞는 기량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가 없다. 3년째의 성과도 내야 하는 상황에서 현재 선수들의 컨디션과 기량으로는 고정 타순과 보직을 정하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현장에서 팀을 이끄는 감독과 프런트의 불협화음이었던 셈이다.
지난 2018시즌 77승 67패 승률 0.535, 정규시즌 3위로 마치며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았던 한화는 2019시즌 9위, 2020시즌 10위라는 충격적인 성적 남긴 뒤 국내가 아닌 해외 지도자 물색에 나선 끝에 수베로 감독에게 지휘봉을 안겼다. 수베로에게 감독직을 맡긴 이유는 명확했다. 당장의 성적보다는 유망주 육성 등 팀의 리빌딩 기반을 다져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시즌을 거듭하면서 성적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한화의 성적은 해를 거듭할수록 곤두박질쳤다. 수베로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첫 시즌 49승 12무 83패 승률 0.371, 2022시즌에는 46승 2무 96패 승률 0.324로 아쉬움을 남겼다. 이는 2023시즌도 크게 변함이 없었다. 올 시즌은 그럴만한 이유들이 있었다.
한화는 오프시즌 FA(자유계약선수) 시장에서 채은성과 오선진, 이태양을 품에 안았고, 사인 앤드 트레이드를 통해 이명기까지 영입하며 눈에 띄는 보강을 이뤄냈다. 그러나 엄격히 선별한 외국인 투수 버치 스미스가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부상으로 팀을 떠나게 됐고, 브라이언 오그레디가 극심한 부진을 겪은 결과 4월 6승 1무 17패(10위)로 허덕였다. 이는 사령탑이 컨트롤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프런트의 명백한 실수였다.
한화가 수베로 감독의 경질을 본격 다시 논의한 것은 지난 4월 23일 LG트윈스와 맞대결을 시작으로 롯데 자이언츠, NC 다이노스에게 6연패를 당했던 기간이었다. 수베로 감독도 해당 시기에 입지의 불안함을 느낀 듯해 보였다. 이유는 5월 2일부터 시작된 잠실 두산 베어스전의 인터뷰였다.
지난 3일 수베로 감독은 취재진으로부터 '아무리 과정이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성적을 내야 한다. 여러 시도와 과정이 중요하지만, 프로 팀이기 때문에 성적을 내야 하는데 나지 않고 있다. 지금 이대로 간다면 꼴찌를 하지 않을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에 수베로 감독은 "사람이 살아갈 때 긍정적이면 안 된다.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성 있게 살아가야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뿐만이 아니라 야구에도 적용이 된다. 역사적으로 한화를 봤을 때 이기는 것보다 팩트적으로 지는데 익숙한 팀이다. 익숙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야구를 해왔다. 하지만 한 가지 약속할 수 있는 것은 경기의 질과 내용을 보면 지난 수년간 져왔을 때보다 단단해지고 응집력이 생겼고, 좋은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 문을 열었다.
계속해서 그는 "장기간 좋은 야구, 이기는 야구, 오랫동안 이기는 야구를 할 수 있는 한화 이글스가 될 수 있다. 선수들, 가족들, 팬분들이 웃을 수 있는 날이 분명히 올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그때 내가 있을지 없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결과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결과가 있기까지 계속해서 땀 흘려 씨를 심는 사람이 있는데, 씨를 심는 과정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수베로 감독은 자신이 경질되는 사실을 11일 경기가 종료된 후 알게 됐지만, 돌이켜보면 6연패를 당한 이후 입지가 불안해졌음을 넌지시 내비쳤다. 그리고 이는 현실이 됐다. 수베로 감독의 계약이 종료되는 마지막해, 재계약이 힘들 것이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3년 만에 삼성을 상대로 위닝시리즈를 거둔 날, 5월 5승 2패로 상승세를 타던 중의 경질은 최악 중 최악이었다. 즉 수베로 감독은 팀 뎁스를 위해 씨를 심는 고민을 이어가던 때, 한화는 경질 시기만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모든 결과의 책임은 손혁 감독과 새롭게 사령탑으로 부임한 최원호 감독의 몫으로 넘어갔다. 지난해 퓨처스리그 북부리그 우승과 퓨처스리그 역대 최다 14연승을 이끌었던 최원호 감독은 수베로와 다른 선수단 기용, 성적을 보여줄 수 있을까.
[카를로스 수베로 전 감독, 손혁 단장, 최원호 감독. 사진 = 마이데일리 DB]-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Copyright © 마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