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취임 1주년 날 예정에 없이 김기현 불러 ‘힘 실어주기’

이원석 기자 2023. 5. 12.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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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미 후 8일 새 3번 만나…당 향해 분명한 용산의 메시지 전하려는 의도
지나친 ‘당정일체’로 공천 개입 등 논란 우려하는 목소리도

(시사저널=이원석 기자)

"야당에서 우리 당을 비하할 때 '국짐(국민의짐)'이라는 표현을 쓰던데, 잘못하면 진짜 당이 윤석열 정부 국정 운영에 짐이 될 수도 있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취임 두 달을 맞은 김기현 대표 체제 당 지도부에 대해 이같이 우려를 표시했다. 다른 중진 의원도 "김기현 지도부로 총선을 치를 수 있겠느냐는 이야기가 벌써부터 나온다. 윤 대통령의 강한 지원을 받아 탄생한 지도부가 국정 운영 뒷받침은 하지 못할지언정 시작부터 이렇게 흔들려서야 되겠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1주년에 취임 두 달째를 맞이한 여당 지도부를 향한 당 안팎의 시선이 곱지 않은 분위기다. 윤 대통령 취임 딱 1년째 되는 날인 5월10일 국민의힘에선 중앙윤리위원회 회의가 열렸고, 두 명의 최고위원(김재원·태영호)이 당원권 정지 1년과 3개월의 중징계를 받았다. 당내 인사들은 물론 보수언론도 여당 지도부를 향해 "지리멸렬"이라며 일제히 쓴소리를 쏟아냈다. 특히 선출 과정에서부터 인지도 등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적지 않았던 김 대표의 리더십을 향한 회초리가 더욱 매섭다. 일각에선 벌써부터 비대위 전환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윤석열 정부 출범 1주년을 맞은 5월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내 기자실을 방문해 환하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 개방 1주년 행사에 김 대표 깜짝 초청

이렇듯 당 안팎에서 제기되는 비판으로 김기현 체제가 흔들리자, 윤석열 대통령이 김 대표 힘 실어주기에 나섰다.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5월10일 낮 당 지도부를 대통령실로 불러 오찬을 가진 윤 대통령은 같은 날 저녁 '청와대 개방 1주년 기념 특별음악회'에도 당초 참석 계획이 없던 김 대표를 깜짝 초청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를 두고 용산(대통령실)과 여의도(국민의힘)에선 윤 대통령이 취임 1주년 당일 점심과 저녁의 주요 행사 모두에 김 대표와 나란히 자리를 함께하는 모습을 연출한 것은 김기현 체제에 대한 신뢰와 지지에 변함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적 행보라는 해석이 나왔다. 

아직 출범한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은 김기현 체제에 대한 평가가 박한 것은 현 지도부의 정체성 때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당원들은 친윤(親윤석열) 대 반(反)윤 구도 속에서 치러진 지난 3·8 전당대회에서 윤심(尹心·윤 대통령 의중) 후보로 꼽힌 김기현 대표를 비롯해 전원 친윤 인사들로 구성된 지도부를 선출했다. 대선 직후부터 지속된 당내 갈등으로 윤석열 정부 출범 1년 가까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였던 집권여당이 비로소 대통령과 발을 맞춰 총선까지 치를 정식 지도부를 들인 것이다. 그만큼 김기현 지도부의 성패는 윤 대통령에 대한 평가와도 직결될 수 있다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김기현 지도부는 출범하자마자 곧바로 흔들렸다. 최고위원 중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김재원 수석최고위원이 극우 인사로 분류되는 전광훈 목사의 예배에 참석해 '전 목사가 우파를 천하통일했다'며 논란의 발언을 한 데 이어 '5·18 정신의 헌법 수록을 반대한다' '제주 4·3은 급이 낮은 기념일' 등 잇단 설화로 잡음을 일으켰다. 조수진 최고위원은 더불어민주당이 일방 통과시킨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대안으로 '밥 한 공기 다 먹기' 캠페인을 소개했다가 조롱에 휩싸였다. 또 태영호 최고위원이 민주당의 돈봉투 의혹을 비판하면서 'Junk(쓰레기) Money(돈) Sex(성) 민주당. 역시 JMS 민주당'이란 내용의 SNS 글을 올렸다가 비판의 도마에 오른 데 그치지 않고, 의원실 내부 회의 녹취 유출로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의 공천 개입 논란 빌미까지 제공하며 논란의 정점을 찍었다.

논란을 유발한 건 최고위원들이지만, 비판의 종착지는 결국 당 지도부 수장인 김기현 대표다. 김 대표의 리더십 부재가 최고위원들의 잇단 논란을 억제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논란 이후의 부수적인 장면들도 이러한 시각을 뒷받침한다. 태 최고위원은 4월24일 최고위 회의에서 "제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당원들이 선택해 줬기 때문"이라며 "지난 전당대회는 여론조사 3%라는 꼴찌로 시작했으나 그렇다고 오만 곳에 도움을 구걸하지도 않았다"고 발언했다. 직전에 "김구 선생이 김일성의 통일전선 전략에 당했다"는 주장을 펼쳤다가 김 대표로부터 대외활동 자제령을 받자 반발성 발언을 한 것으로 풀이됐다.

5월10일 당 윤리위로부터 징계를 받은 김재원 최고위원(오른쪽 두 번째)과 태영호 전 최고위원(왼쪽 두 번째)이 김기현 대표(오른쪽 첫 번째) 등 국민의힘 지도부와 지난 3월 당 의원총회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취임 두 달 만에 최고위원 두 명 중징계

논란의 중심에 있는 최고위원들뿐 아니라 다른 최고위원들 역시 김 대표를 향해 불만을 품고 있는 듯한 분위기도 감지됐다. 5월10일 윤 대통령 취임 1주년 기념 국민의힘 지도부와의 오찬에 최고위원 전원의 참석이 배제된 것과 관련해 장예찬 청년최고위원은 SNS에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당 지도부에서 선출직 최고위원을 빼면 누가 남을 수 있느냐"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글을 곧 삭제했으나 김 대표에 대한 지도부 내 시각을 드러내는 단적인 예라는 분석이다.

국민의힘에선 지도부 내에서 김 대표의 영(令)이 제대로 서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민의힘 전직 중진 의원은 시사저널에 "변명의 여지 없이 지도부 내에서 일어난 논란은 이를 통제하지 못한 당대표의 실책이다. 김 대표의 리더십이 먹히지 않고 있는 것 같다. 통제를 하려고 하지만 반발하는 목소리까지 새어 나온다는 건 심각한 문제"라며 "최고위원들이 제각기 할 말을 하는데 김기현 지도부인지, 윤석열 지도부인지, 극우 지도부인지 정체성을 잘 모르겠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국민의힘 윤리위가 윤 대통령 취임 1주년인 5월10일 김재원 최고위원과 당일 오전 사퇴한 태영호 전 최고위원에 대해 각각 당원권 정지 1년과 3개월의 징계를 내리면서 최고위원 리스크가 어느 정도 정리됐다는 평가도 있지만, 여전히 김기현 지도부를 향해 불안한 시각이 완전히 거두어지진 않은 분위기다. 총선 전 비대위 전환 가능성도 여전히 거론된다. 새롭게 최고위원을 선출하는 등의 과정뿐만 아니라 김 대표가 앞으로 지도부를 어떻게 추슬러 이끌어 나갈지가 관건이다.

당장 여전히 직을 유지하고 있는 김재원 최고위원의 거취도 김 대표가 정리해야 할 문제다. 김 최고위원이 징계에 불복해 가처분 소송에 나선다면 당이 다시 수렁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당 내부에서 공개적으로 터져 나오는 비판의 목소리도 김 대표에 대한 위협 요소다. 당내 대권주자급인 홍준표 대구시장은 5월10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만나 "당대표(김기현)가 좀 옹졸해서 말을 잘 안 듣는다"고 김 대표를 정면 겨냥했다. 홍 시장은 지난 4월 '전광훈 목사 우파 천하통일' 발언을 한 김재원 최고위원에 대해 당 지도부가 미온적 대처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는데, 그 후 김 대표에 의해 당 상임고문에서 이례적으로 해촉됐다.

尹-金, 그동안 비공개로 몇 차례 따로 만나

여러 부정적 관측에도 김 대표 측은 "김 대표의 리더십이 발휘되는 것은 지금부터"라며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김 대표 측 관계자는 시사저널과 만나 "취임 2~3개월은 장기간 지도부 공백 상태였던 당을 정비하고, 새로운 방향을 잡아가는 시간이었다. 5월말에서 6월부터는 조금 더 과감하게 '김기현 리더십'이 인식되기 시작할 것"이라며 "구체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지금까지 있었던 논란들도 김 대표가 보이지 않게 정치력을 발휘해 수습해온 부분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통화에서 "김 대표는 취임 이후 줄곧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신속하게 대응해 왔다"며 "김 대표 취임 이후 당의 여러 부분이 혁신적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민생 중심적으로 당의 체질도 변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내에선 논란이 생길 때마다 김 대표가 직접 나서서 당사자와 대화하는 등 매우 적극적으로 대응한 것에 대한 호평도 나온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몇몇 최고위원의 발언이 논란이 됐을 때도 김 대표가 직접 발언에 대해 주의를 요청하는 등 애썼다고 한다"며 "원내대표 시절에도 김 대표는 매우 세심하게 여러 사안을 처리해 나간다는 평가들이 있었는데, 당대표가 돼서도 협상 상대나 논란 당사자들과 직접 대화해 문제를 풀어나가는 등의 방식으로 세심하게 당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고 본다"고 평했다. 취재에 따르면 김 대표는 국민의힘 소속 이민근 안산시장이 독일 출장으로 4월16일 세월호 참사 9주기 추모식에 불참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직접 설득해 일정을 변경하도록 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용산의 메시지는 분명해 보인다. 윤 대통령은 5월2일 윤재옥 원내지도부를 환영하기 위한 목적으로 김기현 대표를 포함한 여당 지도부를 불러 만찬을 가진 데 이어 일주일 만인 5월10일 또다시 당 지도부와 함께 취임 1주년 기념 오찬을 했다. 윤 대통령은 오찬 후 김 대표 등과 함께 대통령실 기자실을 방문하며 보기 드문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5월10일 당일 갑작스럽게 김 대표에게 저녁에 열리는 청와대 개방 기념행사 참석을 요청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공개되진 않았으나 김 대표 취임 이후 몇 차례 윤 대통령과 김 대표가 따로 만남을 가진 사실도 있었던 것으로 시사저널 취재 결과 확인됐다. 대통령실 사정을 잘 아는 여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김기현 지도부에 대한 신임을 확인해 주려는 의도가 아니고서야 이렇게까지 자주 김 대표를 부르겠느냐"며 "윤 대통령도 김 대표가 다음 총선을 함께 치를 '친윤 지도부'라는 신뢰를 분명하게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견해를 밝혔다.

다만 일각에선 김기현 지도부가 지금의 허약함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지나치게 윤 대통령에게 의존할 경우 '당정일체'가 돼 내년 총선에서 공천 개입 등의 논란이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대해 김 대표 측 관계자는 "김 대표는 분명하게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고, 주도적인 판단과 소통으로 지도부를 이끌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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