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의 시론]한·일 과거 아닌 미래에 집중할 기회다
尹·기시다 한일관계 미래 제시
정상회담 후 미사일 정보 공유
아태·국제 관계 협력도 물꼬
표만 보고 과거 매달린 정치인
북·중 위협엔 눈감아 안보 위기
미래 위한 국가 경영 자격 없어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의 지난 7일 회담으로 양국 정상의 셔틀외교가 복원되면서 한일관계 정상화가 본궤도에 오르게 됐다. 기시다 총리 방한은 일본 총리로는 2018년 2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총리가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을 방문한 이후 5년 3개월 만이었다. 또 한일 정상 간 셔틀외교에 따른 일본 총리의 방한은 2011년 10월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의 서울 방문 이후 11년 7개월 만에 이뤄진 일이었다. 미·중 경쟁에 따른 신냉전 구도가 심화해 온 점과 동북아시아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대표하는 두 국가인 한국과 일본의 물리적 거리를 감안하면 양국 정상이 자리를 함께하는 데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린 셈이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가 밀착하는 와중에 한국과 일본, 미국 간의 관계가 삐걱거리는 것은 비정상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러한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시간이 오래 걸린 건 일부 정치인이 미래가 아닌 과거만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 정상회담의 의미는 미·중의 군사적·경제적 경쟁과 북 핵·미사일 위협 고조 속에서 한일 미래를 위한 양국 간 협력이라는 큰 방향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이는 정상회담 이후 양 정상이 한 말에 잘 드러난다. 기시다 총리가 8일 정상회담 후 귀국 전 취재진에게 “윤 대통령과 신뢰관계를 한층 강화하고 힘을 합쳐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도 9일 국무회의에서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한일 양국이 서로 교류·협력하면서 신뢰를 쌓아간다면 한일관계가 과거 가장 좋았던 시절을 넘어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양 정상 모두 한일의 미래를 가리키는 것이다. 정상회담 후 한국과 일본은 미국을 연계로 북한 미사일 정보를 실시간 공유하기 위한 3국 협의체 구축에 들어가기로 했다. 이처럼 한미동맹에 한일 안보협력이 더해지면 북한의 위협은 물론, 중국의 압박에 대한 대응력이 강해지게 된다. 또 한일 양국은 동아시아 질서와 국제관계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물꼬를 텄다. 과거가 아닌 한국의 미래를 조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일이 미래를 위한 기초를 쌓은 건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의 1998년 공동선언이었다. 25년이 지난 현재 한일관계는 전진하기는커녕 퇴보했다. 일본에서는 혐한을 이용해 세를 불리려는 정치세력이 걸림돌이었다면, 한국에서는 반일로 표를 얻으려는 정치집단이 문제였다. 이들에게 국가의 미래는 안중에도 없었다. 북한은 같은 민족인 한국은 물론, 유사시 후방기지인 일본, 군사적 지원을 할 미국 본토를 겨냥한 핵 위협을 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을 감싸며 한미 연합연습이라는 자위권도 포기하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위기 상황이 수년째 지속됐음에도 전임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표만 생각해 과거사를 붙잡고 한일 갈등 해결책은 내놓지 않았다. 미국의 주요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의 갈등이 북한과 중국에 이득이 되고, 이로 인해 동북아 지형이 불안정해지는 상황은 안중에도 없었다. 당장 표가 되기 어려운 미래보다는 ‘토착왜구’ 같은 구호가 먹히는 과거에 매달린 것이다. 결국, 이는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한국 외교가 겉돌 수밖에 없는 상황을 초래했다. 문재인 정부가 ‘중국은 큰 산, 우리는 작은 봉우리’ ‘중국몽과 함께 하겠다’는 친중을 넘어 사대정책에 버금가는 굴욕적 모습을 보였지만, 미국과 치열하게 경쟁 중인 중국에 먹힐 리 없었다. 중국과 러시아의 비호를 받고, 신냉전 분위기를 파악한 북한이 문 정부의 말 몇 마디에 핵을 포기할 까닭도 없었다. 문 정부와 민주당은 격변하는 세계 정세에 눈감고 성리학이라는 과거에 매달려 ‘위정척사’를 외치던 조선 사대부와 닮았다.
최초의 근대적 보수주의자로 평가받으면서도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영국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는 “과거를 가지고는 결코 미래를 설계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가 정치인을 지도자로 선출하는 건 이들이 깊은 통찰력으로 국가가 나아갈 방향을 정하고 이끌어 가기를 바라서다. 과거에만 매달려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이들에게 한국의 미래를 맡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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