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이팝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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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슬고슬한 밥알이 탐스럽게 피어나는 나무가 있다.
흔히 아카시아라고 부르는 아까시나무의 꽃을 떠올리는 이들은 그 꿀을 벌에게 양보하지 않고 먹어 본 이들일 것이다.
그런데 이팝이나 입쌀도 함께 고려하면 '니'는 '벼'를 가리키는 옛말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겠다.
그래도 이팝나무의 뜻을 알게 되면 그 꽃이 더 정겹고 탐스러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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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슬고슬한 밥알이 탐스럽게 피어나는 나무가 있다. 흔히 아카시아라고 부르는 아까시나무의 꽃을 떠올리는 이들은 그 꿀을 벌에게 양보하지 않고 먹어 본 이들일 것이다. 이 나무는 가시 탓에 가로수로는 쓰일 수 없어 동네 어귀의 언덕이나 야트막한 산에서나 볼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4, 5월의 거리를 하얗게 밥알로 장식하는 가로수가 부쩍 늘어 이 나무를 먼저 떠올리는 이도 있을 법하다.
이 나무의 이름은 이팝나무인데 ‘이팝’이 좀 낯설다. 이 나무와 짝을 이루는 조팝나무 역시 조금 작은 밥알 모양의 꽃을 촘촘히 피우는데 ‘조팝’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조팝은 요즘에는 ‘좁쌀밥’이라고 부르는, 조로 지은 밥이다. ‘조’는 ‘머리’와 마찬가지로 과거에는 받침으로 ‘ㅎ’을 가지고 있었으니 ‘머리카락’과 마찬가지로 ‘조팝’이 되는 것이다. 이에 견주어 보면 이팝의 ‘이’ 또한 과거에 받침으로 ‘ㅎ’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팝보다 더 익숙한 것은 멥쌀의 다른 말인 ‘입쌀’이나 ‘이밥에 고깃국’에 쓰이는 ‘이밥’이다. 이 단어들에서 ‘?’이나 ‘이’를 추출해 낼 수 있는데 놀랍게도 이것은 ‘끼니’의 ‘니’와 같은 단어이다. 끼니는 때에 먹는 밥이라는 뜻이니 ‘니’가 밥을 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팝이나 입쌀도 함께 고려하면 ‘니’는 ‘벼’를 가리키는 옛말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겠다.
하얀 쌀밥이 건강의 적이 되었으니 이 나무를 보고 밥을 떠올리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이밥에 고깃국은 기와집에 비단옷과 함께 풍족한 삶의 상징이었는데 이제는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그래도 이팝나무의 뜻을 알게 되면 그 꽃이 더 정겹고 탐스러워 보인다. 이 땅의 어디에선가 아직도 배불리 먹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팝 혹은 이밥은 여전히 선망의 대상이다. 이 가로수가 이 땅의 모든 곳에 탐스럽게 꽃을 피우기 바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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