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유전자 진화시키며 가뭄에 더 강해진 옥수수
과학자들이 곡물이 건조한 환경에서 버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유전자의 진화 과정을 알아냈다. 이 유전자는 식물의 세포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가뭄에 대응하기 위한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진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동물이 아닌 식물과 관련해 이 같은 유전자의 변화 양상을 규명한 것은 이번 연구가 처음이다. 가뭄과 같은 건조한 환경에서 내구성이 높은 농작물을 개량하는 단서가 될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케네스 번바움 미국 뉴욕대 교수 연구팀은 이같은 내용이 담긴 연구 결과를 10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 가뭄 견디는 해법은 '뿌리'
연구팀은 건조한 환경에서 잘 버티는 옥수수, 수수, 조 세 종류의 곡물을 조사 대상으로 삼았다. 옥수수와 수수는 대략 1200만 년 전 두 개의 다른 종으로 진화한 먼 친척이고 기장은 이들 곡물의 더 먼 친척이다. 오랜 기간 진화 끝에 수수는 옥수수보다 가뭄에 훨씬 더 강한 특성을 가지도록 변모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브루노 길로틴 뉴욕대 생물학과 연구원은 “이 세 가지 작물은 비슷하지만 가뭄에 대한 내성은 서로 다르다”며 곡물이 건조 환경에 버틸 수 있는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선 세 곡물의 유전자를 비교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들 곡물의 차이점 중에서도 뿌리에 주목했다. 연구를 이끈 번바움 교수는 “뿌리는 가뭄과 더위를 막는 첫 번째 방어선”이라고 말했다. 이어 “뿌리는 많은 부품이 있는 기계와 비슷하게 복잡한 구조”라며 “곡물이 물을 모으고 가뭄과 열에서 버티는 능력을 알기 위해선 뿌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뿌리 중에서도 중요한 요소는 영양분으로 가득 찬 점액이다. 이 점액은 뿌리가 땅속을 뚫는 것을 돕는 동시에 식물이 건조한 환경 등으로부터 버틸 수 있도록 유익한 박테리아를 끌어들인다. 뿌리의 자세한 구조를 확인하기 위해 연구팀은 각 곡물의 뿌리를 해부한 뒤 디지털 공간전사체 분석을 통해 뿌리에서 다양한 작용을 하는 100개의 유전자 위치를 한 번에 확인했다. 공간전사체 분석은 특정 시점에 발현하는 유전자 활동을 순간적으로 포착하는 기법이다.
분석 결과 옥수수, 수수, 기장 각 곡물에서 이 점액의 생산을 돕는 유전자는 각기 다른 부위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수의 경우 점액을 생산하는 유전자가 뿌리 외부의 조직에서 발견됐지만 옥수수는 근관(뿌리의 맨 끝 부분)에서 점액을 만드는 유전자가 분포돼 있었다. 이는 옥수수가 질소 영양분을 획득하는 것을 돕는 박테리아를 끌어들일 수 있는 진화적 변화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 뿌리 내 유전자 구성도 진화했다
이번 연구에서는 옥수수가 건조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유전자 구성이 진화한 정황도 포착됐다. 단일세포에 대해 메신저리보핵산(mRNA) 검사를 실시한 결과 옥수수는 1200만년 전 수수로부터 갈라진 후에 특정한 유전자들이 대량으로 복제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건조한 환경에 버티기 위한 뿌리의 작용 등을 돕는 기능이 강화된 것이라고 추측했다.
또 옥수수가 진화를 거듭하면서 10~50개의 유전자가 새롭게 교체됐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새롭게 자리 잡은 유전자는 옥수수 세포가 척박한 토지환경에 빠르게 적용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는 최근 발전한 염기서열결정 기술 덕분에 가능했다. 이 기술은 DNA를 이루고 있는 염기가 결합된 순서를 알아내는 방법이다. 최근 다양한 염기서열결정 기술이 고안되면서 한 번에 수천~수백만 개의 DNA 염기서열을 결정할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다. 번바움 교수는 “10년 전만 해도 초기 단세포 기술로 수십 개 정도의 세포만 분석할 수 있었다”면서 “하지만 이제는 일상적인 실험에서도 수만 개의 세포에 담긴 유전자의 진화적 구조를 확인할 수 있는 수준으로 분석법이 발전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후속 연구를 통해 가뭄에 버티는 유전자가 담긴 세포가 건조한 환경이 주는 스트레스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곡물이 가뭄에 버티는 능력에 관여하는 모든 요인을 종합한다는 구상이다. 번바움 교수는 “곡물의 세포가 척박한 외부 환경에 버틸 수 있는 비결을 찾기 위해선 세포의 작용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고 강조했다.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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