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금배지의 1년, 민생법안 던져둔 채 쌈박질
윤 정부 1년 평가하는 국회
국회의원 1년은 어땠나…
쏟아진 민생법안 현주소
민생법안 처리는 지지부진
금배지 관심사는 총선 공천
윤석열 정부 출범 1년을 맞았다. 평가는 엇갈린다. 여당 의원들은 대통령의 성과를 칭송하고, 야당 의원들은 날선 비판을 내놓는다. 그런데 돌아봐야 할 건 '대통령의 1년'만은 아니다. 민생을 위한다는 '금배지의 1년'도 짚어봐야 한다. 이들은 과연 지난 1년간 민생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을까.
"뉴스 보기가 싫다"는 사람들이 많다. 전세사기, 주식사기…. 서민 등쳐먹는 온갖 사기꾼이 판을 친다. 어디 그뿐이랴. 치솟은 물가에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취약계층, 연일 터지는 안전사고, 스스로 목숨을 내던지는 청소년들, 14개월 연속 이어지는 무역적자…. 차라리 눈을 감아버리고 싶은 게 국민들의 현실이다. 모두 정치 탓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치와 무관하지도 않은 문제들이다. 하지만 정치권이 이런 국민의 고통을 함께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주년을 맞았다. 국정수행 지지율은 34.5%(리얼미터·4월 4주차), 부정평가는 62.6%에 달한다. 낙제에 가까운 점수다. 그렇다면 정치의 또 한 축인 국회는 어떨까. 때마다 '민생'을 입에 올리는 이들은 지난 1년간 국민을 위해 일했을까.
결과를 알 수 있는 '바로미터'는 민생법안들의 처리 결과다. 여야는 지난해 9월 윤석열 정부 들어서 첫 정기국회를 앞두고 '민생 입법' 경쟁을 펼쳤다. "정기국회 내 반드시 처리하겠다"면서 각각 7건(더불어민주당), 10건(국민의힘)의 민생 입법 과제를 제시했다. 그렇게도 난리법석을 떨면서 제시했던 이들 법안은 지금 어디쯤 와있을까.
■ 더불어민주당 성적표 = 먼저 국회 의석 169석의 거대 야당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성적표를 보자. 민주당의 민생 입법 과제 7건 중 국회를 통과한 건 단 한건에 불과하다. 국민의힘과 공통 입법 과제로 제시한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법(대중소기업상생협력촉진에관한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그것이다.
그동안 납품업체들은 원자재 가격이 인상되더라도 납품단가를 올리지 못해 손해를 감수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 법은 원자재 가격 상승 시 향후 계약에서 납품단가를 조정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해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법안 처리 필요성이 높아졌고, 여야의 동의 속에 해당 법안은 국회를 통과(2023년 1월 3일 시행)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강력하게 추진하려 했던 '쌀값 정상화법(양곡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 '장애인 국가책임제법(장애인등에대한특수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 등)' '노란봉투법(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 등)'은 정부와 여당의 반대에 부딪혀 국회 어딘가에 묶여 있다.
이중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 초과 생산량 또는 쌀 가격 하락 시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농가를 보호하고 식량 주권을 지키기 위한 법"이라는 민주당 주장과 달리 정부와 여당은 극렬히 반대해 왔다. 지난 3월 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12일 만인 4월 4일 윤 대통령이 '재의 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재표결에 부쳐질 예정이다.
또 다른 쟁점 법안인 노란봉투법도 처리가 지지부진하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쟁의 대상 확대 쟁의행위 중 발생한 손해배상 청구 제한 노동자 개인에게 손해배상 청구 금지 등을 골자로 한다. 노조의 파업 등으로 손실이 발생한 경우 사측이 노동자 개인에게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사례가 증가하면서 발의된 법안이다.
19·20대 국회에서도 법안이 발의됐지만 모두 폐기됐다. 윤 정부 들어서 지난 1년간 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한 관련 법안만 9건에 달한다. 해당 법안은 지난 2월 21일에서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지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멈춰 섰다.
법사위에서 60일 이상 계류되면서 소관 상임위인 환노위가 본회의에 직회부할 수 있는 요건이 충족된 상태다. 결국 노란봉투법의 처리는 또다시 5월 임시국회로 넘어간 셈이다.[※참고: 국회법에 따르면 법사위가 '이유 없이' 60일간 법안 심사를 마치지 않을 경우 상임위 표결(5분의 3 이상 찬성 시)을 거쳐 국회 본회의에 회부할 수 있다.]
물론 쟁점 법안은 논의 과정이 길어질 수 있다. 문제는 서민들에게 필요한 '기초연금 확대법(기초연금법 일부개정법률안)' '아동수당 확대법(소득세법 일부개정법률안)' '가계부채관리법(은행법 일부개정법률안·채무자회생및파산에관한법률 일부개정법률안 등)'을 처리하지 못한 건 문제가 크다.
이중 아동수당 확대법은 국민의힘 역시 입법 과제로 밀었던 법안이기도 하다. 이 법은 '출산이나 6세 이하 자녀의 보육 관련 급여 비과세 한도액을 월 10만원(1명당)에서 월 20만원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 1년간 이수진·김승원·김회재·김영주(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총 9건의 법안을 발의했지만 모두 소관위 계류 중이다. 저출산 문제 해결이 시급한 지금, 여야 이견이 없는 법안마저 처리하지 않은 건 국회가 일을 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기초연금 확대법 역시 심화하는 노인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법안이다. 위성곤·김태년·김남국 의원 등이 각각 대표발의한 '기초연금법 일부개정법률안'에는 기초연금액 현행 30만원에서 40만원으로 인상 기초연금 부부 감액 폐지 기초연금 대상자 노인 단계적 확대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3건 모두 소관위에 머물러 있다.
■ 국민의힘 성적표 = 그렇다면 '약자동행·민생안전·미래도약'을 내걸었던 국민의힘의 성적표는 어떨까. 이들은 앞서 언급한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법'을 포함해 '반도체 특별법(국가첨단전략산업경쟁력강화및보호에관한특별조치법 일부개정법률안)' '미래 인재 양성법(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법안·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일부개정법률안 등)' '함께 잘 사는 농촌법(농촌공간재구조화및재생지원에관한법률안)' '재난 예방·대응법(재난관리자원의관리등에관한법률안)' 등 5건을 처리했다. 국민의힘이 총 10건의 민생 입법 과제를 제시했으니 절반의 성공을 이룬 셈이다.
문제는 진짜 민생을 위한 법안은 뒷전이었다는 점이다. 일례로 빠르게 국회를 통과한 '반도체 특별법'의 경우 '반도체 공장 인허가 기간을 단축'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서민보단 기업을 위한 법안인 셈이다. '미래인재 양성법'을 두고도 논란이 많다.
이 법안은 학령인구 감소로 발생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여유분을 끌어다 대학 교육 강화에 투자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당연히 현재 유·초·중·고등 교육에 사용하는 지방교육재정이 줄어들 수밖에 없어 교육단체 등의 반발이 컸지만 결국 국회를 통과했다.
반면 서민들을 위해 시급한 법안은 관심 밖이었다. 대표적인 게 '살기 좋은 임대주택법'이다. 조명희(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7월 22일 공공임대주택 맞춤형 주거 서비스 제공 영구임대주택 공동관리비 등 국가 지원 등의 내용이 담긴 '장기공공임대주택입주자삶의질향상지원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이 개정안은 지난 2월 한차례 소관위 테이블에 올랐을 뿐 아직도 국회서 낮잠을 자고 있다.
기대를 모았던 '스토킹범죄 처벌법(스토킹범죄의처벌등에관한법률 일부개정법률안)' 역시 국회 계류 중이다. 사실 스토킹범죄 처벌법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공약 사항이다. 지난해 9월 '신당역 살인사건' 발생 이후엔 한동훈 법무부 장관까지 나서서 법안 처리를 약속했다. 특히 관심을 모은 주요 내용은 '반의사불벌죄' 폐지다. 현행법상 스토킹범죄자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을 경우' 처벌을 면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협박을 당하거나, 2차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국민의힘 소속 송석준·김미애 의원 등이 이같은 내용을 담은 법안 8건을 발의했지만 그중 단 한건만 '대안반영폐기'됐다. 스토킹범죄 근절을 위한 핵심인 '반의사불벌죄 폐지'는 여전히 답보 상태다.
이밖에도 '보이스피싱 근절법(전기통신금융사기피해방지및피해금환급에관한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 '육아부담 완화법(아동수당법 일부개정법률안)' '신도시특별법(노후신도시재생지원에관한특별법안)' 등은 유야무야되고 있다.
■ 빠르게 가는 시간 = 문제는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21대 국회 임기는 이제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민생 법안뿐만 아니라 '전세사기피해 특별법' 등 처리가 시급한 법안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내년 4월 10일 치러지는 총선을 앞두고 금배지들의 관심은 '공천'으로 옮겨가고 있다. 민생을 위한다던 법안은 또다시 '폐기'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아이러니한 건 이런 와중에도 국회의원들은 새로운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5월 들어서 지난 3일간 총 35건의 법안이 발의됐다. 처리하겠다던 법안은 뒷전이면서 '일하는 척'이라도 하고 싶은 걸까. 일하지 않는 금배지의 농락에 서민의 시름만 깊어지고 있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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