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싱귤래리티 대학이 있다? “혁신가·창업가 탄생시키기 위해 씨앗 뿌립니다”[스테파니]

김하경 기자 2023. 5. 12.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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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스테파니 독자 여러분!
동아일보에서 스타트업 취재를 담당하고 있는 김하경 기자입니다.
(스테파니는 ‘스’타트업과 ‘테’크놀로지를 ‘파’헤쳐보‘니’의 준말입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계속 투자 시장 침체기라고는 하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최근 몇 년 새 한국에서 창업은 굉장히 활발히 이뤄지고 있죠. 창업 자체에 대한 인식도 크게 변화했지만, 액셀러레이터, 벤처캐피탈, 공공 및 민간 창업지원기관, 정부 등 스타트업 생태계의 다양한 주체들의 역할도 크게 기여한 것 같아요.

그런데 스타트업을 취재하면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창업을 준비할 때나 스타트업을 설립 후 성장시키는 과정에서는 생태계의 다양한 주체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창업하려는 마음 혹은 혁신가가 되겠다는 마음은 어떻게 해야 먹을 수 있는 걸까요?
(창업의 꿈을 단 한 번도 꿔본 적 없는 저로서는 정말 궁금한 지점이었습니다.)

물론 도전정신이 타고난 사람도 있을테고, 평소 갖고 있던 문제의식이나 자신이 하던 연구에서 구체화시킬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제자리에 머물러있을 수밖에 없을까요? 그래서, 한국에서 혁신가 양성을 위한 씨앗을 뿌리고 있다는 국내 한 비영리기관을 취재해봤습니다. ‘타이드인스티튜트’라는 곳인데요. 특히 미국의 ‘싱귤래리티 대학(Singularity University)’을 벤치마킹해 만들었다는 이곳 프로그램 ‘TEU(Tide Envision University)’은 어떻게 혁신을 독려하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 혁신가 길러내는 미국 싱귤래리티 대학

우선 싱귤래리티 대학은 어떤 곳일까요?
싱귤래리티 대학은 미래학자 겸 구글 이사였던 레이 커즈와일이 2008년 미국 실리콘밸리에 설립한 민간 창업 혁신 대학인데요. 최근 들어서는 스타트업 성장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본래는 과학과 기술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해결책을 연구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고 합니다. 나사(NASA)로부터 공간을, 구글 등에서 자본을 지원받아 10주 과정의 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 학생들이 거대한 문제를 발견하도록 독려하는 한편 급속도로 성장하는 기술에 대한 교육을 제공했다고 합니다.

국내에도 이 싱귤래리티 대학 출신 인물들이 있습니다. 그중 한 명이 한국 최초 우주인 후보였던 고산 에이팀벤처스 대표인데요. 본래 하버드대 케네디행정대학원에서 공부하기 위해 미국에 갔던 고 대표는 우연한 기회에 싱귤래리티 대학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싱귤래리티 대학에 간 첫날, ‘향후 10년 이내에 적어도 10억 명 이상에게 영향을 미치는 혁신가가 돼라. 이 세상의 기술들은 급격히 발전하고 있어서 해결 못 할 문제가 없다’는 메시지를 듣고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후 이곳에서 공상과학과 같은 기술들을 체험하고, 이런 기술로 비즈니스를 하는 혁신가들을 만나면서 ‘그 메시지가 가능하겠다’고 깨달았다고 하고요.

싱귤래리티 대학에서의 경험을 통해 ‘우리나라에 없는 것을 만들어가는 게 필요하겠다’고 생각한 고 대표는 귀국 후 2011년 한국에서 타이드인스티튜트를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2년 뒤인 2013년 싱귤래리티 대학처럼 10주 과정의 프로그램을 시작했고요. 이후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면밀한 설계 과정을 거쳐 2019년 지금의 TEU 프로그램을 런칭했다고 합니다.

● “혁신정신의 씨앗 뿌려 혁신가 육성”

TEU 프로그램의 취지는 창업가 육성에 있다기보다는, 꼭 창업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방법으로 인류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혁신가’를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건 단순히 어떤 강의를 수강하는 것으로는 어렵다고 판단했죠. 실제로 보고 느끼고 사용해보고 솔루션을 도출하고 실행에 옮겨야 진정한 가치를 느낄 수 있다는 뜻입니다.

TEU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각자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다. 타이드인스티튜트 제공.
그래서 TEU에서는 연사들을 초빙하는 한편 현장 견학을 통해 연사들의 비즈니스와 기술을 직접 눈으로 보도록 한다고 합니다. 참가자들은 팀을 꾸려 문제를 해결하는 일련의 과정도 경험하고요. 또 연사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비즈니스를 펼쳐나가는지 참가자들이 가늠해볼 수 있도록 계속 쌍방향 소통을 할 기회도 제공합니다. 그동안 초빙한 연사들은 미국 스탠포드대, 서울대, 카이스트 등의 대학 교수부터 스타트업 대표, SF작가, VC관계자, 그린피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큰 영향력을 갖거나 통찰력을 갖고 있는 인물들입니다. 현재는 의료와 바이오 분야에 특화된 TEU MED도 운영하고 있는데, 더 나아가 예술, 농업, 모빌리티 등 주제 중심으로 스핀오프 모델을 확대시켜나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타이드인스티튜트 관계자는 “계속 미래를 보여주고, 경험 기회를 제공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해 프로그램이 끝난 뒤에도 혁신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수 있도록 한다”며 “실제로 프로그램 참가자 중에는 본인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완전히 다른 분야로 커리어를 전환하기도 하고, 창업에 뛰어들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TEU 프로그램의 취지는 요즘처럼 투자를 통해 수익을 얻고자 하는 분위기와 반대되는 듯 보입니다.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이라면 추후 회수의 가능성을 기대해볼 수 있겠지만, 앞으로 어떤 길로 나아갈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어찌보면 무모한 투자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타이트인스티튜트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심마니가 산삼을 캐고 나면 다시 산삼 씨앗을 주변에 뿌리고 돌아온다고 합니다. 자신이 다시 그 자리에서 산삼을 캐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자녀가 발견할 거라고 기대해서도 아닙니다. 그다음 세대에 누군가가 수확할 것을 생각하고 뿌리는 것인데요. TEU도 마찬가지입니다. 산삼이 될지, 아니면 썩어서 없어질지 모르는 씨앗이지만 인류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혁신가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사람들 마음속에 이노베이터 정신을 심어놓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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