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으로 닦은 꽃길 걷는 '파국아저씨' 김병철

아이즈 ize 윤준호(칼럼니스트) 2023. 5. 12.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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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윤준호(칼럼니스트)

'닥터 차정숙', 사진제공=JTBC

배우 정성일은 올해 초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글로리'에서 '나이스한 개XX'로 주목받았다. 처음부터 하도영으로 그를 점찍은 김은숙 작가는 이 수식어 하나로 정성일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그리고, 또 한 명의 '개XX'가 회자되고 있다. 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의 주인공 서인호 역을 맡은 배우 김병철이다. 타이틀롤인 차정숙(엄정화)의 남편이자 대학 교수인 서인호, 병원에서는 존경받는 의사지만 집안에서는 가족들 위에 군림하는 가부장적인 가장이다. 

그는 왜 개XX가 됐을까? 의사 면허가 있지만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주부의 삶을 택한 차정숙은 급성간염으로 사경을 헤맨다. 간이식이 절실했고 서인호의 간이 이식에 적합하다는 소견을 듣게 된다. 하지만 서인호는 이런저런 핑계로 간이식을 망설였고, 결국 차정숙은 뇌사자의 간을 이식받은 후 회복한다. 정신이 돌아온 차정숙은 병상 옆에 있던 서인호를 가까이 부른 후 딱 한 마디 던진다. "개XX" 

이 장면은 1회 엔딩이었다. 또 한 명의 '국민 개XX'가 탄생하는 순간이었고, 4.9%로 시작한 '닥터 차정숙'은 이후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닥터 차정숙'을 선두에서 이끄는 이는 단연 엄정화다. 능수능란하게 코믹 연기까지 소화하며 시청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김병철이 그 뒤를 든든하게 받친다. '엄정화 보러 갔다가 김병철을 발견했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사진제공=넷플릭스

분명 '닥터 차정숙'에서 김병철가 맡은 서인호는 빌런, 즉 악역이다. 의대 동기생이었으나 가족을 위해 희생한 차정숙을 번번이 무시한다. 가업을 이어 의사가 된 아들에게는 엄하고, 미술을 하고 싶어하는 딸의 도구를 죄다 부순다. 그렇게 'FM' 같은 삶을 고수하는 서인호는 정작 첫사랑과 불륜을 저지른다. 게다가 버젓이 아이까지 낳아 기르며 두 집 살림을 한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전형이다.

서인호는 '밉지 않은 악역'은 아니다. 분명 밉다. 다만 매력이 있는 악역이다. 특유의 어설픔이 연민을 자아내기도 한다. 차정숙이 자고 있는 서인호의 뺨을 다짜고짜 올려붙이는 장면은 압권이다. 잠결에 뺨을 맞은 후 "혹시 나 따귀 때렸어? 왜?"라고 묻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터진다. 뒤늦게 "의사가 되겠다"며 레지던트 면접을 본 차정숙이 낙방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마치 피아노를 치듯 어깨춤을 추며 키보드를 두드리는 장면 역시 웃음 포인트다. 

이런 김병철을 가장 먼저 크게 중용한 이는 김은숙 작가다. 그가 '더 글로리'에서 하도영 역을 정성일에게 맡겼듯, 김 작가는 '도깨비'(2016)에서 간신 박중헌 역에 김병철을 섭외했다. 당시 무명에 가깝던 김병철은 그 캐릭터의 중요성과 무게감을 오롯이 짊어졌고, 이후 '파국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극 중 박중헌이 검은 입을 드러내며 "파국이다"라고 뱀 같이 웃는 장면이 강렬했던 덕분이다. 

따지고 보면 김 작가는 '도깨비'에 앞서 '태양의 후예'(2016)에서 김병철을 기용했다. 이후에도 '미스터 션샤인'에서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쯤되니 '김은숙의 페르소나'라는 말도 나왔다.

그런 김병철이 다시금 주목받은 작품은 '스카이캐슬'(2018)이다.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권위의식에 사로잡힌 로스쿨 교수 차민혁 역이 그의 몫이었다. 자녀의 교육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이들이 모인 스카이캐슬에 살며 아이들을 한데 모아 독서토론까지 하는 인물이다. 하버드 대학에 다니는 줄 알았던 딸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크게 분노하기도 한다. 

'닥터 차정숙', 사진제공=JTBC

'스카이캐슬'의 차민혁은 '닥터 차정숙'의 서인호와 꽤 닮았다. 일단 전문직을 가진 고학력자라는 점이 비슷하고, 자녀가 열심히 공부해 가업을 잇길 바라는 인물이다. 자녀 교육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자녀에게 상처를 주고, 전업 주부인 아내를 무시한다는 점도 유사하다. 차민혁이 결국 아내에게 컵라면 하나 얻어 먹기 힘든 인물로 전락하듯, 서인호 역시 경력단절을 딛고 다시금 의사의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 아내 옆에서 좌절감을 맛본다. 여기에 서인호라는 캐릭터에는 웃음이 몇 스푼 더 들어간다. 이런 코믹 코드는 서인호를 향한 시청자들의 반감을 줄이는 동시에 '닥터 차정숙'의 인기를 견인하는 요인이 된다. 

이런 부분을 의식한 듯 김병철은 '닥터 차정숙'의 제작발표회에서 "'스카이캐슬' 때 욕을 먹었는데 그때는 그래도 가정생활과 부인에게 나름 충실했던 기억이 난다"면서 "이번엔 첫사랑이 명세빈, 현재 부인이 엄정화다. 이런 상황만으로도 그때와는 다른 양상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설정들을 시청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욕을 너무 많이 먹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서인호의 악행이 거듭될수록, 그리고 그를 향한 차정숙의 복수의 칼날이 날카로워질수록 '닥터 차정숙'의 시청률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게다가 16.2%를 기록한 8회 말미에서는 서인호의 불륜으로 인해 차정숙이 흑화(黑化)되는 모습이 그려져 기대감이 커졌다. 

놀랍게도 이처럼 유부남 역할을 천연덕스럽게 소화하고 있는 김병철은 미혼이다. 몇몇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결혼할 걸로 오해 받는 배우'로 그를 꼽는 게시물이 올라오곤 한다. 얼마 전 SBS 예능 '돌싱포맨'에 출연했지만 그는 '돌싱'이 아니라 그냥 싱글이다. 김병철은 "언젠가는 (결혼을) 꼭 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 '닥터 차정숙'이 끝날 때쯤이면 더 많은 여성 시청자들이 김병철의 매력에서 헤엄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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