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게이츠‧핑 믿고 200억 CB 투자했는데 주가 40% 급락…금융사들 물렸다

정해용 기자 2023. 5. 12.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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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8월, 전환가액 3만4000원대로 CB발행
주가는 9개월만에 40% 하락
전환가액 조정 조항없고 이자도 안 받는 조건
미래에셋· JB·BNK 등 주요 기관투자자 자금 묶여

미래에셋증권 등 주요 기관투자자가 골프 의류 업체의 전환사채(CB)에 200억원을 투자했지만, 주가가 급락해 CB를 주식으로 전환하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CB는 회사채와 주식의 성격을 모두 가진 채권이다. 발행 후 일정 기한이 지나면 미리 정한 가격(전환 가액)에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다.

지난해 8월 CB 투자자들은 1주당 3만4000원이 넘는 가격에 주식 전환할 수 있는 조건으로 투자했지만 9개월 만에 주가가 1만9000원대까지 내렸다. 만기인 2027년 8월까지 이자를 한 푼도 안 받는 조건으로 발행됐고, 주가가 하락해도 전환가액 조정(리픽싱)을 하지 않는 조건이다. 이 때문에 주가가 회복되지 않으면 CB 투자자들은 조기상환청구권(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는 내년 8월까지 이자를 전혀 받지 못하고 자금이 묶이는 처지가 된다.

코로나19 확산 시기에 젊은 층을 중심으로 골프 열풍이 불면서 주가가 급등하자 기업이 유리한 조건에 CB를 발행한 것으로, 기관투자자들은 주가가 이렇게 빨리 하락할 줄은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걸그룹 트와이스를 모델로 세운 크리스에프앤씨의 골프복 파리게이츠. / 사진 = 크리스에프앤씨 제공

12일 한국거래소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파리게이츠, 핑 등을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판매하는 골프의류 업체 크리스에프앤씨가 지난해 8월 23일 200억원 규모로 발행한 무기명식 이권부 무보증 사모 전환사채의 주식 전환 기한이 오는 8월 23일부터 시작된다. 1주당 3만4073원에 신주를 받을 수 있는 CB다. 그러나 CB 발행 당시 3만원대였던 주가는 현재 1만9000원대까지 하락해 CB 투자자들은 단기간 주가가 급등하지 않으면 전환권 행사가 불가능하다.

CB 발행일인 지난해 8월 23일 종가는 3만2700원이었는데 지난 11일 종가는 1만9300원까지 내렸다. 9개월 만에 40.9%(1만3400원) 하락했다. 보통 CB 투자자는 만기까지 채권을 보유하기보다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시기가 오면 시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해 차익을 얻는 투자를 한다. 그러나 크리스에프앤씨의 주가가 단기간 급락하면서 1만9000원짜리 주식이 되자 3만4000원이 넘는 전환가액으로 주식을 바꾸면 오히려 손해가 되는 상황이 됐다.

기업들은 이런 상황이 발생해 CB 투자자들이 손실을 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주가가 하락하면 전환가액도 함께 낮춰주는 리픽싱 조항을 CB 발행 당시 추가하지만 크리스에프앤씨 CB에는 리픽싱 조항도 없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당시 골프 열풍이 있었고 호황이었기에 기업에 유리한 조건으로 CB가 발행된 것으로 안다”라면서 “리픽싱 조항이 없고 표면 이자도 전혀 받지 않는 조건이었는데도 다수의 기관이 CB를 받아 갔다”라고 말했다.

이 CB에는 미래에셋증권이 전체 발행의 10% 규모인 20억원을 투자했다. 또 JB금융지주의 제이비 메자닌 신기술사업투자조합(50억원), NH헤지자산운용(30억원), BNK투자증권(BNK금융지주·10억원), 수성자산운용(10억원) 등이 투자했다.

CB 만기는 2027년 8월 23일이지만 2024년 8월 23일부터는 조기상환청구(풋옵션)를 할 수 있다. 주가가 계속 낮은 상태를 유지해 CB 투자자가 신주로 전환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면 이때까지 기다려 조기상환을 청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픽=정서희

크리스에프앤씨에 대한 증권가의 눈높이는 낮아졌다. 지난 3월 유진투자증권은 이 회사에 대한 목표주가를 3만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지난해 9월 목표가(4만4000원)보다 31.8% 낮은 수준이다. 지난해 크리스에프앤씨의 매출액은 3809억원으로 전년(3759억원) 보다 1%가량 늘어나는 데 그쳤다. 그리고 영업이익은 784억8751만원으로 전년 871억324만원보다 9.8%(86억1573만원) 감소했다. 유진투자증권은 올해 영업이익은 지난해보다 7.7% 늘어난 845억원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해니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핑과 파리게이츠 2개의 브랜드가 각각 매출액이 1000억원을 넘고 마스터바니 등 다른 골프웨어 브랜드까지 합치면 4000억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리는 회사”라며 “국내에서 이 정도 매출을 내는 곳은 크리스에프앤씨밖에 없지만, 지금은 의류산업이 시장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주가도 코로나 시기에 단기 과열됐던 것이 되돌려진 상황이라 앞으로의 시장 상황을 지켜봐야 주가 방향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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