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농정]② 기업 배척하는 K-농업…공허한 농식품부의 ‘혁신 계획’
농촌 소멸하는데, 기업 참여는 ‘No’
농업 기술 혁신에 기업 역할은 ‘필수’
LG그룹의 IT 서비스를 담당하는 LG CNS는 지난 2016년 3800억원을 들여 새만금에 대규모 ‘스마트 바이오파크’ 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여의도 면적 4분의 1 규모인 76만㎡에 달하는 바이오파크에 26만㎡ 면적의 스마트팜 단지를 조성해 토마토나 파프리카 등 시설 원예 작물을 재배할 예정이었다.
LG CNS는 농업을 미래 먹거리로 봤다. 농업 분야 디지털 혁신으로 생산성을 올리고, 기후변화를 대비한 스마트 농법을 개발해 한국의 식량 안보를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특히 스마트팜 운영을 통해 관련 기자재에 대한 기술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 봤다. 농작물보다는 스마트팜 관련 기자재를 해외 업체에 판매하는 게 핵심이었다. 자신들이 생산한 농작물이 혹여 국내 시장 수급에 영향을 줄까 싶어 생산 작물은 전량 수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LG CNS는 새만금 스마트팜 프로젝트를 발표 반년 만에 철회했다. 기업의 농업 진출에 대한 농민단체들의 반발을 버티지 못했다. 농민단체들은 헌법 상 ‘경자유전’ 원칙을 강조하며, 기업이 농업에 진출할 경우 기업은 대지주가 되고 농민은 농업노동자가 돼 사실상 소작농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LG CNS는 자신들의 사업 계획과 농가와의 상생 전략 등을 소개하는 설명회를 진행하려고 했지만, 이조차 농민단체의 반발로 무산됐다. 업계에서는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의 중재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농민 눈치보기에 급급한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었다.
이후 기업의 농업 도전은 맥이 끊겼다. 기업이 농업에 도전했던 게 LG CNS가 처음은 아니다. LG CNS에 앞서선 동부팜한농이 경기 화성의 간척지에 유리온실 사업을 하려다 반대에 부딪혔다. 동부팜한농도 300억원의 손실을 입고 사업을 접었다.
2022년 LG CNS는 전남 나주에 54만㎡ 면적의 스마트팜 사업을 농식품부 전남도와 함께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얼핏 보면 6년 전 접은 새만금 사업과 비슷해 보이지만 사업의 내용과 규모는 전혀 다르다. 2016년 새만금 사업은 스마트팜 기술 확보와 함께 직접 시설까지 운영한다는 측면에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결합하는 사업인 반면, 2022년 나주 사업은 농사 과정을 통합 관리하는 플랫폼을 개발하는 소프트웨어 사업이다. 총 사업비 규모도 100분의 1수준으로 알려졌다.
◇ ‘애그테크’ 경쟁 치열한데…한국 기업은 ‘농사 짓지 말고, 기술만 개발’
12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1년 대한민국의 곡물 자급률은 20.9% 수준이다. 농사를 짓기 쉬운 쌀은 수요보다 많은 양이 생산되고 있지만, 콩·밀 등 다른 곡물의 자급률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식량 안보를 고려했을 때 농업의 생산 효율화는 시급한 과제다. 특히 배추, 무, 양파, 마늘, 대파 등 각종 채소는 수확기마다 수요와 공급이 널뛰기를 하면서 가격 폭등과 폭락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고립된 개별 농가가 재배 작물을 스스로 결정하면서 발생하는 비효율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업에 도입되는 신기술이 ‘애그테크’다. 기상 예측을 시작으로 에너지와 수자원 관리, 농작물 생육 촉진과 시장의 수급 전망까지 모든 것을 총망라하는 기술이다.
이 같은 애그테크의 개발 주체는 기업이 될 수밖에 없다. 빅데이터를 분석하고 AI를 개발하는 역량을 개별 농가에 기대하는 것은 불가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선 LG CNS와 대동을 비롯해 스타트업이 플랫폼 기반 애그테크 서비스를 개발 중이지만, 한계가 있다. 바로 데이터 확보다.
현재 국내 기업은 중앙 정부나 지자체가 추진하는 스마트팜 사업에 기술 제공자로 참여하는 수준까지만 허용된다. 농업법인이 아닌 일반 기업이 농사를 짓는 것은 불법이다. 기업이 농지를 소유하는 것도 불법인 상황에서 농지를 미래형으로 개발하는 것은 불가능의 영역에 속한다.
기업의 농업 참여가 제한된 것은 현행법이 농업의 주체를 개인인 농민과 농민이 참여하는 농업법인으로만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도는 봉건시대 ‘지주-소작농’ 구조를 철폐하고 ‘자작농’ 체제로 전환한 것으로 농업 개혁의 결과다. 하지만 과거 개혁의 성과는 지금,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혁신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
농민단체들은 기업의 농업 진출에 상당한 경계심을 보이고 있다. 기업이 농축산업에 진출하면 수직계열화가 이뤄지고, 농민들은 소작농이나 농업노동자로 전락할 것이란 게 이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오늘날 농촌의 고령화한 인구 구조와 열악한 수입원을 고려하면 농민단체의 주장은 공허할 뿐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농림어업조사 결과에 따르면 농촌 인구의 절반은 65세 이상 고령자였다. 청년의 유입이 사실상 끊긴 상황이다.
수입 상황도 열악하다. 전체 농가의 65.1%가 농축산물 판매 수입이 1000만원이 안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가 지급하는 직불금 등의 지원이 없다면 사실상 생계 유지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농촌 현장과 농업 전문가들은 “기업의 농업 참여를 막는 것은 자해(自害) 행위”라고 지적하는 데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다.
◇ 기업 투자 없이 청년농 3만명 육성…“비현실적”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10월 청년농 육성과 미래 산업화 청사진을 제시했다. 농식품부는 ‘제1차 후계·청년농 육성 기본계획’을 통해 2027년까지 청년농 3만명을 육성하고, 농업의 미래 산업화를 선도하겠다고 밝혔다.
초고령화한 농촌의 청년농 비중을 2040년까지 1%대에서 10%까지 늘리겠다는 계획도 함께 발표했다. 이를 위해 농지 취득 지원 규모를 확대하고, 정착지원사업 선정 규모를 확대하고, 지원금도 늘릴 방침이라고 농식품부는 밝혔다.
농촌의 인구 구조를 변화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이 담겨있지만 정책 효과는 불투명하다. 당시 정부가 내놓은 구체적인 안은 정착지원금을 100만원에서 110만원으로 증액하고, 임대형 스마트팜과 임대주택단지를 신규로 조성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한 농업연구기관의 전문가는 “정착지원금을 10만원 더 준다고 해서 청년들이 농업에 관심을 가질지 모르겠다”며 “솔직히 가용한 예산 범위 내에서 찔끔 증액한 게 전부이지 않느냐”라고 꼬집었다. 임대형 스마트팜과 임대주택단지 신규 조성안도 농가와 농막에 대한 규제를 감안하면 청년들의 눈높이를 충족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동아이돌봄센터’를 지어 귀농 신혼부부의 육아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구상도 입지와 보육교사 확보라는 측면을 고려하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농식품부는 최근엔 빈집정비 활성화 대책의 일환으로 이마트와 함께 ‘빈집 재생 프로젝트’를 추진해 전남 해남에 ‘어린이 도서관’을 건설하는 계획을 구상 중인데, “이용할 사람이 없는 곳에 도서관만 짓는 전시성 행정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이마트 내부에서도 나오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미래 농업 구상에 기업의 역할이 빠져 있는 것을 문제점으로 꼬집는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 슬로건은 ‘민간 주도 성장’이지만, 유독 농업 분야에서만 ‘규제 개혁을 통한 민간 투자 활성화’ 방안에 대한 언급이 없는 상황이다.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에서도 농업 관련 규제 개혁에 대해선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외국에선 곡물 메이저를 중심으로 미래를 대비한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미국을 대표하는 농업기업인 몬산토는 데이터 관리부터 육종 개발, 농법 R&D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에선 후지쯔와 오릭스 등이 농업에 진출하면서 지역사회에 활력을 불어 넣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기업의 참여가 제한되고 있고, 농정 정책은 ‘보호 정책’ 편향성을 보이고 있다. 농업의 구조적인 변화를 추진하기 위해선 논의의 방향을 ‘보호’에서 ‘혁신’으로 전환하고, 민간 기업의 자본 유입을 원활히 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제언이다.
김태연 단국대 환경자원경제학과 교수는 “모든 산업 분야에 기업이 들어와 있는데, 유일하게 농업 분야만 기업을 배척하고 있다”며 “고령화로 인력이 없는 농촌 상황과 낙후한 환경을 고려했을 때, 기업의 농업 참여는 오히려 장려하고 권장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스마트팜 등 디지털 기술이 중요해지고, 글로벌 시장에서의 K-농산물의 경쟁력을 생각하면 지금의 소규모 농업 구조는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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