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열의 산썰(山說)] 7.이끼폭포의 진경과 ‘눈물’ 사이

최동열 2023. 5. 12.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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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 이끼폭포. 초록 이끼로 뒤덮인 바위 벽면을 타고 흰 포말을 일으키는 물줄기가 쉼 없이 흘러내리고 있다. 가운데 동공이 용소굴이다.

■삼척시 도계읍 무건리 ‘이끼폭포’

-육백산 자락 초록빛 이끼 세상
-‘용소’, ‘용소굴’ 등 신비로움 더해

상단 이끼폭포. 흰 포말과 초록 이끼의 절묘한 조화가 눈부신 선경을 연출한다.사진제공/삼척시

‘이끼폭포’라고 불리는 비경이 강원도 삼척에 있다. 삼척시 도계읍 무건리, 육백산(해발 1244m) 자락의 깊디깊은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는 명소다. 산이 많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강원도지만, 이곳은 말 그대로 심심산골이다.

비경이라는 표현 그대로 폭포는 신비로움 그 자체다. 하단과 상단, 2단으로 구성된 폭포의 전면과 그 주변은 모두 녹색 이끼로 뒤덮여 있다. 험산의 깊은 협곡 하나가 통째로 선명한 초록빛으로 덮여 있는 이끼 세상. 이끼폭포는 마치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외계 공간을 현실 세계에서 목도하듯 신비하기 이를 데 없는 황홀경을 연출한다. 초록빛 이끼 벽면을 타고 흰 포말로 부서지는 물줄기가 쉴 새 없이 흘러내리고, 몇 줄기 햇살이 깊은 삼림을 뚫고 들어와 어둑한 이끼 계곡을 밝히는 광경을 처음 구경하게 되면, 사람들은 원시 태고의 공간에 들어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지기 십상이다.

하단 폭포만으로도 감탄사를 흘리기에 충분하지만, 비경의 절정은 상단에 숨어 있다. 상단 폭포는 하단 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깊은데, 주변이 모두 깎아지른 협곡이다. 한 줄기 빛조차 들어오기 어려운 수십 길 협곡 안쪽에 ‘용소’라고 불리는 연푸르죽죽한 묘한 물빛의 소(沼)가 자리 잡고 있고, 이끼로 치장한 폭포 벽면에는 ‘용소굴’이라는 깊이를 가늠키 어려운 바위굴도 숨어 있다. 비가 내린 뒤에는 용소굴 옆으로 우렁찬 폭포 물줄기까지 쏟아져 내리고, 동굴 속에서는 물안개까지 피어 신비감을 더한다. 소싯적에 밤새워 읽던 무협지에 자주 등장하는 은둔 도인의 세상이 이런 곳이 아닌가 싶다.

이끼 폭포를 품고 있는 육백산(六百山)은 산 정상이 평평해 조 600석을 뿌려도 될 만하다고 해 얻은 이름인데, 이끼폭포는 육백산 능선에서 돌아나온 두리봉과 삿갓봉 줄기 사이 깎아지른 협곡에 자리 잡고 있다. 진초록 이끼가 더욱 짙어지는 여름철에 협곡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원한 바람도 일품이다.

■봉준호 감독 영화 ‘옥자’ 촬영 명소

-왕복 11km, 임도 따라 한나절 등산
-화전(火田)의 추억 깃든 곳

하단 이끼폭포와 상단 폭포로 오르는 탐방 계단.사진제공/삼척시

이끼폭포 탐방 산행은 도계읍 산기길 석회 광산을 지나 무건리 소재말에서 시작된다. 산행 거리는 편도 5.5㎞, 왕복 11㎞이니 30리 조금 안 되는 거리이다.

육백산이 해발 1244m라고 하니 엄두를 내기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대부분의 폭포가 그러하듯이 ‘이끼폭포’는 산 정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육백산 자락의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어 그리 힘든 코스는 아니다. 예전에는 화전민 수십 가구가 300여 명의 마을을 이루고 살았기 때문에 ‘무건 분교’라는 학교까지 있었고, 지금도 몇 가구가 산촌 소득에 의지해 살고 있는 곳이다. 봉준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옥자’의 촬영 무대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까. 산골 소녀의 모험기를 다룬 영화에서 옥자와 미자가 뛰놀던 폭포 계곡이 바로 무건리 이끼폭포이다. 폭포 주변 언덕에는 옛 학교 터가 남아있다.

자동차 통행이 가능할 정도로 잘 갖춰진 임도를 따라 등산하기 때문에 한나절 정도만 시간을 낸다면 폭포를 만날 수 있다. 물론 임도 내 자동차 통행은 통제되기 때문에 등산객들은 예외 없이 모두 발품을 팔아야 한다. 자동차 통행이 가능하다고 해도 이끼폭포 탐방로에 차를 몰고 들어서는 것은 현지 주민이 아닌 이상 자연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등산로는 처음 산길 몇 굽이를 돌 때까지 500여m는 다소 경사가 있지만, 그 뒤로는 대체로 무난한 임도 산길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끼폭포를 탐방하려면 폭포가 있는 협곡 근처에 다다라 급경사 비탈길을 조심스럽게 내려간 뒤 하단 폭포를 구경하고, 다시 7∼8m 높이 폭포 주변의 벽면을 밧줄을 붙잡고 아슬아슬 타고 오르는 위험한 고행을 감내해야 했지만, 지금은 나무계단 탐방로와 데크가 조성돼 있어 이동이 한결 편해졌다.

■유명세 더하면서 이끼 훼손 수난

-탐방객 몰리면서 ‘이끼의 눈물’ 심화
-예방 위해 나무계단 생태탐방로 조성

하단 이끼폭포의 최근 모습. 예전에 비해 이끼가 많이 줄어들었다.

안타까운 것은 이끼폭포가 입소문을 타고 유명세를 더하면서 수난의 현장이 됐다는 것이다. 나무계단 탐방로를 만들고, 데크 전망대를 조성한 것도 이끼폭포 훼손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탐방객들이 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이끼 바위 벽면을 타고 오르고, 상단 협곡에 올라선 뒤에도 이끼폭포의 신비경과 용소, 용소굴 등을 더 가까이에서 관찰하기 위해 협곡 속 개울의 바위를 여기저기 징검다리 건너듯 뛰어다니면서 이끼 훼손이 날로 심화됐다.

폭포 주변의 환경 훼손과 하류 상수원보호구역의 수질 저해, 추락 사고 등의 여러 문제가 제기되자 결국 삼척국유림관리소와 삼척시에서 2009년부터 2012년까지 3년간 이끼폭포 일대를 산림정화 보호구역으로 지정, 입산을 전면 통제하기도 했다. 이끼폭포에 휴식기를 주는 일종의 자연 휴식년제를 실시한 것이다. 그런데도 통제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자, 관리인을 두고 무단 입산 단속을 한층 강화했고, 결국에는 삼척시가 생태 탐방로 조성 공사를 실시, 2017년에 계단과 데크 등의 시설을 설치한 것이다. 데크 전망대에는 지금도 ‘훼손된 이끼 복원을 위해 들어가거나 밟지 마시고, 눈과 마음으로 사랑해 주세요’라는 안내판이 붙어있다.

탐방로 끝단에서 바라본 상단 이끼폭포의 최근 모습. 용소굴과 용소 폭포 등은 협곡의 바위 절벽에 가려 관찰이 어렵다.

이끼폭포는 지난 2020년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이 잇따라 한반도를 통과하면서 폭우를 뿌렸을 때도 바위 벽면의 이끼 상당 부분이 쓸려 나가는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자연 스스로의 치유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경이로웠다. 이끼 생성에 최적인 협곡의 독특한 환경을 거름 삼아 바위의 이끼 포자가 살아나더니 협곡과 폭포는 지금 초록빛 세상으로 다시 빠르게 회복 중이다.

하지만 자연재난보다 무서운 것은 역시 인간이다. 더 가까이에서 폭포를 관찰하고, 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관리인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나무데크 울타리를 타고 넘는 일탈 행위가 자행된다면, 자연이 제아무리 용을 써도 이끼폭포 회복과 보전은 희망사항이 될 뿐이다.

■훼손 예방과 탐방 만족도 높이는 지혜 필요

이끼폭포 탐방도.

현재 조성된 이끼폭포의 나무데크 탐방로와 전망대는 하단 폭포의 전경을 관찰하는 데는 안성맞춤이지만, 상단 폭포는 일부만 감상이 가능해 탐방객 입장에서는 아쉬운 대목이다. 나무계단의 오르막 끝단까지 이동해도 비경의 절정인 상단 폭포의 진경은 일부 맛보기 감상만 가능한 정도다. 용소와 용소굴을 비롯해 상단 이끼폭포가 자랑하는 신비로운 풍광은 바위 협곡의 벽면에 가려져 있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는 탐방객들의 관찰 수요를 충족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상단 폭포의 진경을 눈과 카메라에 담기 위해 탐방객이 관리인이 없을 때 울타리를 타고 넘어가는 일탈 상황이 계속될 수 있다고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뉴스 보도를 보니 출입이 금지된 곳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다가 등산화 밑창에 의해 이끼가 짓뭉개지는 일이 실제 발생하기도 했다.

따라서 탐방객들의 ‘무모한 도전’을 제어하고, 이끼 폭포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상단 폭포 탐방 루트를 확충하는 등의 새로운 설계를 통해 관찰 만족도를 높이는 노력을 병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끼폭포는 꼭꼭 숨겨 두고픈 초록 세상이지만, 영상과 사진이 빛의 속도로 전파되는 현실 세계에서 이미 유명세를 탔는데 어찌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이끼 훼손을 막으려는 지혜와 신비경을 더 가까이에서 보고 담으려는 인간의 욕망 사이에서 고민이 깊어지는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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