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화형식까지 해놓고 축소 보도…북한 대응이 애매한 이유는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과 미국의 확장억제 조치를 강화한 '워싱턴 선언' 채택 이후 북한 내에서는 다양한 반발 행동들이 이어졌습니다.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보면, 4월 29일(이하 보도일 기준)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입장 발표를 시작으로 30일 "위험천만한 핵전쟁 행각의 진상을 해부한다"는 조선중앙통신 논평이 게재됐고, 5월 3일에는 청년 학생들의 복수결의모임이 보도됐습니다. 이 복수결의모임에서는 한미 정상 모형에 대한 화형식이 진행됐습니다.
5월 4일에는 노동계급과 직맹원들의 성토 모임, 여맹 일꾼들과 여맹원들의 복수결의모임이 보도됐고, 5일에는 농업근로자들의 반공화국 대결 책동 규탄대회가 보도됐습니다. 또, 8일에는 각 도, 시, 군 근로단체 조직들의 복수결의모임이 보도됐습니다. 각 직능단체별로 돌아가며 규탄대회를 하면서 한미 정상회담과 워싱턴선언에 대한 반발의 뜻을 표출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조선중앙통신은 '고조되는 비난과 조소, 심각한 우려를 몰아 온 괴뢰 역도의 구걸행각'이라는 글을 5월 1일부터 6일까지 6번에 걸쳐 게재하면서 한미 정상회담을 비난했습니다. 노동신문도 이 가운데 몇 편의 글을 지면에 게재하기도 했습니다.
각종 규탄대회 한편으로는 파장 축소?
이상의 내용들로 보면, 북한은 한미 정상회담과 워싱턴선언을 계기로 대대적인 반미 반남 분위기를 조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주민들을 동원해 각종 규탄대회를 개최하면서 내부 결속과 함께 대외적인 메시지도 발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소 희한한 것은 이런 분위기와는 다르게, 한편으로는 대미 대남 규탄 분위기의 파장을 축소하려는 듯한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북한은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각 직능단체들의 규탄대회를 보도하면서도 사진 한 장 싣지 않았습니다. 한미 정상 모형에 대한 화형식도 글로만 보도했습니다. 기사에 사진이 첨부됐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독자에게 주는 느낌이 다르다는 것은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실 것입니다. 일부러 보도를 소극적으로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북한 조선중앙TV의 보도는 더욱 의아합니다.
북한 내부에서 이렇게 각종 반미 반남 집회가 이어졌는데, 조선중앙TV가 이를 보도한 것은 5월 4일 '17시 보도'가 유일했습니다. 당시 '17시 보도'에서는 청년 학생들의 복수결의모임(한미 정상 모형 화형식)과 노동계급과 직맹원들의 성토 모임, 여맹 일꾼들과 여맹원들의 복수결의모임이 보도됐는데, 사진이나 동영상 없이 아나운서가 간략히 기사 내용만을 읽는 형태였습니다.
참고로 북한 조선중앙TV는 17시와 20시, 22시 무렵 하루 세 차례의 '보도'(뉴스)를 하는데, '20시 보도'가 우리 식의 저녁 종합뉴스입니다. 중요한 뉴스는 보통 '17시 보도'와 '20시 보도'에서 모두 처리되는데, 북한이 저녁 종합뉴스인 '20시 보도'가 아닌 '17시 보도'에서만 기사를 처리했다는 것은 보도의 비중을 낮췄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북한 내에서 거국적인 반미 반남 규탄대회가 진행됐는데 조선중앙TV는 이를 축소 보도한 셈입니다.
수위 조절?… 그렇게 보기는 어려워
언뜻 생각해 보면, 북한이 반미 반남 규탄대회를 진행하면서도 수위조절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대외적으로 반발의 뜻을 보이면서도 사진이나 동영상 공개를 자제하고 TV 보도를 축소함으로써 반발 수위를 조절하는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수위조절로 보기 어려운 대목이 있습니다. 5월 3일 보도된 한미 정상 모형에 대한 화형식입니다. 북한 보도에 따르면, 청년 학생들의 복수결의모임이 신천박물관에서 진행되었고, 참가자들은 '미국의 늙다리 전쟁 괴수와 특등하수인인 괴뢰 역도'의 '허수아비를 불살라버리는 화형식을 단행'했습니다.
북한이 남한 대통령 모형에 대한 화형식을 진행한 것은 2012년 이명박 대통령 사례 이후 11년 만입니다. 북한이 대남 비난을 하는 것이 한두 번은 아니지만, 상대국 정상 모형에 대한 화형식은 극도의 적대 의식을 표현하는 행위입니다. 북한으로서는 가장 강력한 비난과 혐오의 뜻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인데, 이런 행동을 하면서 수위 조절을 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수위 조절을 하려 했다면 화형식을 아예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고, 화형식과 같은 극도의 비난행위까지 했다면 사진과 동영상 등을 총동원해 대대적으로 반미 반남 분위기를 확산시키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한편으로는 극도의 반발 모습을 보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파장을 축소하려는 듯한 애매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와 관련해 "수위 조절이라고 판단하기 어렵다"며 "어떤 의미가 있는지 현재로서는 판단하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사진=연합뉴스)
안정식 북한전문기자cs7922@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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