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이런 관심 처음" 권도형 재판, 몬테네그로선 '세기의 이벤트'

신창용 2023. 5. 12.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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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 수색 후 휴대전화·노트북 반입 금지…현지기자들 "재판 취재 신청도 처음"
간이 인터뷰 '수락'했던 현지 변호사는 재판 후 다른 문으로 빠져나가
'소국' 몬테네그로, '한미 쟁탈전' 송환국 결정 '뇌관' 떠안은 상황
법원 향하는 권도형 대표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포드고리차[몬테네그로]=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가상화폐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인 권도형(32) 테라폼랩스 대표가 해외 도피 11개월 만에 붙잡힌 몬테네그로는 인구 약 62만명의 소국이다.

몬테네그로라는 국가명이 우리에게 생소한 것만큼이나, 몬테네그로는 권 대표 체포 이후 자국에 쏟아진 국제적인 관심이 생소한 듯했다.

몬테네그로에서 위조 여권을 사용한 혐의로 체포돼 기소된 권 대표와 그의 측근 한모 씨에 대한 첫 재판이 11일 낮 12시 30분(현지시간) 수도 포드고리차 지방법원에서 열렸다.

재판 시작 30분을 앞두고 법원 정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자 경비원들이 금속 탐지기로 가방은 물론 온몸을 수색했다.

재판을 녹음하거나 촬영해선 안 된다는 공지는 미리 전달받은 터라 카메라, 휴대전화 반입을 막은 것은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녹음·촬영과는 무관한 노트북도 불허했다. 바지 주머니에 있는 담배도 법정에선 피울 수 없다며 압수했다.

오직 메모장과 필기구만 지참할 수 있었다. 대기 장소로 가니 취재 필수장비인 노트북을 빼앗긴 몬테네그로 현지 기자들이 불만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동안 자유롭게 재판을 취재해왔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했다.

현지 기자들은 법원에서 재판 취재 신청을 받은 것도 처음 본다고 했다. 몬테네그로 법원은 지난 5일 홈페이지를 통해 권도형 재판과 관련한 국내외 언론사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며 취재 신청 안내문을 띄웠다.

법원에서 요구한 양식대로 정보를 기재해서 제출하면 심사 후 취재 허가를 내렸다. 한국 언론사 중에선 유일하게 연합뉴스가 취재 허가를 받았다.

몬테네그로 일간지 '비예스티'의 옐레나 요바노비치 기자는 "법원도 재판에 이렇게 큰 관심을 받아본 건 처음인 모양"이라면서 "어떻게 해야 할 줄 모르니까, 이런 일(노트북 반입 불허)이 생기는 것 같다"며 메모장과 볼펜을 불만스럽게 흔들어 보였다.

재판이 열린 공간은 직사각형이 아닌 마름모꼴의 독특한 구조였다. 가장 높은 상단에 판사가 앉고 양 날개 쪽에 검사와 피고인이 착석하는 구조였다. 그 아래에는 방청석이 마련돼 있었다.

재판은 이바나 베치치 판사 단독으로 진행됐다. 판사가 입장할 때 기립 요청이 없는 것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고, 법원 미디어 담당자가 판사 맨 오른쪽에 앉아서 재판을 지켜보는 것도 이채로웠다.

검사를 시작으로 해 변호사와 영어 통역사, 판사가 차례대로 들어왔고, 마지막에 권 대표와 한씨가 경찰관에게 이끌려 법정으로 들어섰다. 둘이 함께 앉지 못하도록 경찰관 2명이 둘 사이에 띄엄띄엄 앉았다.

포드고리차 지방법원 정문 앞에서 대기하는 취재진들 (포드고리차[몬테네그로]=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11일(현지시간)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 지방법원에서 열린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의 재판이 끝난 뒤 취재진들이 법원 정문 앞에서 권 대표의 변호인을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다. 2023.05.11 changyong@yna.co.kr

첫 공개 재판이었고, 먼저 들어온 한씨는 방청석에 앉은 취재진을 보고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뒤따라 들어온 권 대표는 정면을 응시한 채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착석했다.

한씨는 위아래 모두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 고유의 줄무늬가 선명한 트레이닝복, 권 대표 역시 스포츠 브랜드인 '언더아머' 바람막이 점퍼와 운동복 바지를 입고 있었다. 둘 다 상하의 모두 검은색이었다.

둘은 위조 여권 혐의에 대해 무죄를 주장하며 보석을 청구했다. 보석금으로 내건 40만 유로(약 5억8천만원)를 놓고 베치치 판사는 둘의 재산 내역을 구체적으로 물었다.

권 대표는 아내가 보석금을 낼 것이라고 설명한 뒤 서울에 소유한 아파트가 300만 달러(약 40억원) 정도 된다고 밝혔지만, 다른 자산에 대해서는 언론 앞에서 밝히기 어렵다며 끝끝내 입을 다물었다.

판사의 눈치를 보던 권 대표의 변호인인 브란코 안젤리치는 보석이 허가될 경우 권 대표 등은 자신이 속한 법인이 소유한 아파트에서 지내게 될 것이라며 자신의 커리어가 걸린 문제이기에 의뢰인들이 도주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치치 판사가 다음 재판은 6월 16일에 열린다고 예고하며 약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재판은 마무리됐다. 몬테네그로 방송사인 '비예스티 TV' 기자가 안젤리치 변호사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다.

안젤리치 변호사는 이를 수락하며 곧 가겠다고 했지만, 취재진이 법원 정문 앞에서 한참을 대기해도 그는 나오지 않았다. 취재진이 확인했을 때는 이미 옆문을 통해 빠져나간 뒤였다.

몬테네그로 현지 취재진은 안젤리치 변호사가 취재 요청에 응하지 않은 지 오래됐다며 왜 그가 언론을 계속 피하는지 그 영문을 알 수 없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오히려 인터뷰를 '당한' 쪽은 필자였다. 재판을 함께 방청한 몬테네그로 현지 방송사들은 현지 출장온 연합뉴스 기자에게 왜 한국 미디어가 이 사건에 관심을 갖는지, 권 대표가 몬테네그로에서 붙잡힌 걸 한국 국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질문했다.

권 대표는 위조 여권 사건에 대한 몬테네그로 사법 절차가 마무리되면 이제 송환 절차를 밟게 된다. 현재 한국과 미국이 권 대표를 놓고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권 대표를 어느 국가로 보낼지는 몬테네그로 법원의 판단에 전적으로 달렸다.

권 대표에 대한 첫 재판을 두고 뒤늦게 '국제 표준'을 공부해 준비한 듯한 몬테네그로 법원이 과연 송환국 결정과 관련한 이 민감한 '국제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살짝 걱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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