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 따르는 사회의 함정… 진실 귀닫고 편향만 키운다[북리뷰]
토드 로즈 지음│노정태 옮김│21세기북스
신념 어긋나도 눈치보기에 급급
합리적 판단 막고 파멸로 가기도
정보 없을땐 권위에 쉽게 굴복해
성공한 사람 모방해 사고·행동
SNS가 집단적 사고 더 부추겨
사회규범에 도전하는 용기 필요
성공적 인생이란 무엇일까를 물으면, 사람들은 대부분 두 가지로 답한다. A는 “자기 관심과 재능에 따라 각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분야에서 최고의 성취를 이루는 일”이고, B는 “부자가 되거나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르거나 유명인사가 되는 일”이다. 사람들은 흔히 입바른 A보다 현실적 B를 택하는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해일 뿐이다.
2019년 미국인 52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연구에 따르면, 응답자 97%는 A가 더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92%는 남들이 B라고 답할 것이라고 믿었다. 인격, 인간관계, 교육 등 삶의 질을 성공 척도로 여기면서도, 다른 사람들은 부나 지위나 권력 같은 요소를 더 중요시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사람들은 자신에게 적용하는 잣대와 타인에게 적용하는 잣대가 달랐다.
‘집단 착각’에서 토드 로즈 하버드대 교수는 이처럼 자신을 제외한 사람들 다수가 자신과 다른 가치를 추구한다고 믿는 인지적 혼란이 삶의 모든 영역에서 널리 나타난다고 말한다. 모두 ‘벌거벗은 임금님’에 나오는 군중처럼, 사람들은 자주 명백한 진실을 외면하고 타인의 눈치를 보면서 집단적 착각에 빠져서 살아간다. 그 덕분에 이타적 가치를 믿는 개인이 모여 이기적 사회를 만드는 것 같은 아이러니가 나타난다.
로즈에 따르면, 집단 착각은 일종의 사회적 거짓말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에 어긋나더라도 다수가 원한다고 믿으면 그에 맞춰 말하고 행동하는 성향이 있다. 다수를 거슬러서 감히 용기를 품고 ‘아니오’라고 소리 내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집단 착각이 생겨나는 이유다.
한 사회가 집단 착각에 빠지면, 다수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사회 전체가 움직인다. 합리성의 작동을 가로막고 편견을 부추겨, 때로는 끔찍한 파멸을 가져온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열풍에서 보듯, ‘영끌’의 광풍에 올라탔다가 거품 붕괴로 평생 모은 재산을 잃거나, 나치를 지지했던 독일 국민처럼 집단 광기에 휘말려 학살 행위에 가담할 수 있는 것이다.
집단 착각은 자신을 해치는 경우도 많다. 매년 미국에선 5000명이 신장 이식을 기다리다 사망한다. 신장은 늘 부족하다. 이식을 기다리는 사람은 10만 명에 이르나, 이식용 신장은 약 2만1000개에 불과한 까닭이다. 놀라운 건 해마다 3500개가량이 폐기되는데, 절반은 쓸 만하다는 점이다. 집단 착각 탓이다. 첫 번째 대기자가 모종의 이유로 이식을 거부한 신장은 다음 대기자로 넘어간다. 그런데 ‘한번 거부된 신장’을 나쁜 신장으로 여기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앞사람 판단을 추종하면서 ‘좋은’ 신장이 올 때까지 목숨을 걸고 기다리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따라쟁이의 함정’이라고 부른다.
집단 착각이 일어나는 이유는 인간이 홀로 사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에 소속되어 타인의 사랑과 인정에 쾌락을 느끼면서 살도록 진화했다. 이 때문에 타인의 눈치를 보고 그 마음에 공감하며 다른 사람의 의견과 지식을 받아들이는 힘, 즉 모방 학습 능력이 우리 본성 깊은 곳에 뿌리 박혀 있다.
우리 대부분은 자기 바람에 충실하기보다 소속 집단의 규범에 순응하고 싶어 한다. 우리 뇌엔 ‘대세’를 따르지 않다가 사회적 망신을 당하고 집단에서 소외 또는 추방되는 것에 대한 공포가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원시 사회에선 집단에서 쫓겨나면 거의 죽음뿐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집단 사고에 순응할 때마다 우리 뇌의 쾌락 중추는 기쁨에 자지러지고, 이를 따르지 않으면 오류 신호와 함께 불쾌함과 불편함에 몸서리친다.
스스로 판단할 만큼 충분하고 확실한 정보가 없을 때, 우리는 더 나은 지식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이들을 지표로 삼는다. 특정 개인 또는 집단의 권위와 명성에 쉽게 굴복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누군가 성공했다는 말을 들으면, 우리 눈과 귀는 절로 그쪽으로 쏠리고 우리 마음은 그를 좇아 사고하며, 우리 몸은 그를 모방해서 행동한다. 이는 인류를 지구의 정복자로 만들어준 사회성의 비밀이기도 하다.
집단 착각은 거짓 위에 서 있기에 유리처럼 쉽게 깨질 수 있으나, 절로 사라지진 않는다. 집단 착각에서 벗어나려면 자신이 바라는 바를 정확히 파악하는 성찰, 사회적 상식을 의심하는 지성, 규범에 도전하는 용기기 필요하다. 오늘날 소셜미디어 탓에 집단 착각에 중독되어 살아가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자신을 돌보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할 때 적절한 책이 나왔다. 420쪽, 2만40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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