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가 건축물로 재탄생[전승훈의 아트로드]

전승훈기자 2023. 5. 12.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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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 여행(2) 루마 아를
프랑크 게리가 설계한 루마 아를.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닮은 건물?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의 도시 아를에 세계적인 관심을 끄는 건축물이 등장했다. 2021년 6월 문을 연 루마 아를(LUMA ARLES) 뮤지엄이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과 파리 루이뷔통 재단 미술관을 설계한 미국의 건축가 프랑크 게리(Frank O. Gehry)의 신작이다. 빌바오에서처럼 금속성 재질의 외피와 유리를 활용한 비정형적인 형태로 쌓아 올린 건축물은 한눈에 그의 작품인 걸 알아볼 정도다.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에’.


UMA 아를은 프랑크 게리가 고흐의 그림과 고대 로마의 원형경기장, 프로방스 지방의 거친 바위에서 영감을 받아 지은 건축물이라고 소개했다. 아를은 1888년 2월부터 당시 35세였던 빈센트 반 고흐가 15개월간 머물며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에’ ‘아를의 여인’ 등 대표작 유화 200여 점을 그린 고흐의 도시다. 또한 원형경기장과 야외극장, 로마인 묘지 등 고대 로마 시대 유적이 즐비해 ‘프랑스의 로마’라고 불린다.



루마 아를 센터(LUMA Arles Complex)는 주변에 총 27에이커에 이르는 지역에 정원과 연못, 예술가들의 아틀리에와 전시장, 카페, 호텔 등 다양한 건물로 이뤄져 있는데, 그 중에서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부분이 메인 건물인 타워(La Tour)다.

루마 아를 야경.
1만1000개의 알루미늄 패널을 벽돌처럼 쌓아 올린 건물은 물결치며 일렁이는 외관을 뽐내는 4개의 은빛 탑으로 이뤄져 있다. 마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그림 속 사이프러스 나무처럼 불꽃모양으로 타오르며 하늘로 솟아오른다. 금속 패널 군데군데에는 창문 베란다 모양의 유리 상자 56개가 달려 있다. 밤에 조명이 들어오면 건물의 푸르스름한 외관이 밤하늘처럼 보이고, 그 안에 창문에 오렌지색 조명이 들어와 하늘에 빙글빙글 맴도는 별빛과 달빛처럼 느껴진다.

총 56m 높이의 12층 건물은 알루미늄 패널이 뒤틀린 벽면을 타고 차곡차곡 쌓여 있는데, 이 알루미늄 패널은 태양 빛에 따라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카멜레온 같은 매력을 발산한다. 특히 금속과 유리로 된 표면은 날씨에 따라 다양한 색깔로 바뀌는 데 특히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에 노을이 질 때 아름답다. 아를에 있는 동안 프로방스의 변화무쌍한 하늘과 구름, 별빛을 캔버스에 담으려고 했던 빈센트 반 고흐의 끊임없는 노력을 건축물로 구현해낸 것이다.

루마 아를 아랫부분 ‘드럼’.
아를 고대 로마 원형경기장.
아랫부분 유리로 된 거대한 원통 모양의 포디움인 ‘드럼(Drum)’은 아를의 고대 로마 원형경기장(아레나)을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직경 54m, 높이 18m의 드럼은 총 670톤의 유리창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특이한 것은 포디움 위로 솟아오른 불꽃처럼 타오르는 알루미늄 패널이 원통형 건물 내부로도 이어진다는 점이다.

관람객들은 매표소와 로비가 있는 드럼의 1층 출입구로 들어가 외부를 장식하고 있는 은빛 패널을 직접 보고 만져볼 수 있다. 실제 가까이서 보니 알루미늄 패널의 표면은 매끈하지 않고, 미세한 구멍이 수백 수천개씩 뚫려 있는 형태였다.

프랑크 게리는 또한 프로방스 지역의 자연환경에서 나온 돌과 광물질도 건축에 활용했다. 알피유 산맥과 레보 드 프로방스(Les Beaux de Provence) 지역의 우뚝 솟은 거친 절벽과 바위의 몽환적인 질감이 건물 형태에 반영돼 있다.

엘리베이터 벽면에 붙여진 소금 결정체 타일.
엘리베이터 옆 벽면에는 론강 주변 카마르그 습지에서 생산되는 소금 결정체를 타일로 만들어 붙였고, 화장실 거울 위에는 지중해 바다에서 채취한 해초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무늬를 새겨넣은 타일로 장식돼 있다.

루마 아를 입구에서 표를 끊고 입장하면 로비가 나온다. 로비에서 사람들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은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올 수 있는 미끄럼틀이다. 벨기에 출신으로 스웨덴에서 활동 중인 작가 카르스텐 횔러(62)의 작품으로, 자치 엄숙해질 수 있는 미술관에 활기를 불어넣는 장치다.

아름다운 회전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거나 엘리베이터를 타면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데, 내려올 때 가장 빠르고 짜릿한 방법은 아랫도리에 자루를 입고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는 것이다. 미끄럼틀은 엘리베이터나 계단만큼 안전하고, 우아하게 높은 층에서 아래로 내려올 수 있는 운송 수단으로서 역할을 다한다.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루마 아를의 회호리 모양 계단.
9층에는 테라스에 파노라믹 뷰가 펼쳐진다. 루마 아를은 주변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만큼 프로방스의 알피유 산맥(les Alpilles)과 구불구불한 론강, 카마르그 습지(La Camargue), 몽마주르 수도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또한 아를 시내의 로마 시대 원형경기장을 비롯한 시가지 전체와 사이프러스 나무들의 행렬도 볼 수 있다. 이러한 풍경들이 루마 아를의 금속성 패널과 유리 상자와 어우러진다. 자연과 역사, 인공과 예술이 어우러지는 최고의 뷰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아를 시내의 전망을 볼 수 있는 방은 8층에도 이어진다. 독일의 산업디자이너인 콘스탄틴 그르시치(58)가 디자인한 8층은 투명한 금속 커튼을 활용한 연극무대처럼 꾸며진 방이다. 금속 표면을 지닌 건축물 내부에 같은 금속으로 만든 커튼이 햇빛을 가리는 골목길 같은 공간을 만들어냈다.

얇은 금속을 촘촘한 그물망처럼 엮은 커튼 너머로 프로방스의 산과 강, 아를의 역사적인 건축물들이 보인다. 9층의 테라스와 쌍으로 연결된 전망 좋은 공간으로, 다양한 이벤트가 열리는 홀이다.

루마 아를 타워에는 메인 전시홀(1000㎡)과 2개의 작은 전시장이 있다. 조각과 그림, 사진, 설치 등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또한 건물 내에는 강의실과 아틀리에, 세미나실 등도 갖춰져 있다. 루마재단은 “2004년부터 환경, 문화, 교육, 인권 등을 주제로 한 시각예술 창작을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루마 아를이 자리 잡은 지역은 19세기부터 있던 7개의 공장 터가 있었는데, 1938년부터 프랑스의 국영철도회사(SNCF)가 소유하고 있던 철도 보관소로 이용돼 왔다. 오랫동안 버려진 땅을 자연생태와 문화예술이 살아 숨 쉬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프로젝트를 처음 꿈꾼 것은 마야 호프만이다. ​​

스위스 출신 유명 컬렉터인 그는 2004년 예술가를 지원하기 위해 1억5000만 유로를 기부해 루마 재단(Luma Foundation)을 설립했다. 그리고 2013년부터 아를에 프랑크 게리의 건축물이 중심이 되는 ‘아뜰리에의 공원(Parc des Ateliers)’을 만들겠다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던 것이다. 그랜드홀, 포르주, 메카닉 제네럴을 포함해 이 공원을 이루는 6개 건축물에서는 연중 내내 각종 행사가 개최된다. 매년 여름에는 아를 국제 사진전이 열린다.

루마 아를 타워 1층 로비에 있는 ‘드럼 카페(Drum Cafe)’에서는 차와 식사를 즐길 수 있다. 메뉴 중에는 동서양 퓨전 음식도 있는데, 만두처럼 생긴 음식의 재료에 ‘김치’가 들어간다는 메뉴판 설명을 보고 시켜보았다.

그랬더니 김치라기 보다는 소금에 절인 무 종류의 야채 샐러드가 들어가 있었다. 사방으로 탁 트인 유리창 전망이 좋은 드럼 카페는 천장 인테리어가 흥미로웠다. 빨강, 초록, 노랑 등의 각종 배관이 노출된 형태였는데, 마치 파리의 퐁피두센터 외관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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