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흐르면 살인 멈출 것”... 미국 도시 전체가 ‘도끼맨’의 인질이 됐다[세계의 콜드케이스]
‘재즈의 고향’서 도끼 사용해 연쇄 범죄
언론에 편지 보내 “재즈 연주하라” 요구
100년 지나도록 범인 정체는 미궁 속에
편집자주
‘콜드케이스(cold case)’는 오랜 시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범죄사건을 뜻하는 말로, 동명의 미국 드라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금요일 세계 각국의 미제사건과 진실을 쫓는 사람들의 노력을 소개합니다.
1919년 3월 18일, 화요일이던 이날은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 역사상 ‘가장 시끄러운 밤’으로 기록됐다. 재즈의 성지로 알려진 초승달(크레센트) 도시, 뉴올리언스의 모든 재즈바는 인파로 북적이고 있었다. 재즈바뿐 아니라 마을 곳곳에서도 수백 개의 파티가 열렸는데, 하나같이 재즈곡이 흘렀다. 유명 음악가만이 아니라 재즈를 조금이라도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악기를 손에 들었다. 파티가 열리지 않은 집에선 재즈 음반을 틀어 뒀다.
그러나 흥겨운 선율과 달리 사람들 사이의 분위기는 기묘했다. 뉴올리언스 ‘재즈의 밤’은 10개월 전부터 도끼를 휘둘러 이 지역 시민들을 무참히 살해해 악명을 떨친 연쇄살인범, 스스로를 ‘도끼맨(Axeman)’이라고 소개한 사람이 보낸 한 통의 편지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지역 신문 타임스피카윤에 게재된 편지에서 그는 “18일 밤 12시 15분에 뉴올리언스를 방문할 예정”이라며 “나는 재즈를 아주 좋아한다. 그 시간에 재즈 연주가 한창인 곳에선 모든 사람이 살아남으리라고 모든 악마에게 맹세한다”고 밝혔다. 신원 미상의 발신인이 보낸, 내용의 진위도 확인되지 않은 편지였지만 도끼맨의 범죄가 1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었기에 뉴올리언스 주민들로선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밤새 울려 퍼진 재즈 덕분이었을까. 그날은 살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도끼맨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는 습격 사건은 이후로도 계속됐고, 뉴올리언스 시민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매일 밤 재즈를 들었다. 도끼맨이라는 정체 모를 범죄자한테 도시 전체가 인질이 된 셈이다.
잇따른 범행…용의자는 ‘묘연’
도끼맨에 의해 살해된 ‘첫 희생자’로 알려진 인물은 조셉 마지오와 캐서린 마지오 부부였다. 1918년 5월 23일, 이탈리아 술집과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던 이들은 집에서 잠을 자던 중 습격을 받아 사망했다. 살해 수법은 잔인하기 이를 데 없었다. 목을 면도칼로 그은 뒤 도끼로 내리쳤다. 경찰은 범행에 쓰인 면도칼이 인근 이발소 주인인 조셉의 형제 앤드류 마지오의 물건이었고, 최초 발견자였다는 점 때문에 그를 용의자로 붙잡았다. 하지만 별다른 증거가 없어 금방 풀어 줄 수밖에 없었다. 현장에서 사라진 금품이나 물건도 없던 탓에 범인은 물론, 범행 동기도 종잡기 힘들었다.
마지오 부부의 죽음으로 뉴올리언스 사회가 술렁거리던 와중에 ‘도끼 공격’은 또 일어났다. 불과 한 달 후였다. 이번에도 이탈리아 식료품 가게가 타깃이 됐다. 점원 루이스 베슈머, 주인 해리엇 로웨는 곧바로 병원에 옮겨져 목숨을 건졌으나, 제대로 된 증언을 하지 못했다. 특히 도끼에 얼굴을 맞아 안면마비가 왔던 로웨는 수술 합병증으로 4개월 후 세상을 떠났는데, 유언을 통해 “베슈머가 범인”이라고 밝혔다. ‘범죄 피해자’가 한순간에 ‘용의자’로 뒤바뀐 것이다.
베슈머는 즉각 살인 혐의로 기소됐지만, 그 역시 도끼맨은 아니었다. 1919년 5월 1일 무죄 판결로 석방될 때까지 베슈머는 9개월간 감옥에 있었는데, 이 기간에도 도끼맨이 저지른 것으로 보이는 공격은 잇따랐다. 당시 언론들은 “내연 관계였던 두 사람의 복잡한 사정 탓에 로웨가 베슈머를 범인으로 지목한 것”이라고 전했다.
경찰, 3차 사건 후 ‘연쇄 범죄’ 규정
같은 해 8월 세 번째 사건이 일어났다. 경찰은 결국 한 명의 ‘연쇄 범죄’로 보인다고 공식 발표했다. 피해자였던 임신부 안나 슈나이더는 잠을 자던 중 ‘검은 형체’에 의해 구타당했다고 진술했을 뿐, 당시 구체적 상황에 대해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도끼맨이라고 불린 이 범죄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피해자 집에 있던 도끼 등 흉기를 사용했고, 범행 후엔 현장 근처에 이를 버린 뒤 유유히 사라졌다. 피해자 집에서 돈이나 값나가는 물건을 건드리지도 않았다.
그로부터 5일 후, 80세의 노인 조셉 로마노가 도끼에 머리를 맞고 사망했다. 같은 집에 살던 로마노의 조카들은 “뒷문으로 도망치는 남자를 봤다”고 했으나, ‘검은색 양복을 입은 덩치 큰 남자’라는 것 이상의 증언은 내놓지 못했다. 로마노의 집 뒷마당에서는 피 묻은 도끼가 발견됐다. 도끼맨의 범행이라는 증거였다.
뉴올리언스의 공포는 극에 달했다. 이렇다 할 용의자가 떠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마당에 놓인 도끼만 봐도 경찰에 신고할 정도로 겁을 먹었다. 은퇴한 형사 존 단토니오가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살인자는 이중인격일 것”이라고 말하자 혼란은 더욱 커졌다. 도끼맨이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주인공처럼 평소엔 평범한 생활을 하다가 어느 순간 돌변하리라는 추측에 주민들은 서로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게 됐다.
8개월간 사망자 6명·부상자 12명
로마노가 죽고, 반년간 멈췄던 도끼맨의 활동은 1919년 3월 다시 시작됐다. 3월 10일 어린 딸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던 코르티밀리아 부부가 도끼로 습격을 당한 것이다. 그로부터 며칠 후 지역 신문사에 “재즈를 연주하라”는 편지가 도착했고, 타임스피카윤은 이튿날 이를 지면에 실었다.
신문을 통해 자신의 복귀를 알린 도끼맨은 같은 해 8월과 9월, 10월 총 5명을 상대로 범행을 저지르면서 암약했다. 모두 집에서 쉬고 있다가 공격을 받았다. 피습 당시 잠들어 있었고, 주로 머리를 다친 탓에 침입자의 모습을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마지막 희생자는 6남매의 아버지인 마이크 페피톤이었다. 새벽 1시쯤 남편의 비명을 듣고 잠에서 깬 부인 에스더는 침대가 온통 피에 젖은 사실을 깨달았다. 이미 의식을 잃은 페피톤은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2시간 만에 사망 선고를 받았다. 그의 머리는 둔기로 18번 이상 얻어맞은 것으로 밝혀졌다. 같은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있던 남편이 이런 공격을 받을 동안 아무런 낌새도 느끼지 못한 에스더를 의심하는 시선이 많았으나, 그는 “잠을 깊게 자는 편”이라고 경찰에 해명했다.
이후 도끼맨의 범죄 행각은 뚝 끊겼다. 8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사망자 6명, 부상자 12명을 낳은 뉴올리언스 도끼맨의 정체는 10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미궁에 빠진 채로 남아 있다.
‘인종차별’ ‘마피아’… 범행 동기는 추측만
도시에서 도끼를 휘두르고 다니면서도 자그마한 단서 하나 남기지 않을 정도로 용의주도했던 도끼맨. 대부분의 피해자가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 또는 이탈리아계 미국인이라는 점 때문에 도끼맨의 범행 동기를 ‘인종’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미시시피강 유역의 항구 도시 뉴올리언스는 도시 확장 과정에서 다양한 인종이 드나들었고, 이탈리아에서 온 이주민도 많았다. 흑인 노예의 자리를 대신한 이들은 ‘백인 검둥이’란 뜻의 멸칭인 ‘데이고(Dago)’로 불릴 만큼 차별적인 시선에 시달렸다. 20년 전인 1891년엔 이탈리아계를 대상으로 한 집단 린치 사건도 일어났다.
언론에서는 별다른 근거가 없는데도 범죄 피해자들이 이탈리아계라는 점을 들어 마피아와 연결 짓는 선정적 보도를 내보냈다. 뉴올리언스에서 사업을 하던 마피아 파벌 간 불화로 인해 이탈리아 이민자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복수전을 벌였다는 추측이었다. 또 ‘재즈’를 둘러싼 흑인과 이탈리아계 음악가 사이의 견제가 비극을 불렀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도끼맨의 습격 대상엔 늘 여성이 포함된 탓에 성적인 동기가 있다거나, 그저 ‘유명해지고 싶어서’ 도끼를 휘두르고 신문사에 편지를 보낸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마지막 피해자였던 페피톤의 부인 에스더가 남편의 사망 후 만났던 ‘제프리 몸프리’라는 남성이 범인이라는 소문도 떠돌았지만, 제프리는 실존 여부조차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인물인 것으로 전해졌다.
재즈 선율로 가려진 ‘비극’
도끼맨의 정체와는 별개로, 100년이 지나도록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는 데엔 잔혹했던 범죄뿐 아니라 지역 신문에 실린 문제의 ‘편지’도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 편지는 진범이 쓴 게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뉴올리언스 도끼맨에 대한 책을 쓴 미리엄 데이비스는 “글을 보면 ‘교육을 받은 사람’의 분위기가 느껴지는데, 실제 도끼맨은 노동계급일 것”이라고 했다. 데이비스는 또, 범죄 프로파일러와 경찰도 도끼맨이 편지를 쓰지 않았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전했다.
이 같은 추론이 사실이라면, 편지 발신인은 누구였을까. 데이비스는 재즈 음악가인 조셉 조 데이빌라가 편지를 쓴 사람이라고 봤다. 데이빌라는 도끼맨이 뉴올리언스를 방문하겠다고 지목한 당일, ‘기묘한 도끼맨의 재즈’라는 곡을 만들어 바로 다음 날 발표했다. 1910년대는 ‘뉴올리언스 재즈 시대’라고 불릴 정도로 성황을 이룬 시기였다. 재즈, 그리고 자신의 명성을 위해 도끼맨의 편지를 꾸며냈다는 말이다.
다른 곳도 아니라, 재즈의 발원지인 뉴올리언스에서 “죽음을 피하려면 재즈를 연주하라”는 낭만적 요구를 한 탓인지 도끼맨의 범행은 대중매체와 소설 등에서 여러 차례 변주됐다. 온갖 추측과 가설이 쏟아지는 동안, 정작 난데없는 습격에 숨진 희생자들의 넋은 제대로 기려지지 않았다.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실도 재즈 선율에 가려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할 공산이 크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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