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차별 없는데?" vs "성평등 최하위"…'여가부 폐지' 두고 평행선
[편집자주] 2022년 대선 판을 뒤흔든 일곱 글자, '여성가족부 폐지'. 윤석열 대통령을 당선시킨 핵심 공약 중 하나다. 그러나 국회 논의는 새 정부 출범 후 1주년째 겉돌고 있다. '여성가족부 폐지'는 과연 현실화될까.
지난해 대통령 선거 과정에 윤석열 대통령이 폐지를 공약해 화제가 된 여성가족부(여가부)가 정부 출범 이후 1년째 존치 중이다. 여가부 폐지에 대한 20∼30대 남녀의 의견은 여전히 갈린다.
여가부 폐지 공약을 이행해야 한다는 쪽은 한국 사회에서 더 이상 성차별이 강하지 않은 만큼 여성을 위한 별도의 부처는 필요 없다는 입장이다. 여가부에서 시행하던 정책은 다른 부서에서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 회사원 장모씨(32·남)는 "여가부가 하는 일 대부분은 보건복지부나 행정안전부 등에서 충분히 할 수 있어 보인다"며 "여성전용 주차장, 여성할당제는 성차별을 조장할뿐 왜 필요한지 모르겠고 여성의 능력이 모자라지 않은데 특별히 배려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예비역 중사인 김모씨(28·남)는 "여성에 대한 차별이 없어지고 인식도 좋아진 남녀평등 세상에서 여성만을 위한 부서는 필요 없다"며 "다만 여가부를 당장 없애면 반발과 혼선이 따를 수 있어 계도기간을 두고 점차 축소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여가부 폐지에 반대하는 쪽은 성차별에서 비롯된 사회 문제가 여전한 만큼 관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가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학생 황모씨(24·남)는 "여가부 폐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여성은 더 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니고 여성 정책으로 오히려 남성이 약자가 된다'고들 하지만 이들은 이런 말을 하면서도 여전히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있을 것"이라며 "여성이 사회적 약자라는 사실을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여가부는 유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회사원 허모씨(29·여)는 "'n번방' 사건같은 디지털 성범죄 등 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가 많고 그 수법은 더 악랄하게 진화하고 있다"며 "여가부 폐지를 논할 것이 아니라 예산 확충을 통해 여가부 전문성을 높여 역할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여가부 폐지를 반대하는 쪽은 여가부가 여성뿐 아니라 청소년, 다문화 가정 관련 문제에서도 일정 부분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직장인 김모씨(28·여)는 "현재 여가부는 가출 청소년이나 성범죄 피해자 등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며 "일각에서 말하는 대로 여가부 기능이 다른 부처 아래로 분산 편입되면 기존 정책의 중요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고 소외계층이 더 소외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박모씨(31·여)는 "최근에도 한 금융사 채용 과정에 성비를 이유로 여성을 대거 탈락시킨 사건이 있을 정도로 한국 사회에 성차별은 여전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여가부는 앞으로 사회구성원이 될 아이들도 보호하는 부서"라며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려면 아이를 낳고 싶은 사회를 만드는 게 우선이라는 걸 현 정부가 깨달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서울 마포구 직장인 전모씨(33·남)는 "여가부 폐지를 공약한 이후 구체적으로 여성과 가족 관련 정책을 어떻게 펼치겠다는 건지 와닿는 게 없다"며 "어떤 정책으로 남녀 포함 사회 통합을 이룰지 설명해야 하는데 부처 폐지가 정책이 돼 소모적인 논쟁만 벌어지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정부의 여성가족부 폐지 움직임에 여성계는 시종일관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리나라의 심각한 성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더욱 강화해야 할 주무부처를 오히려 폐지하겠다는 발상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여가부는 여성정책 기능이 사라지는 게 이관되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11일 여성계 등에 따르면 정의기억연대, 전국여성연대 등 55개 여성단체들은 전날(10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여성인권 후퇴를 규탄하는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며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삼는 등 여성혐오를 전면에 내건 윤석열 정부의 1년은 여성인권 후퇴 그 자체였다"며 "실패한 여가부 폐지 정책을 폐기하고 여가부 장관을 경질, 교체해야 하고 성평등 전담 부처를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여성계는 여가부를 폐지하면 양성평등을 위한 국가 정책의 수립 및 추진 동력이 지금보다 더 약해질 것을 우려한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 통화에서 "우리 사회의 핵심적인 문제는 경제 규모에 걸맞지 않은 성차별과 성평등 지체 현상"이라며 "우리나라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기준 성별 임금 격차나 유리 천장 지수 등 모든 성평등 지표에서 최하위 국가"라고 말했다.
이어 "윤석열 정부는 구조적인 성차별이 우리나라에 없다고 생각하는 건데 이는 엄청난 실수"라며 "증빙을 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소위 '이대남'(20대 남성)들의 주장대로 학교에서 여성들이 공부를 잘 하는 게 사실이라고 해도 학교에서의 성취가 노동 시장에서의 성취와 일치하느냐에는 의문이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여가부가 일을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규모나 예산, 인력 자체가 적어서인데 부처 자체를 없애고 쪼개면 일의 효율이 나아진다는 건가"라며 "경제 수준에 걸맞지 않는 처절한 성평등 수준을 가진 우리나라에 어울리지 않는 해법"이라고 밝혔다.
양이현경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어떤 부처가 역량이 부족하거나 일을 잘 못하는 경우는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부처를 없애진 않는다"며 "국토교통부가 부동산 정책을 잘 못한다고 없애진 않지 않나"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어 "힘이 없는 조직이면 예산을 많이 투입하면 된다. 인력도 더 많이 줘서 부처의 능력을 강화하면 된다"며 "성평등 정책 수립과 집행 기능을 사실상 약화시키려는 속셈"이라고 비판했다.
양이 대표는 "젠더 갈등을 말하는데 실질적으로 그게 대해 무엇인가. 부추기는 건 정치권 아닌가"라며 "여가부 폐지는 20대 남성 표심을 얻으려고 냈다는 게 본질이다. '구조적 성차별은 우리 사회 없다'라는 잘못된 인식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계속 꼬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전세계 어느 나라도 성차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지 않다"며 "여가부 폐지 정부조직 개편은 앞으로도 선거 때마다 정치적 카드로 쓰이지 않을까 싶다"고 지적했다.
국회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여가부 폐지에 당연히 반대한다. 성평등 정책 필요성에 대한 공감이 없는 상태에서 나온 공약이라는 점이 가장 문제"라며 "약자 보호 등과 정책 추진 등을 위한 총괄조정기능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더 큰 힘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보다 더 축소된 형태로는 수준이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권 의원은 그러면서 "여가부 폐지가 아니라 오히려 성평등을 담당하는 정부 부처의 힘을 강화하거나 부처 자체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여가부 측은 양성평등에 대한 기능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구로 이관돼 추진되는 것이기 때문에 약화할 우려는 없다는 입장이다.
여가부 관계자는 "전문성을 가진 인재들이 새로운 기구에서 여성가족 정책을 독립적으로, 강력히 추진할 것"이라며 "오히려 그동안 여가부는 양성평등과 사회적 약자 지원에 대한 상징성은 컸지만, 가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 권한에서는 한계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직의 형태가 바뀔 뿐 여가부가 수행하던 양성평등과 관련된 법과 제도의 수립, 사업 진행 등은 그대로 이관되기 때문에 컨트롤타워가 사라진다거나 기존 업무가 약화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국민들에게 정부의 서비스를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전달하고자 정부 조직 형태를 개편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지성 기자 sorry@mt.co.kr 안채원 기자 chae1@mt.co.kr 박소연 기자 soyunp@mt.co.kr 오문영 기자 omy0722@mt.co.kr 김지현 기자 flow@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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