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활주로 코앞 골프장 야간 조명… 감사원 “조작 서류로 허가 받아”
인천국제공항 활주로에 인접한 골프장이 밤에도 영업을 하기 위해 국토교통부 서울지방항공청에 조작된 자료를 제출하고, 항공청은 이 자료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야간 조명 사용을 허가해준 것으로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났다. 골프장은 밤에도 손님을 받아 50억원 넘게 추가 매출을 올렸지만, 골프장 야간 조명은 착륙을 위해 활주로에 접근하는 항공기 조종사들의 눈을 부시게 해 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이 11일 공개한 ‘항공등화시설 등 안전관리실태’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인천공항 3·4번 활주로 남쪽에 인접한 골프장 오렌지듄스영종골프클럽의 운영사인 영종오렌지는 2021년 1~2월 조종사들을 상대로 설문 조사를 했다. 골프장의 야간 조명이 이착륙에 방해가 되는지를 묻는 내용이었다. 골프장 측은 설문에 응답한 조종사 129명 중 126명이 괜찮다고 답했다는 조사 결과를 서울지방항공청에 냈고, 서울항공청은 이 결과를 바탕으로 골프장에 야간 조명 점등을 허용했다.
그러나 감사원이 확인한 결과, 골프장 측이 낸 설문조사 결과는 조작된 것이었다. 응답했다는 조종사 129명 중 12명(41.4%)은 실존 인물이 아니었고, 88명(68.2%)은 골프장이 설문조사를 위해 밤에 미리 불을 켰던 시간대에 인천공항에 이착륙한 적이 없는 조종사들로, 설문조사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됐다. 또 설문에 응답했다는 조종사 중 50명에게 확인해봤더니 29명은 그런 조사에 응답한 적이 없다고 했다. 명의가 도용된 것이다.
설문조사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진작 나왔다. 2021년 4월 서울항공청은 6개 국적 항공사 조종사들에게 골프장 측의 설문조사가 적정한 것인지를 물었고, 조종사들은 ‘골프장 조명이 있는 3·4번 활주로에 착륙하기 위해 접근한 적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조사가 아니고, 골프장의 모든 야간 조명을 켠 상태에서의 착륙 경험을 확인하는 조사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앞서 2020년 12월 한 국내 항공사도 3·4번 활주로 하단에 인접한 골프장 3~6번 홀의 야간 조명에 대해 ‘광범위한 면적의 밝은 조명을 포함하고 있으며, 항공기가 그 상공을 통과 시 야간 조명 빛이 반사돼 조종사에게 눈부심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고, 조종사 암순응을 방해해 항공기 최종 착륙 단계에서 조종사가 활주로, 항공등화 판별에 어려움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서울항공청에 냈다.
감사원이 국토부 비행점검센터를 통해 검사해본 결과에서도 골프장 야간 조명이 켜져 있는 지역을 통과할 때 항공기 조종사에게 눈부심을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인천공항 4번 활주로에 접근하는 조종사의 사물 인지도를 평균적으로 약 65%, 최대 약 82% 저하시킬 수 있었다. 또 항공기가 정확한 각도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진입각지시등(PAPI), 활주로가 시작되는 지점을 알려주는 시단등, 활주로의 좌우 끝을 알려주는 활주로등을 조종사가 식별하는 데에도 방해가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종사들이 활주로 위치를 착각하면 대형 사고가 날 수 있다. 1980년 11월 19일 대한항공 015편은 조종사가 김포국제공항 활주로 위치를 착각해 기체가 활주로 앞 제방에 충돌했고, 승객과 승무원, 지상에 있던 군인 등 16명이 숨졌다.
그러나 서울항공청 공무원들은 골프장 야간 조명이 항공 안전에 지장을 줄 수 있고, 골프장 측의 설문조사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도 야간 점등을 그대로 허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골프장 측은 2021년 6월부터 감사원이 감사를 진행한 시점인 지난해 9월까지 1년 4개월간 야간 영업으로 50여억원의 매출을 추가로 올렸다.
감사원은 야간 점등을 허용한 서울항공청 공무원 3명을 징계하고, 골프장의 야간 운영을 중지시키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국토부와 서울항공청에 통보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본지 통화에 “감사원의 처분 요구에 따라 적절한 조치 방안을 마련해 시행할 것”이라고 했다. 징계 대상이 된 서울항공청 공무원들은 감사원 처분에 불복해 재심을 신청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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