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버린 가족을 우연히 다시 만났을 때 [비장의 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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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는 이미 마음을 굳힌 모양이었다.
"친부모와의 만남이 입양인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고 당신들은 생각하겠지만 내가 전해 듣기로는 전혀 다르다. 그 만남은 모든 문제의 시작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 자신의 입양인 친구가 한국 친부를 만난 경험을 함께 나누었다는 감독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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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투 서울〉
감독:데이비 추
출연:박지민
엄마 아빠는 이미 마음을 굳힌 모양이었다. 한국을 떠난다고, 이제 프랑스에서 살게 될 거라고 말씀하셨다. 싫다고 했다. 친구들이 다 여기 있는데 내가 왜 가? 그 나라 말도 모르는데 가서 어떻게 살아? 하지만 곧 깨달았다. 내가 싫다고 해도 결국 가게 되리란 걸.
“알았어. 대신 조건이 있어. 나 지금까지 서울에서만 살았잖아. 떠나기 전에 우리나라 다 구경해보고 싶어. 그거 해주면 갈게.”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제시한 타협안을 엄마 아빠가 전격 수용했다. 온 가족이 전국일주를 하고 나서 이 나라를 떠났다. 한국인 ‘박지민’은 그렇게, 프랑스인 ‘Park Ji-min’이 되었다.
회화와 설치미술을 함께 하는 비주얼 아티스트로 성장한 그에게 어느 날 친구가 영화감독을 소개했다. “프랑스로 입양된 한국인 ‘프레디’가 어른이 되어 처음 서울에 가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의 배우로 널 추천했다”라고 친구는 말했다. 처음엔 싫다고 했다. 연기를 해본 적도 없는데 내가 왜? 난 입양인도 아닌데 내가 어떻게?
하지만 곧 깨달았다. 겉으론 싫다고 말하면서도 속으론 원하고 있다는 걸.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삶의 시작’이라는 점에서는 이민도 입양과 다르지 않으니까. 아시아가 아닌 곳에서 아시아인 여성을 향한 차별과 폭력은 입양인과 이민자를 구분하지 않았으니까. 나 또한 프레디처럼 흔들려왔음을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프레디를 만나기 전부터 박지민은, 이미 어느 정도 프레디였던 것이다.
스물다섯 살의 어느 날, 올 생각이 없던 한국에 우연히 도착한 프레디(박지민)는 찾을 생각이 없던 자신의 친부모를 또 우연히 찾게 된다. 그렇게 자신을 버린 가족을 만나고, 원망을 쏟아내고, 그들이 용서를 구하고, 서서히 마음을 열고, 공통점을 찾아내고, 마침내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하는 감동 휴먼드라마…는 처음부터 이 영화의 목표가 아니다. ‘우리가 버린 아이가 다시 우리 품에 안겨 웃는’ 순간을 기대했던 한국 관객은 당황하게 된다.
“친부모와의 만남이 입양인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고 당신들은 생각하겠지만 내가 전해 듣기로는 전혀 다르다. 그 만남은 모든 문제의 시작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 자신의 입양인 친구가 한국 친부를 만난 경험을 함께 나누었다는 감독의 이야기. 그래서 부모의 마음이 아닌 입양인의 마음을 좇아 시나리오를 썼다는 고백. 그리하여 친부를 만나고 2년 뒤, 그로부터 다시 5년 뒤, 그리고 또다시 1년 뒤, 모두 8년의 시간을 가로지르는 프레디의 예측할 수 없는 삶의 궤적을 그려낸 영화.
방황 대신 투쟁을 선택한 주인공에게 멱살 잡혀 기쁘게 끌려가던 나는, 영화의 한 장면, 홍대 앞 LP바에서 마음껏 춤을 추는 프레디에게 완전히 압도되었다. “나는 춤출 때가 제일 행복하기 때문에 그 행복한 기분을 프레디에게도 선물하고 싶었다”라는 배우 박지민의 마법 같은 에너지에 제대로 사로잡혔다. 박지민을 만나서 프레디는 더욱 프레디가 되었다. 미치도록 슬프면서도 끝내주게 아름다운 멜랑콜리의 주인이 되었다.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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