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1만개 보관했다던 권도형, 경제상태 질문에 “미디엄”

박준희 기자 2023. 5. 12.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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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 대표 권 씨, 보석 위한 판사 질문에
“보석금은 아내가…韓아파트 40억 정도”
재산 은닉 의혹 속 구체적인 언급은 피해
현지 檢 “보석금 너무 작고 도주 위험 커”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돼 구금 중인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11일(현지시간)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 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한때 ‘K-코인’으로 불리던 테라·루나 코인의 시세 폭락 사태에 연루된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구금 중인 몬테네그로에서 열린 재판에서 자신의 경제 상태에 대해 “미디엄(중간 정도)”라고 11일(현지시간) 밝혔다. 한때 가상자산 시가총액 10위권까지 올랐던 테라를 발행한 업체의 대표로서 폭락 이후에도 거액의 재산을 은닉했을 것이란 의혹을 받고 있는 권 대표는 법정에서 판사의 질문에도 자산 규모에 대해 언급하길 피했다.

이날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리고차 지방법원에서는 공문서위조 혐의로 기소된 권 대표와 측근 한모 씨에 대한 첫 재판이 열렸다. 권 대표 등은 지난 3월 23일 포드고리차 국제공항에서 위조 여권으로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행 비행기에 탑승하려다 체포된 바 있다.

이날 재판의 쟁점은 권 대표 등의 보석 청구였다. 권 대표 등은 이날 보석금으로 각각 40만 유로(약 5억8000만 원)를 내겠다며 보석을 청구했다.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받게 해달라는 것이다.

몬테네그로 현지 법원은 지난 3월 24일과 4월 21일 이들에 대해 두 차례에 걸쳐 구금을 연장했다. 구금 기간 연장은 최대 30일까지다.

몬테네그로 당국에 검거된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지난 3월 24일(현지시간) 수도 포드고리차 법원에 출두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몬테네그로 상급 법원의 국외 언론사 취재 신청 접수로 한국언론으로는 유일하게 직접 재판을 참관한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재판을 주관한 이바나 베치치 판사가 권 대표에게 재산 규모를 묻자 권 대표는 “한국에 아파트 1채가 있다”고 답했다. 이어 권 대표는 다른 재산은 뭐가 있느냐는 질문에 “언론 앞에선 밝히기 어렵다”며 답변을 피했다.

베치치 판사는 권 대표가 재산 규모를 정확하게 밝혀야 보석과 관련한 결정을 내릴 수 있고, 재산 규모를 계속 숨길 경우 향후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권 대표는 “한국에 있는 아파트는 300만 달러(약 40억원) 정도 된다”며 “아내와 공동명의”라고 말했다. 또 “다른 재산은 유동 자산이라서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정확하게 말할 수 없다”며 “내 회사에 대한 지분도 이 회사가 주식시장에 상장되지 않은 회사라서 얼마만큼의 ‘밸류’(value·가치)가 있는지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권 대표는 보석금을 아내가 낼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베치치 판사는 측근 한 씨에게도 보석금을 누가 내는지, 재산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물었다. 이에 한 씨 역시 아내가 보석금을 낼 것이라고 답했고, 세르비아와 한국에 각각 1채씩 보유한 아파트를 포함해 자신의 자산이 대략 500만 유로(약 73억원)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거액의 범죄수익을 은닉했을 것으로 의심받는 권 대표가 재산 규모를 밝히지 않자 하리스 샤보티치 검사는 권 씨 등의 재력에 비해 보석금 규모가 너무 작고, 이들이 재산 규모에 대해 모호하게 진술하고 있으며, 이들에게 인터폴 적색 수배가 내려진 만큼 도주할 위험이 크다면서 보석을 허용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에 권 대표의 현지 변호인인 브란코 안젤리치는 “의뢰인들이 이 재판에서 나온 정보가 언론을 통해 노출되면 다른 나라에서 진행되는 소송에 악용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안젤리치 변호사는 판사에게 취재진이 있어서 의뢰인이 예민하게 반응한 것 같다며 재판정에 있는 취재진을 2∼3분 정도 퇴정시킨다면 재산 규모를 공개하겠다고 말했지만, 베치치 판사는 이를 수락하지 않았다.

권 대표의 재산과 관련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 2월 그를 증권거래법상 사기 혐의로 고발하며 대규모 비트코인을 현금화한 정황을 공개한 바 있다. SEC에 따르면 그는 비트코인 1만 개를 ‘콜드월렛(인터넷에 연결되지 않은 실물 가상자산 저장소)’에 보관해왔으며, 지난해 5월부터 해당 자금을 스위스 은행에 주기적으로 이체해 현금으로 전환해왔다. 비트코인은 이날 기준 1개당 3637만여 원의 시세를 나타내고 있어 한때 권 대표가 보관하던 비트코인 1만 개는 현재 가치로 3637억여 원에 해당한다.

이날 베치치 판사가 보석 허가 조건으로 주거 제한과 법원 소환에 출석 등의 4∼5가지 조건을 열거하자 권 대표는 “나는 도주하지 않을 것이고, 지정된 아파트에 머무를 것이며, 법원 소환에 반드시 임하겠다”고 밝혔다. 또 권 대표는 가족 사항에 대해서는 “결혼했으며, 아내와 아이가 한 명 있다”고 답했고, 직업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고 설명했다. 권 대표와 한 씨는 경제적인 상태에 대해서는 둘 다 “미디엄”이라고 답했다.

한편 권 대표 등은 여권 위조 혐의에 대해 무죄를 주장했다. 권 대표는 “내 진술은 간단하다”며 “코스타리카에서 적법하게 취득한 여권이다. 코스타리카 정부에 공식 확인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샤보티치 검사는 이미 권 대표 등의 여권을 스캔해서 코스타리카 당국에 확인한 결과 해당 여권 번호에 다른 인물이 나왔다며 추가 확인은 필요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다만 베치치 판사는 검사에게 공식 경로를 통해 코스타리카 당국에 다시 한번 확인하라고 명령했다. 권 대표 등에 대한 다음 재판은 6월 16일 낮 12시에 열린다.

박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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