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신→프랜차이즈→외국인까지…3연속 경질 잔혹사, 한화는 감독들의 무덤
[OSEN=대전, 이상학 기자] 한화의 감독 잔혹사가 또 재현됐다. 구단 최초의 외국인 사령탑인 카를로스 수베로(51) 감독도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한 채 시즌 중 물러났다. 야신 김성근 전 감독,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한용덕 전 감독에 수베로 감독까지 3연속 중도 하차로 ‘감독들의 무덤’이라는 오명을 씻지 못했다. 감독은 계속 바뀌는데 팀은 바뀌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다.
한화는 지난 11일 대전 삼성전을 마친 뒤 수베로 감독과 계약 해지를 알렸다. 지난달 말부터 시작된 6연패 기간 구단 내부 논의 끝에 감독 교체로 의견을 모았고, 최종 재가가 이날 오후에 떨어졌다. 결정이 나온 마당에 시간을 끌 이유가 없었다.
다만 신임 최원호 감독 선임까지 동시에 진행하면서 시간이 조금 더 걸렸고, 부득이하게 경기 후 수베로 감독에게 사실을 알렸다. 박찬혁 대표이사, 손혁 단장이 정장을 갖춰 입고 감독실을 찾아 결정 사실을 알리며 그동안 노고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지난 2020년 11월 한화의 제12대 사령탑으로 부임한 수베로 감독은 리빌딩 사명을 안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고참 선수들을 대거 정리하고 ‘맨땅에 헤딩’ 하듯 리빌딩을 시작했다. 당장의 승리보다는 선수 육성에 초점을 맞춰 무리하지 않고 운영했다.
선수들에게 실패할 자유를 주며 신념을 강조했고, 메이저리그식 파격 수비 시프트로 새 바람을 일으켰다. 2021년 첫 해 순위는 예상대로 10위(49승83패12무 .371)였지만 노시환, 정은원, 김민우, 강재민 등 젊은 선수들 성장으로 나름 희망을 본 시즌이었다.
그러나 2년차가 된 지난해보다 꼬이기 시작했다. 시즌 전 고국 베네수엘라 현지 사정 문제로 여권 배송이 지연된 수베로 감독은 스프링캠프를 뒤늦게 합류했다. 이기는 야구를 선언했지만 전력 보강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허황된 구호에 불과했다. 젊은 선수들의 성장세도 더뎠고, 성적은 걷잡을 수 없이 급락했다. 46승96패2무(.324)로 구단 역대 최다패 불명예를 썼다. 성적도, 육성도 실패한 시즌이었다.
시즌 후 한화는 수베로 감독 경질을 심도 있게 논의했지만 최종 단계에서 이뤄지지 않았다. 계약 마지막 해를 앞두고 재신임을 받으며 FA 보강으로 전력도 상승했지만 수베로 감독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시즌 초반 투수 교체 실패로 잦은 역전패를 당하며 경기 운영 능력에 의구심이 커졌다. 잡아야 할 경기를 계속 놓치며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고, 초반부터 순위 싸움에서 쭉 밀렸다.
계약 마지막 해를 맞아 시작부터 ‘레임덕’에 걸린 수베로 감독의 교체론에 무게가 실렸다. 수베로 감독의 수비 시프트와 멀티 포지션, 고정되지 않은 라인업도 이기는 야구를 바란 구단의 방향과 맞지 않았다. 최근 6경기 5승1패로 반등했지만 11승19패1무(.367)로 9위에 그친 순위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남은 시즌 반등을 위해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고, 감독 교체를 결정했다.
결국 경질로 끝난 수베로 감독 체제는 한국식 리빌딩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보여준 사례로 남게 됐다. 수베로 감독도 지난 주말 “KBO리그는 미국과 다르다. 수준을 비교하는 게 아니라 선수단 구성에 있어 차이가 크다. 메이저리그는 40인 로스터 중 25~26명 정도가 자체 육성 선수들로 나머지는 FA 영입, 트레이드, 룰5 드래프트로 구성된다. KBO리그는 미국보다 신인 드래프트의 영향을 훨씬 많이 받는다. 임팩트 있는 트레이드도 보기 드물다. 유망주 풀이 넓지 않은데 기둥 뿌리를 뽑는 대형 트레이드도 어렵다. 3~4군이 없어 유망주에게 실전 기회도 제한된다”며 한국식 리빌딩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로써 한화는 3명의 감독이 연이어 3년 계약 마지막 해 시즌 중 물러났다. 한용덕 전 감독이 지난 2020년 6월, 김성근 전 감독이 2017년 5월 시즌 중 자진 사퇴 형식으로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3연속 감독 중도 하차는 구단 입장에서도 무척 부담스런 결정이지만 성적 부진 앞에 어쩔 수 없었다. 아직 시즌이 113경기나 남아있고, 차기 감독 1순위였던 퓨처스 최원호 감독의 승격을 앞당겼다. 남은 시즌 성적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한편 가장 최근 한화에서 계약 기간을 다 채운 사령탑은 지난 2013~2014년 김응용 전 감독이다. 앞서 한대화 전 감독도 2012년 8월 시즌 중 퇴진했다. KBO리그 역대 최고 명장으로 꼽히는 김응용 감독도 2년 연속 꼴찌로 체면을 구긴 채 감독 커리어를 마감했고, ‘야신’으로 불린 김성근 감독도 한화에선 실패했다.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한용덕 감독은 2018년 첫 해 팀을 11년 만에 가을야구에 올려놓는 지도력을 발휘했지만 이후 2년 연속 성적 부진에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구단 최초 외국인 사령탑인 수베로 감독마저 실패로 돌아갔다. 2010년 이후로 한화 감독 5명 중 4명이 중도에 물러나면서 ‘감독들의 무덤’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사이 프런트도 수뇌부뿐만 아니라 핵심 부서 구성원들이 계속 바뀌었지만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 15년간 딱 한 번 가을야구로 긴 암흑기를 보내고 있는 한화의 안타까운 감독 잔혹사다. /waw@osen.co.kr
Copyright © OSE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