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상환 무서워 폐업도 못 해”…적자에도 폐업조차 못하는 자영업자들[머니뭐니]

2023. 5. 12.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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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명동의 한 거리에 위치한 의류 매장에서 시민들이 옷을 구경하고 있다.[연합]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 서울 도봉구서 주점을 운영하는 박모(35) 씨는 이달 2018년부터 운영했던 가게의 폐업을 결정했다. 애초 올 1월에 문을 닫으려 했지만, “사업자 대출액 4700만원가량을 일시 상환해야 한다”는 은행의 말에 시기를 늦췄다. 이 씨는 결국 가족들에게 돈을 빌려 상환 자금을 마련했다. 그러나 운영을 연장한 4달간 적자액은 약 500만원이 불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가게를 운영하긴 했지만, 결국 적자만 늘어 씁쓸하다”고 토로했다.

‘완전한 일상회복’이 눈앞에 다가왔지만,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은 커지고 있다. 경기둔화 신호가 본격화되며, 매출 회복 또한 더뎌졌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폐업을 고민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만은 않다. 폐업을 하면 그간 받은 사업자 대출을 상환해야 하는 탓이다. 지난 3년간 늘어난 자영업 대출만 300조원이 넘는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부실 규모를 줄이기 위한 출구전략을 지원할 때라고 조언했다.

자영업 대출, 사상 최고 ‘1000조원’…매출 하락에 이자 부담까지

12일 한국은행이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금융기관 자영업 대출 잔액은 사상 최고액인 1019조8000억원으로, 코로나19 확산이 시작되기 전인 2019년 말(684조9000억원)과 비교해 약 335조원(48.9%)이 불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코로나19로 인한 단기적인 소비침체를 예상한 자영업자들이 부채를 통해 영업을 유지한 탓이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도 자영업자들의 경영난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본격화된 고물가·고금리 위기가 이어지며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고 있다. 동시에 대폭 늘어난 자영업 대출의 이자 부담은 극심해졌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이 지난달 실행한 개인사업자대출 평균 금리는 5.82%로 지난해 동기(3.78%)와 비교해 2.04%포인트 상승했다. 지난해 말 기준 자영업 대출 연체율 또한 0.26%로, 2021년 말(0.16%)과 비교해 급증했다. 이마저도 2020년 4월부터 시행 중인 만기연장 및 이자상환 유예 조치에 따라 감춰진 잠재 연체율이 포함되지 않은 결과다.

“폐업하면 상환해야”…‘울며 겨자먹기’식 적자 영업까지

결국 늘어난 부채를 버티지 못한 자영업자들은 폐업을 택하고 있다. 물론 이마저도 용이치 않다. 가장 큰 부담은 대출 상환이다. 사업자 대출은 사업 영위를 전제로 한 것이기에, 폐업 시 회수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대출 종류 및 금융사에 따라 약정서 발급 등을 통해 만기를 연장해 주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기준이 일관적이지 않고 연체 기록 여부 등 조건을 따지는 경우가 많아, ‘울며 겨자먹기’식 영업을 유지하는 자영업자들도 흔하다.

서울 명동 한 거리의 빈 상가 앞을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연합]

실제 대형 자영업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최근 폐업 시 대출 상환과 관련한 문의글이 쇄도하고 있다. 지난주에만 대출 상환을 이유로 폐업을 고민하는 게시글이 수십 개가 올라온 상태다. 서울 강남구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는 A씨는 “은행에 폐업 시 대출 처리를 문의하니, 연체 이력을 들먹이며 다음달 내로 상환을 완료해야 한다는 답이 왔다”며 “적자 때문에 유지도 힘든 상황, 조언이 필요하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폐업 뒤 사업장 주소를 집으로 바꾸고 ‘유령 사업장’을 유지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사업자 번호를 유지하는 편법으로 금융사가 폐업 여부를 알 수 없도록 해, 상환 독촉을 피하려는 것이다. 이 외에는 채무조정 프로그램 ‘새출발기금’을 택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지원 문턱이 높고, 금융 활동 제약 등 부작용이 뒤따르는 탓에 이용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

“자영업도 ‘구조조정’ 필요해”…부실 폭탄 우려에 ‘출구전략’ 필요성↑
서울 명동 한 거리의 음식점 안내문 앞을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연합]

가장 큰 문제는 ‘울며 겨자먹기’식 적자 영업을 유지하는 자영업자들이 늘어나게 되면 결국 부실 눈덩이가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자영업 대출 수요는 크게 줄지 않고 있다. 지난달 말 기준 5대 은행이 취급한 개인사업자대출 잔액은 312조3106억원으로 전월 말(311조7554억원) 대비 5000억원 가량 늘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올 9월까지 연장된 만기연장·이자상환 유예 조치가 종료될 시, 부채는 곧 ‘부실 폭탄’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해당 조치가 적용된 대출 잔액은 약 141조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사실상 엔데믹(풍토병으로 굳어진 감염병) 상황에 돌입한 까닭에, 재연장 가능성도 극히 낮아졌다. 적극적인 폐업 지원 등 출구전략을 통해 점진적인 ‘자영업 구조조정’ 작업에 돌입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오는 이유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 정부에서 소정의 폐업비 지원 등 출구전략을 추구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부족함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자영업 부채 관리를 위해서는 폐업 자영업자 대상 대환대출 등 금융 지원의 범위를 늘리는 등 현실적이고 과감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구조조정’을 추구하는 지원이 있더라도,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고용 지원 등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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