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 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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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는 벽이 있어요."
지원이의 말에 내 눈이 커다래진다.
머리는 빠르게 지난날의 내 행동과 말을 점검한다.
'차갑게 대했던가? 상처를 준 적이 있었나?' 하며 되짚고 있을 때, 지원이가 입꼬리를 올리며 이어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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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는 벽이 있어요."
지원이의 말에 내 눈이 커다래진다. 머리는 빠르게 지난날의 내 행동과 말을 점검한다. '차갑게 대했던가? 상처를 준 적이 있었나?' 하며 되짚고 있을 때, 지원이가 입꼬리를 올리며 이어서 말한다.
"완벽!"
그 순간, 긴장했던 내 얼굴은 빨갛게 달아오르고, 이내 웃음이 빵 터진다. 낚였다 싶었지만, 온종일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
이는 김인육 시인의 <사랑의 물리학>이란 시의 첫 구절이다. 교실의 책상에 앉아 열 살짜리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면 자주 이 구절이 떠오른다. '지구의 중력보다 더 강하게 나를 끌어당기는 이 조그마한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스스로 묻고 또 물었다.
끝없이 '만약에'로 시작하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무한 상상력, 이야기 대부분을 '기-승-전-똥?'으로 끝낼 수 있는 일관성, 엄마와 아빠가 싸운 이야기를 옆집의 이야기처럼 들려줄 수 있는 여유로움, 그다지 웃긴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박장대소하는 공감력 그리고 매일 수다를 떨어도 고갈되지 않는 이야깃거리를 두루 갖춘 이 아이들의 개별성을 지켜줘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사실 교실은 24명이 지내기에는 너무 좁고 너무 네모지다. 이 공간의 악조건은 개별성을 잠식하기에 충분하다. 이런 불리한 조건에서도 아이들의 개별성을 지켜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 끝에 2016년부터 지금까지 학급에서 '꼬마 작가 되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아이가 작가의 시선으로 자신의 삶을 담은 이야기를 쓰고 책으로 출간하는 활동이다. 무리에 묻히지 않고, 틀에 찍어 내듯 키워지지 않고, 자기 인생의 색깔을 제대로 드러내며 삶에서 온전히 주인이 되어 보면 개별성을 지켜내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그 결과 <선생님을 울리는 방법>, <슈퍼 생존왕 모기>, <괴물 학교> 등 벌써 100여 권의 책이 나왔다. 어떤 아이의 책은 출판사와의 계약으로 정식 출판까지 이어져 서점에서 판매되고 있다.
어느 날, 책 만들기 활동에 집중하던 태현이가 나를 부르더니 말한다.
"선생님, 책을 만드는 건 힘든데, 꼭 소중한 보물을 찾아가는 여행 같아요."
다른 아이들도 태현이의 말에 맞장구친다.
'좁고 네모진 교실에서 보물을 찾아가는 여행을 할 수 있다니!'
내 의도보다 더 멋지게 해내고 있는 아이들에게 오늘도 끌림을 당한다. 나의 하루는 화려하지 않지만 순수하고 찬란하다, 이 아이들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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