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발언대] "양자기술 경쟁력 확보, 시급해요"

박세진 2023. 5. 12.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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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기술 전도사로 '동분서주' 윤지원 SDT 대표

(서울=연합뉴스) 박세진 기자 = 국가 간 미래 기술 패권을 좌우할 게임 체인저로 양자(量子)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양자기술 주도권을 쥐기 위해 세계 주요국과 글로벌 기업들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양자기술 현황을 설명하는 윤지원 SDT 대표.

2017년 설립된 SDT는 팀원 70명 규모의 작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제조기업이지만 국내 양자기술 분야에서 두드러진 행보를 보인다.

'양자의 힘으로 디지털 전환을 선도한다'는 비전을 내세우며 양자기술의 산업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양자기술은 세계적으로 컴퓨터, 센서, 암호통신 등 크게 3개 영역에서 산업화가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기술적으로 난도가 높은 데다가 산업 기반이 없는 초기 기술이라서 국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SDT를 이끄는 윤지원(32) 대표는 물리학에서도 가장 난해한 영역으로 꼽히는 양자기술을 알리는 전도사로도 활발하게 뛰고 있다.

지난 3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있는 사무실에서 윤 대표를 만나 창업 경위를 들었다.

양자기술 개발 스타트업 SDT 로고

병역 마치고 창업가의 길로

윤 대표는 조기 유학파다.

대구 태생으로 초등학교를 마친 뒤 곧바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어릴 때부터 MIT(매사추세츠공대)에 가고 싶었어요. 결국 그곳에서 물리학과 컴퓨터 전자공학을 전공해 학·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수학 과목을 가장 좋아했다는 윤 대표의 조기 유학을 밀어준 것은 부모님이었다.

현재 SDT에서 품질관리 담당 고문을 맡고 있는 윤 대표 부친은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에서 부사장까지 지냈다고 한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양자정보연구단에서 전문연구위원으로 3년간 대체 복무한 윤 대표는 병역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귀국했다가 창업가로 변신했다.

"물리학자로 살고 싶었기 때문에 애초 창업에 큰 관심은 없었어요. 병역을 끝내고 미국으로 돌아가 박사 과정을 밟으려 했다가 고민 끝에 그간 배운 걸 산업현장에서 활용해 보자는 생각으로 창업을 선택했습니다."

SDT가 양자실험 지원용으로 개발한 다양한 장비들. [제공 사진]

시대가 필요로 하는 양자기술

SDT는 사물인터넷(IoT) 모듈을 설계해 OEM 방식으로 공급하는 비즈니스 모델로 출발해 산업용 계측장비와 양자 분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국내 기술 수준이 기초 단계인 양자컴퓨터 분야에선 광자 동시계수 측정기 같은 연구용 장비를 만든다.

윤 대표는 "양자컴퓨터 연구기관들이 양자적 현상을 제어하고 계측하는 데 쓰는 장비를 공급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양자기술을 이용한 다양한 제품을 개발 중이거나 내놓을 예정이다.

윤 대표는 KIST에서 이전받은 양자 보안 기술을 적용한 CCTV 외에 통신장비를 이미 개발했다며 올 하반기에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제품 설계에 주력하는 SDT는 구로디지털단지에 소규모 직영 공장을 두고 있다.

시제품 제작과 출하 전의 직접 검수를 통해 품질을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윤 대표는 양자를 전공했지만 사업 아이템이 될 줄은 애초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양자는 에너지 최소 단위라서 복제될 수 없죠. 그런 특징을 이용해 해킹이 불가능한 보안 시스템 등을 구현하는 겁니다. 제가 양자 공부를 시작한 것이 2008년입니다. 그때만 해도 양자는 완전히 학문적 영역에 머물러 있었는데, 이제는 시대가 필요로 하는 기술이 됐습니다."

더 작은 세계로 파고들수록 양자 중요성 커져

윤 대표는 스타트업 경영인으로 바쁜 일상을 보내는 와중에도 기회가 닿는 대로 과학 콘서트나 콘퍼런스 같은 무대에서 양자 강사로 뛴다.

그는 양자를 쉽게 정의해 달라고 주문하자 "기본적으로 '작은 것'이라고 이해하면 좋다"고 말했다.

"저도 10년 넘게 공부했지만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굉장히 어려워요. 작다는 의미에는 물리적 크기나 시간, 또는 에너지 단위가 작아져 생기는 현상이 있습니다. 지금은 기술 수준이 높아져 반도체를 예로 들면 2나노(10억분의 1), 3나노미터까지 작게 만듭니다. 그렇게 작아지면 일반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양자역학적 현상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지난해 10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AIoT(지능형 사물인터넷) 콘퍼런스에서 양자기술 산업을 주제로 발표하는 윤지원 SDT 대표. [제공 사진]

윤 대표는 과학기술이 발전해 더 작고 세밀한 세계로 파고들 수 있게 되면서 양자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앞으로 1나노미터 이하 수준으로 개발될 반도체나 통신 기술은 양자와 밀접하게 연관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양자기술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이유로 '산업시장이 만족을 모른다'는 점을 들었다.

"만족을 모르는 산업시장은 더 작아지고 더 빨라지는 걸 계속 요구하죠. 지금보다 더 빠르고 작은 단위의 통신이나 반도체, 의료기기 센싱 기술이 등장하기 위해서는 양자 기술이 꼭 필요합니다."

윤 대표는 양자기술을 토대로 급속히 진화하는 이들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경쟁력을 선제적으로 확보하지 못하면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앞으로 5~10년 후가 되면 연산이나 통신, 센싱 관련 영역에서 양자기술이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양자 전환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예산이나 연구인력 면에서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유럽 등 양자기술 선진국에 뒤처져 있음을 부인하기 어려워요."

윤 대표는 그러나 나스닥 상장 양자컴퓨터 제조기업 아이온큐 설립자인 김정상 듀크대 교수처럼 "뛰어난 대한민국 DNA를 가진 인재가 전 세계 양자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며 "이런 인재들이 한국 양자기술 발전에 기여할 방안을 마련한다면 빠르게 기술 격차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태극기 부착 작업복 입은 윤지원 대표.

"태극기 단 작업복 즐겨 입어요"

전체 팀원 70여명 중 연구개발 인력이 약 60%를 차지하는 SDT는 아직 매출이 미미한 수준이지만 누적으로 250억원이 넘는 투자를 받았다.

윤 대표는 "SDT가 목표하고, 만들고 있는 기술 제품들은 우리나라의 제조 기반 산업을 지탱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기술이라고 생각한다"며 투자자들이 그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투자 유치를 한 라운드 정도 더 진행한 뒤 머지않은 장래에 시장 상황을 보면서 기업공개(IPO)를 준비할 생각이라고 했다.

SDT를 우리나라 전략자산으로 만드는 것이 꿈이라는 윤 대표는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국가관과 기업가 정신을 본받기 위해 태극기가 부착된 작업복을 즐겨 입는다.

윤 대표는 "정주영 회장이 생전에 '우리 (회사)가 잘돼야 나라가 잘되고, 나라가 잘돼야 우리 (회사)도 잘된다'고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그런 가치관을 가슴에 품고 사업하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양자 기반의 국내 산업생태계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어요. 지금은 사업을 하고 있지만 물리학자로 죽고 싶기도 하고요."

parks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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